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전 검사를 거부했던 보호자가 되려 마취사고의 책임을 수의사에게 지우려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같은 사례에 대한 지방법원 판례가 나와 화제다.
동물병원 원장 A씨는 얼마전 보호자 B씨의 반려견에게 스케일링 및 유치발치 시술을 실시했다. 당시 보호자 B씨는 비싸다며 마취 전 검사를 거부했고, 반려견은 시술 중 쇼크를 일으켰다. CPR로 반려견을 소생시켰지만 결국 수일 후 해당 반려견은 사망했다. 그 뒤 보호자 B씨는 수의사 A씨를 상대로 의료과실 등에 대해 최초 1,200만원 상당의 의료소송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판사 정수진)은 “마취 전 검사를 보호자가 거부했을 경우 수의사에게 (마취사고에 대한) 의료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A씨의 소송대리는 ‘법무법인 겸인’이 맡았다. 법무법인 겸인 소속 김민주 변호사는 “수의분야의 의료분쟁은 수의사의 과실이 있든 없든 대부분 조정형태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관련 판례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면서 “이번 판례는 수의학적으로 '수의사의 설명의무 인정 여부'와 '반려동물 시술 또는 수술 시 마취 전 검사의 필수 여부' 등 2가지 부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재판부 “마취 전 검사를 거부하면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어”
수의사 설명의무 인정..마취 전 검사 권고했는지는 수의사가 입증해야
먼저 이번 판례를 통해 수의사의 설명의무가 확실히 인정됐다.
정수진 판사는 판결문에서 “수의사에게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 측에 설명의무를 이행한 데 대한 증명책임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김민주 변호사는 “그동안 수의사에게 설명의무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었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수의사에게도 반려동물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성, 요양 혹은 건강관리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마취 전 검사를 거부한 경우,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정수진 판사는 “수의학 분야에서 마취 전 검사는 권고적 사항으로 권유하고 있으나, 보호자가 이를 거절할 경우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인정된다”면서 “보호자가 마취 전 검사를 비싸다고 거절했기 때문에 수의사에게 의료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김민주 변호사는 “보호자에게 마취 전 검사를 권고했었는지 여부를 입증할 책임은 수의사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요컨대, 마취동의서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주 변호사는 “아직까지 수의학계에 배상학회나 수의학 전문 서적 번역을 감정해줄 어떠한 기관도 없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다”고 토로했다. 재판과정에서 수의학적 지식을 반영하기 위해서 재판부는 수의학 원서에 대한 공신력 있는 단체의 번역을 요구했지만 구체적인 체계가 마련돼있지 않았던 것. 김민주 변호사는 “손은필 서울시수의사회장님과 이인형 서울대 수의대 교수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한편, 김민주 변호사는 지난달 16일 서울시수의사회 고문변호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김민주 변호사는 “법무법인 겸인이 서울시수의사회 자문을 맡게된 만큼 의료분쟁과 같은 부분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