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기 위해 세계지도를 훔치다, 조영광 수의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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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계일주’일 것입니다.

세계여행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동물을 만나고, 여행 중 만난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위해 복원 연구의 길로 뛰어든 수의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여행경험담을 두 권의 책으로 펴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우리나라 청년들이여, 지금 행복하라”고 말하는 조영광 수의사를 데일리벳에서 만났습니다.

choyoungkwang

Q. 수의사로서 세계일주를 하고 그에 대한 책도 쓰셨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여행을 떠난 것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계일주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꿈꿔온 일이다

졸업 후 수의장교로 3년간 복무하고 제대한 그 해, ‘이제는 떠나야겠다, 지금이 아니면 못 갈지도 모른다’는 결심이 섰다. 막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까지 했으니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Q. 막연히 꿈꾸던 것을 밀어부친 것이었나

그렇다.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출발했었다. 세계여행이라고 계획을 세웠지만, 절반 정도 경로의 비행기표만 마련해놓고 그냥 떠났다.

세계여행은 준비하는 사람마다 개인적인 성향이 있다. 1년치 계획을 매일 단위로 짜는 꼼꼼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계획도 대륙별로 대충 짰다. 미국에서는 2개월, 남미에서는 5개월 이런 식이었다. 남미는 첫 나라였던 콜롬비아에 도착해서 그제서야 ‘남미에 어떠어떠한 나라들이 있구나’ 알았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위험할 수도 한심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계획을 너무 디테일하게 세우면 오히려 그 계획대로 실천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오늘을 즐기자’라는 큰 틀만 정해 놓은 터라, 꼼꼼한 계획에서는 얻을 수 없는 우연의 마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동행들도 많이 생기고, 수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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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의 사막에서 샌드보딩을 즐기고 있는 모습

Q.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그렇고, 세계일주를 떠났던 내 지인도 꼭 동쪽으로 지구를 돌던데

동쪽, 서쪽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경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계절이다. 가급적이면 따뜻해야 여행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여름이라면 한낮에는 좀 쉬었다가 아침이나 저녁때 돌아다니면 되지만, 겨울에 너무 추워져 버리면 관광은 고사하고 교통수단 자체가 막혀버리는 일도 많다.

그 밖에도 축제나, 특정 지역의 행사를 볼 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맞춰야 되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 여행의 전체적인 루트를 결정하더라.

Q. 수의사님도 꼭 봐야지 했던 것들이 있었나

제일 대표적인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라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었다. 세계 3대폭포인 브라질의 이과수,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모두 보고 싶었다. 아마존 정글이나 사하라 사막, 세렝게티 초원들도 필수 리스트에 있었다.

‘우유니 사막’이라는 볼리비아의 소금사막도 그랬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세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로 선정되는 곳이다. 진짜 소금이 끝없이 깔려 있는 새하얀 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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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우기가 찾아온 직후에 빗물이 우유니 사막 전체에 찰랑찰랑하게 고이는데, 그럴 때는 사막이 거울로 변해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져 구별이 안될 정도다. 우기가 2월 중∙하순이어서 그때 맞춰 가려고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렇게 리스트를 만들다 보니 경로가 대충 나왔다. 미국이 첫 행선지였다. 중∙남미를 지나 스페인∙포르투갈을 잠깐 들린 후 아프리카로 내려갔다. 모로코, 케이프타운,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 케냐, 탄자니아 등을 둘러봤다. 그 후 인도로 건너가 3개월 정도 여행했고, 동남아를 거쳐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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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에서 만난 부시맨이 부싯돌로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

Q. 여행하는 동안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면

약 1년 4개월 동안 26개국을 여행하면서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여행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유적지를 봐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결국 남는 것은 ‘누구와 봤느냐’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소소한 것이라도 큰 의미로 남는다.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아저씨에게 한국 사람의 정을 느낀 적도 있다.

