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동물병원 인체용의약품 직접구매 플랫폼(도매)’ 실증특례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재 수의사는 인체용의약품을 오직 약국이라는 소매 채널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수의사가 도매상을 통해 직접 인체용 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이 전문직 간 역할을 침범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동물 진료를 책임지고 있는 수의사로서, 이 문제는 단순한 유통 경로의 선택이 아니라, 동물의 생명과 국민의 부담, 진료의 공공성과 직결된 문제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첫째, 수의사는 약물의 전문가다.
수의사는 6년 동안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을 포함한 전공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동물 종의 약물 반응을 이해하고 진료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다. 이러한 수의사에게 인체용 의약품 사용 자체를 제한하거나, 반드시 약사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는 규정은 수의사의 직역과 전문성을 부정하는 처사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수의사의 판단하에 인체용의약품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수의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존중하는 제도적 기반이기도 하다.
둘째, 약국 유통만으로는 진료 현장의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응급 상황이나 특정 질환 치료 시, 동물전용 의약품이 존재하지 않거나 공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약국에서 동물진료에 필요한 인체용의약품을 상시 비치하지 않거나, 약국 간 편차가 커 약품 조달이 지연되곤 한다. 이로 인해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동물이 제때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이 약국 소매가는 도매가보다 높아 보호자의 진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실적 문제도 존재한다.
셋째, 도매 유통은 위험하지 않다.
일부 단체는 동물병원으로의 인체용의약품 도매 유통이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미 의약품도매상은 약사법에 따라 약사가 업무 관리를 하고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오히려 약국 유통보다 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약물 사용이 가능하다. 약사 역시 수의사의 진료 과정까지 직접 감독하지 않는 이상, 약국 유통만이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넷째, 수의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직결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동물이 아플 때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인체용의약품 도매 구매 허용은 진료의 질을 높이고, 보호자의 부담을 줄이며, 동물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이는 특정 직역의 이익이 아니라, 동물진료의 공공성과 직결된 사회적 요청이며, 정부는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응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결론적으로, 인체용의약품 도매 구매는 수의사의 권리 이전에 동물의 생명권과 보호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문제다. 제도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동물진료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규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정부는 수의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존중하고, 투명한 관리 체계를 전제로 한 제도적 개선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