가습기 살균제 참사, 반려동물 피해조사는 아직 현재진행형
지난해 의료기록 42건, 피해 보호자 진술 98건 추가 확보..반려동물 피해사례가 관련 소송 법정 증거로
1만 4천여명의 사망자를 냈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반려동물도 위협했다. 사람보다 그늘에 가려진 반려동물 피해사례에 대한 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한국수의임상포럼(KBVP)는 9일 ‘반려동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및 원헬스에 근거한 사회적 예방시스템 제안’을 주제로 원헬스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2011년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피해 복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SK디스커버리, 애경산업 등 일부 살균제 제품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특조위 김영환 조사관은 “특조위·환경부 연구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627만명으로 추정된다”며 “사용 후 건강 피해를 입은 67만명 중 사망자는 1만 4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에 피해를 신고한 7,018명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반려동물에서의 피해는 더욱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드러나기 전 원인미상의 폐질환으로 사망한 사례가 산발적으로 추적됐을 뿐이다.
이날 웨비나에서 김현욱 KBVP 회장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루동물병원에 내원했던 원인미상의 폐질환 반려동물 환자를 소개했다.
이들 증례에서는 심한 호흡곤란과 산소부족에도 불구하고 염증·감염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다. 동거견이 시간차를 두고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연이어 사망하면서 경구·흡입독성 가능성을 고려했지만, 사람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이슈화되기 전에는 결국 원인규명에 실패했다.
해마루 등 동물병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추정되는 폐질환 발생이 포착된 것은 2006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미상의 폐질환으로 어린이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반복되며 최초로 이슈화됐던 시점과 유사하다.
해마루동물병원에서 2011년까지 내원한 환자 중 유사한 증상을 보여 급사한 환자는 20건으로 파악됐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후 내원한 호흡곤란 환자에서 가습기 살균제 노출 병력을 파악하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김현욱 회장은 “2007년 수의과학검역원에 이상사례를 보고하기도 했지만 후속조치가 없었다. 병원에서 원인 불명의 비심인성 폐손상이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체계적인 역학조사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반려동물과 사람 환자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점이 공유됐다면 보다 빠른 대처가 가능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지내는 반려동물에서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는 사람환자의 대책마련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김영환 조사관은 “반려동물에서의 피해사례는 진행 중인 관련기업 재판에서 중요 증거로 활용됐다”며 “살균제에 노출된 후 살아남은 반려동물은 사람에서의 만성 피해를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조위와 수의임상포럼, 동물권행동 카라 연구팀은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반려동물에게 호흡관련 질환이 생긴 피해사례를 추가로 수집했다. 그 결과 42건의 의료기록과 보호자 진술 98건을 확보했다.
특조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의심되는 반려동물 환자 사례에 대한 제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probe@korea.kr, 02-6450-3164).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환경독성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을 건강문제의 감시자(sentinel)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욱 회장은 “수의사, 의사, 환경분야 전문가의 정보교류가 없어 역학관계를 분석하기 어렵다”며 “전문가 사이의 소통을 늘리고, 사람·동물의 질병 유병률 통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