브라질에 있는 한 호스텔의 주인이었는데 참 세심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훌리오’였다. 며칠 묵으면서 친해졌고, 새로 오픈한 그의 호스텔에 한글 글씨를 그려주기도 했다.

어느덧 떠나는 날이 됐는데 손을 잡고 인사하다가 그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라. 호스텔 주인이지 않나.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훌리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이별이 더 없이 아쉽고 그리운 것이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라고 생각했던 정(情)이, 아쉬움의 눈물을 보이는 훌리오에게서도 느껴졌다. 그 뜨거운 눈물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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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광 수의사(오른쪽)에게 브라질의 정을 보여준 호스텔주인 훌리오(왼쪽). 벽에 그린 글귀는 조영광 수의사의 여행 좌우명이다

아프리카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만난 일본인 ‘사유리’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사유리는 당시로부터 7년 전에 에토샤 국립공원에 왔다가, 자연에 반해서 눌러 앉은 케이스였다. 공원의 레인저가 된 사유리는 그 뜨거운 모래사막을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했다. 고향도 그립지 않다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세계인’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Q. 수의사 신문이다 보니, 같은 여행기라도 수의사와 관련된 인상 깊었던 점을 묻고 싶다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다 보니 당연히 동물과 관련된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더라. 또 어떤 나라를 가게 되면 동물원이나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을 될 수 있으면 가보려고 노력했다.

콜롬비아 국립수의과대학을 찾아가 말 임상 강의를 참관하기도 하고, 그 곳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나 수의대생을 만나기도 했다.

여러 나라의 동물병원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미국 뉴욕 맨하탄의 부자 동네에 있는 동물병원을 갔을 때도 인상 깊었다. 병원의 앞쪽 70% 정도가 통유리로 구분되어 환축의 대기실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깔려 있던 초록색 우레탄은, 동물복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인테리어였다. 동물이 뛰어 놀면서 대기하고, 이를 관리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었다.

그리고 알림판 같은 곳에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안내되어 있었다. 행동교정이나 노령견 관리, 질병예방 같은 교육프로그램들이 매주 돌아가면서 시스템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동물병원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행한 당시만 하더라도 신기했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 병원 수의사들의 복지가 부러웠다. 수의사 3명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교대로 3일씩만 근무하면서 억대가 넘는 수익을 가져간다고 했다. 물론 우리나라와 기본적인 진료비 수준 차이는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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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라나시에서 전통악기 잠베를 일주일 동안 배우다

Q. 동물원도 많이 봤을 것 같다

선진국의 동물원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부터가 달랐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방문한 한 동물원은 동물 생활공간과 사람 관람공간을 투명한 플라스틱을 분리한 후, 동물이 있는 곳은 밝게, 사람이 있는 곳은 어둡게 만들어 놓았더라. 동물들이 사람을 보기 힘들게 처리한 것이다.

사람은 그 컴컴한 공간에 들어가서 조용히, 인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동물을 보는 형태였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여기서는 동물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한다’고 교육하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원 구성부터 관람객까지 동물이 받을 스트레스를 배려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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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의 아나콘다 체험

동물원의 공간이 야생동물의 원래 활동범위보다 좁다는 문제는 어쩌면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서울의 2~3배에 달하는 공간에 입구만 만들어 놓고 알아서 보라는 식의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어찌 보면 가장 동물들을 위한 동물원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개선의 출발점은 ‘시각차’인 것 같다.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가능한 조건 아래서 어떻게 최대한 배려할 수 있느냐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Q. 세계여행을 꿈꾸는 수의대생이나 수의사들에게 전해줄 노하우가 있다면

세계여행을 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나도 갈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사실,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할 생각이 있다. “가고 싶으면 너도 떠나”라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다. 시쳇말로 ‘깡이 있느냐’하는 것이다.

용기라는 게 참 광범위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현재 처해 있는 상황, 책임과 의무, 직책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잠시나마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용기’다.

