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이 사람 건강 위험 찾는 카나리아? 데이터 체계부터 만들어야
가정환경 공유하는 반려동물, 가습기 살균제 같은 동일 노출 위험요인 경고하는 감시자(Sentinel)
보호자와 실내환경을 공유하는 반려동물이 사람의 건강 위험을 경고하는 감시자(Sentinel)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람과 반려동물의 생명을 모두 앗아간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반려동물과 사람의 보건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출발선으로 반려동물의 건강 관련 정보가 수집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한국수의임상포럼(회장 김현욱)은 9일 원헬스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연자로 나선 김현욱 회장과 윤화영 서울대 교수, 이화영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객원교수는 원헬스에 근거한 사회적 예방시스템을 제안했다.
19세기 영국의 광부들은 카나리아 새와 함께 탄광에 들어갔다. 카나리아 새에 이상이 관찰되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피해 갱도를 빠져나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잠수함에는 산소에 민감한 토끼를 태우기도 했다.
현대사회의 가정은 탄광도 잠수함도 아니지만 환경적인 문제로 사람이 사망하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생명을 잃었다.
윤화영 서울대 교수는 “사람과 동일한 실내환경을 공유하는 반려동물은 사람 건강위험을 경고하는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목했다.
주거환경 주변의 살충제나 건축자재·섬유·가구에서 나오는 유기오염물은 개·고양이에게 노출된다. 특히 고양이의 그루밍 습관은 독성물질의 노출도를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이날 윤 교수가 소개한 관련 연구사례 중 하나는 고양이의 내분비질환인 갑상샘기능항진증에 주목했다. 건축에 쓰이는 난연제에서 유래한 유기오염물이 실내 먼지를 통해 고양이에게 노출되고, 갑상샘기능항진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고양이의 갑상샘기능항진증이 동거하는 사람에게 유기오염물 노출의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화영 교수는 “아직 연구가 불충분하다. 위험요인별로 적합한 감시자 반려동물 종이 다를 수도 있다”면서도 “사람보다 수명이 짧고 생물학적 반응이 빨라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반려동물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못했던 사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 확대 및 제품 위해성 조사 결과보고서’와 이날 심포지엄에 따르면, 2006년부터 반려동물에서도 원인미상의 폐질환 케이스가 발생했다. 파악된 것만 2019년까지 66건이다.
피해동물 보호자의 65.2%가 건강 피해와 일부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문제가 2011년 이전에 의료계와 공유됐다면 보다 빠른 조치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윤 교수는 “반려동물에서의 문제 발생이 사람에서의 사태 인지 시기와 유사하거나 더 빨랐을 수 있다”며 “의사-수의사간 정보 공유가 체계화되어야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공유 논하기 전에 반려동물 건당 데이터부터 만들어야
英 SAVSNET, 진단검사의뢰기관·동물병원 질병정보 실시간 공유
문제는 당장 반려동물의 질환 정보를 의료계와 공유하려 해도 할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다.
이화영 교수는 “국내 반려동물에서 이상질환의 징후를 발견한다 해도 이를 보고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고 꼬집었다.
원인미상의 질환은 고사하고 인수공통감염병을 포함한 병원체의 동향도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최근 반려동물에서도 감염이 확인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바이러스도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음에도 반려동물에서의 동향은 일부 실험실의 연구차원에서만 파악되고 있다.
반면 영국에서는 반려동물 의료정보의 데이터화가 시도되고 있다. 이날 이화영 교수는 영국의 SAVSNET 시스템을 일례로 들었다.
리버풀대학과 영국소동물수의사회가 개발한 SAVSNET은 영국 내 500여개 동물병원과 진단검사의뢰기관의 의료정보를 통합하는 플랫폼이다.
이들 기관의 진료정보가 24시간 이내에 시스템에 반영되면서 영국 내 반려동물 질병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
영국왕립수의과대학이 운영하는 VetCompass™도 이와 유사한 정보수집체계다. 2007년부터 시작돼 영국 내 동물병원 30% 이상이 데이터 공유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 반려동물의 분포부터 질환별 유병률까지 각종 데이터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 교수는 “반려동물의 건강정보를 감시자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외삽하기 위한 연구기반이 필요하다. 전문가집단과 당국이 소통해야 한다. 반려동물의 정보가 단독으로 활용되기 어렵더라도 의미있는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서 “한국에서 구축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