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인체용의약품 도매상 공급 길 열렸다
국무조정실 신산업규제혁신위, 동물병원 인체약 도매상 공급 특례 부여 권고
동물병원이 동물 진료에 필요한 인체용의약품을 기존 약국이 아닌 의약품도매상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무조정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는 3월 25일 세종청사에서 규제샌드박스 과제에 대한 이견조정 회의를 열고 조정권고안을 도출했다. 회의에는 위원들과 국무조정실, 관계부처(복지부·과기정통부), 대한수의사회, 대한약사회 인사가 참여했다.
회의 결과 신산업규제혁신위는 반려동물병원 수의사가 동물 진료목적으로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고자 할 때 약국 외에도 의약품도매상으로부터 구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실증 특례를 부여하도록 권고했다.
다만 부정 유출 등 인체용의약품의 목적외 사용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사용내역 관리체계에 대한 협의를 선행 조건으로 달았다.

인체약 도매상 공급 실증 특례, 복지부·약사회 반대로 3년 넘게 지지부진
신산업규제혁신위 “도매상 공급한다고 오남용 증가 우려 근거 없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자문기구인 신산업규제혁신위는 규제 샌드박스 운영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으로 심의가 지연되거나 과도한 부가조건 부여로 실증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반려동물병원 인체용의약품 구매관리 서비스 특례도 이 같은 조정 대상에 부합한다.
의약품도매상으로 허가 받은 한 기업이 동물병원 전용 이커머스 플랫폼을 활용해 인체용의약품을 직접 공급하겠다며 특례를 신청한 것이 2021년 10월이다. 보건복지부와 약사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유예된 지 3년 넘게 흘렀다.
현행 약사법은 수의사가 동물 진료 목적으로 인체용의약품을 구입할 때 도매상이 아닌 약국에서만 구입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B2B 성격인 약품 사입인데도 B2C 매장인 약국에서 사도록 강제하고 있다 보니, 약품 구비가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약국은 업소 내에서만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데, 그래서 동물병원으로의 B2B 거래에 적합하지 않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이미 이 같은 문제가 지목됐다. 9개 약국이 전년도 동물병원 인체약 공급의 99%를 담당했다. 약국이 도매상처럼 운영된 셈이다. 일선 약국이 동물병원으로의 인체약 공급에 관심이 없다는 점도 방증한다.
신산업규제혁신위는 “동물병원 수의사는 약사법에 따라 약국을 직접 방문해서 인체용 의약품을 구매해야 하나, 이를 판매하는 약국은 매우 드물어 동물병원의 인체용 의약품 구매에는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매상 구입 허용) 실증 특례를 부여하면 의약품 공급 효율성을 확보해 구매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호주,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도 인체용의약품을 반려동물 치료에 사용하고, 동물병원 전용 의약품 공급 온라인 도매업체들이 동물약과 인체약을 함께 공급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현재 약국을 통해서만 구매 가능한 인체용의약품을 도매상을 통해 직접 구매할 경우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신산업규제혁신위는 이를 일축했다. 약물 오남용을 가중할 만한 직접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도 동물병원이 진료목적으로 사입한 인체약을 오남용한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약국이 동물병원에서의 인체약 오남용 우려를 줄이기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애초에 도매상처럼 운영되는 약국에서 인체약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체약 관리체계가 실증 조건?
대수 ‘현행 출납대장 이상의 규제 강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신산업규제혁신위는 의약품도매상의 인체용의약품 동물병원 공급 실증 특례 부여를 권고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관계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례 신청기업, 대한수의사회가 동물병원에서 사용되는 인체용의약품에 대한 관리체계를 마련한 뒤에 실증을 개시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는 “오남용 우려는 재고의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라며 현행 규제보다 강화된 형태의 관리 규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동물병원은 약국으로부터 인체용의약품을 사입한 경우 ‘동물용의약품등 취급규칙’에 따라 인체용의약품 출납대장을 작성해야 한다. 이것도 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편의주의적 악법 취급을 받고 있다.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 종류가 많고 환자마다 여러 의약품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보니 약품별로 출납을 기록하는 형태가 적합치 않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의약품도매상으로부터 인체용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한 것에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현행 출납대장보다 강화된 규제가 조건이 된다면 실증 특례에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