솔직히 연애, 결혼, 가족, 직장, 저금, 카드빚, 할부금..당장 떠나지 못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있다. 여행을 출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문제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다.

또 언어문제를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다. 쉽게 말해 ‘난 영어를 못해’라는 것인데, 영어를 잘하면 물론 좋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이것도 용기의 문제다.

Q. 영어를 몰라도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솔직히 영어 몰라도 된다. 물론 영어를 잘하면 여러모로 편리하겠지만, 결국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생각보다 그런 나라가 굉장히 많다. 오히려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이는 측면도 있다.

언어가 정말 하나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나. 밥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화장실을 해결하나. 당연히 걱정되겠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다 해결하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짧은 영어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거나 바디랭귀지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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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볼리비아 국경에서. 검문소 파업으로 차량이 지나가지 못하자 걸어서 국경을 넘어야 했다.

Q. 경제적인 측면은 어떤가

물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도 장교생활을 하면서 적금을 들어 돈을 모았고, 여행 중간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돈을 ‘수혈’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여행비용은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굉장히 편차가 크다. 북미나 유럽을 가면, 하루에 생활비를 대략 10~15만원 잡아야 한다. 하지만 동남아나 인도를 간다면 하루에 2만원으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이것은 굉장한 차이다. 유럽에서 하루 지낼 돈으로 인도에서는 일주일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어디서, 얼마나 머물 지를 결정하면 예산이 나온다. 팁이라고 한다면, 생활비가 비싼 곳은 결국 나중에 가도 되는 곳 들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패기와 힘과 열정이 있을 때, 여행인프라가 좀 부족한 나라에 도전하는 것이 좋겠다. 나도 남미와 아프리카, 인도가 가장 인상 깊었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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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폭포, 이과수에서

Q. 그런 곳은 위험하다는 걱정이 들기도 하는데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려고 뛰어드는 것도 용기다.

또 위험은 긴 여행에 하나의 자극이 될 수 있다. 남미에서는 매일매일 이동하면서도 ‘혹시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고, 잘 때도 배낭을 손발에 묶어 자물쇠를 채우고 자고, 그러면서 매일을 걱정과 불안으로 다녔다.

멕시코에서 한 동행자가 ‘다음 도시에서 만나자’며 나보다 하루 먼저 야간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적이 있다. 다음날 그 친구에게 이메일이 왔는데 ‘절대로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간밤에 기관총을 든 무장괴한 7명이 야간버스를 습격했다는 거다. 탑승객 전부를 밖에 무릎 꿇려 놓고 버스를 통째로 털어갔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 날 출발하지 않으면 비행기도 놓치고 일정이 다 어그러질 판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만용이었지만.

여행자 7명을 모아, 봉고차 하나를 대절해서 대낮에 출발했다. 정말 말 그대로 벌벌 떨면서 갔다. 어제 괴한이 출몰한 그 루트를 똑같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별 일은 없었다. 지금도 그 루트에서 여행자들이 금품을 털렸다는 얘기는 간간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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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바르셀로나가 맨체스터UTD를 꺾고 2008-2009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날, 바르셀로나에 있었던 조영광 수의사. 결승전에 출장했던 박지성 선수를 응원했다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죽을 뻔 했다고.

그렇게 남미를 지나 유럽 스페인으로 넘어가니 솔직히 너무 지루했다. 유럽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편하고 안전했다. 한마디로 스릴이 없었던 것이다. 스릴이 없는 나홀로 여행은 지루했다.

그래서 빨리 아프리카로 넘어갔다. 아프리카로 넘어가니 또 스릴이 되살아났다. 겁나고, 무섭고.

Q. 말 나온 김에, 진짜 위험했던 적이 있었나?

사하라 사막에서 죽을 뻔 했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에 들어가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는 투어를 했던 때였다..

2부에서 계속…

지금 행복하기 위해 세계지도를 훔치다, 조영광 수의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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