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펫팸족(Pet과 Family를 합성한 신조어)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펫팸족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처음 나온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서 필자가 수의대생이었던 90년대 중후반에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없었고, ‘애견인’ 정도가 전부였었습니다.
‘애견’이라는 단어도 최근에는 주로 펫샵 혹은 펫 전문매장이라고도 부르는 애견샵에서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개를 지칭하는 단어가 이렇게 변하면서 펫 문화 역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강아지 전용 치약·칫솔부터 다양한 옷, 마약 방석, 선글라스 등이 출시되며, 사람의 의식주 문화와 거의 동일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펫팸족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반려동물 문화가 바뀐 것은 과거의 개·고양이의 의미와 현대의 반려동물로서의 의미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개와 고양이의 의식주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바로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차’에서 기인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의 의인화와 종족 우상
현대의 반려동물은 예전과 다르게 사람과 아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내 강아지”라는 말보다는 “내 새끼” 혹은 몽이맘, 하늘이맘처럼 보호자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이처럼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것을 “Anthropomorphism(동물의 의인화)”이라고 합니다.
일찍이 16세기 철학자 중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범하는 심리적인 원인을 논의하면서 4대 우상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4대 우상 중의 하나가 바로 ‘종족의 우상(동물의 행동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인데요,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사람의 기준을 적용하여 “구슬프다, “새가 슬퍼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새는 실제로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많은 보호자가 개와 고양이를 키우면서 ‘종족의 우상’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나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이 맛있으니 반려동물에게도 주거나(중국 음식에는 양파를 넣는 경우가 있어서 위험합니다), 초콜릿이나 과자를 주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다보니 ‘반려동물에게 위험한 사람 음식 Best 10’ 콘텐츠가 반려동물 관련 사이트에서 인기를 끕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크게 확장되고 반려동물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너무 과도한 것이 오히려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먹는 것에 대한 풍부화 결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많은 반려동물의 비만 지수가 50%를 넘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려동물에게 채식, 괜찮을까?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먹거리 중에서도 채식(Vegan-diet)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해 영양학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동물보호, 동물복지가 발전하면서 사람에 의해 죽어가는 동물들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채식주의는 건강상의 이유 혹은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이유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공장식 축산으로 자라나는 산업동물(주로 소, 돼지, 닭)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축산물 수요를 줄여보자”라는 차원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소비하지 않는 행동을 실천합니다.
“채식이 과연 사람에게 괜찮은가? 건강상 문제는 없는가?”를 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대부분의 아미노산을 동물성 단백질에 의존하지 않고, 영양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음식을 찾거나 보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채식을 시작하고 건강이 개선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사람 중에서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는 경우,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고 동물성 단백질의 소비를 끊었는데 정작 내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의 메인 식단은 동물성 단백질이 섞여 있는 사료이기 때문입니다. 상업용 회사에서 제조되는 개와 고양이 사료에는 여러 가지 동물성 단백질(소, 돼지, 닭, 양, 오리, 칠면조, 토끼, 캥거루 등등)이 16%에서 많게는 40% 이상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족 우상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거의 사람처럼 여겨지는 반려동물에게 억지로 동물성 단백질을 주는 것에 대해 채식주의자는 왠지 모를 ‘원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와 고양이 보호자들로부터 “채식 사료는 어떠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채식을 하게 된 사연을 생각하면 개와 고양이에게도 채식을 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개와 고양이가 채식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장단점을 따져봐야 합니다.
반려견에게 채식이란?
우선, 식물성 원료의 단백질로부터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모든 아미노산이 충족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특정한 식물성 원료를 잘 선택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개는 총 23개의 아미노산 중에서 13개는 스스로 합성할 수 있지만, 합성이 불가능한 10개의 필수아미노산(아르기닌, 히스티딘, 아이소류신, 류신, 라이신, 메티오닌, 페닐알라닌, 쓰레오닌, 트립토판과 발린)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 동물성원료와 식물성 원료의 필수아미노산 점수>
개에서의 10개의 필수아미노산은 식물성 원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한 식물성 단백질(콩, 대두, 귀리, 쌀 등)을 잘 포함시키면 AAFCO 기준의 최소요구량을 맞춘 식단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몇몇 상업용 사료회사에서는 Meat-free diet를 시중에 출시하기도 합니다.
다만, 개의 간에서 합성되는 타우린이나 L-carnitine 같은 경우에는 필수아미노산은 아니지만,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노령견이나 성장기 강아지, 임신, 수유견에서는 특별히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아미노산은 식물성 원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외에 비타민D, 비타민B12 역시 식물성 원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주 소량 필요한 미량원소이지만요.
결과적으로 개들의 생존을 위한 영양소를 충족시키는 Vegan-diet를 만들 수는 있으나, 육류와 식물성 원료가 같이 혼합되어 만든 식단보다는 조금 덜 충족시키는 식단이 되고, 특히 영양학적으로 특별한 관리가 요구되는 시기의 경우에는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이 함유하고 있는 아미노산>
그렇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Vegan-diet는 장기간 급여 시 모든 개에게 해로울까요?
영양학자들이 연구를 바탕으로, AAFCO(북미)와 FEDIAF(유럽) 기준이 요구하는 영양소의 최소레벨을 충족시킨 식단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개는 잡식동물로 분류되어, 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식단이라고 해도 필수 아미노산을 잘 충족시켜준다면 단백질 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단은 엄밀히 말해 채식주의자들이 원하는 완전한 채식 사료(Completely vegan-diet, 즉 동물성 원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식단)는 아닙니다.
상업용 사료에서 나오는 채식-포뮬러에는 대부분 식물성 원료를 포함하고 있지만, 식물성 원료에 없는 영양소를 맞추기 위해 몇 가지 원료를 첨가하기 때문입니다.(타우린, L-cartinine, 비타민D, 비타민B12, EPA, DHA 그리고 동물성 원료에서 나온 아미노산 등). 이경우 성분표에 육류라고 표기되지는 않지만, 이런 원료 대부분은 동물성 원료에서 기인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채식 사료는 식물성 원료로 포뮬러를 만들어야 하므로 높은 수치의 단백질을 함유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20% 이상의 단백질을 함유한 채식사료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식물원료는 단백질 수치는 낮고 탄수화물 수치가 높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단백질 20% 이상의 포뮬러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죠.
개는 ‘잡식동물’이기 때문에 생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성장기, 임신기의 경우나 많은 단백질이 필요한 장모종의 경우에는 채식사료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육류에 의한 식이알러지가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채식사료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잡식동물인 개에서는 <완벽한 채식 사료는 어렵지만, 식물성 원료를 주원료로 하고 꼭 필요한 일부 영양소에 대해동물성 원료를 포함시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양이에게 채식이란?
그렇다면, 고양이의 경우는 어떨까요?
고양이는 개보다 평균 10% 이상의 단백질을 필요(최소 26% 이상)로 하고 필수아미노산의 수가 개보다는 더 많이 요구됩니다.
채식사료를 만들기 위해서 계란 흰자, 혹은 우유 단백질(유청, whey protein)을 사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계란과 우유가 동물에서 유래되기 때문에 완전한 채식 사료라고 보기 어렵겠죠. 결국, 식물원료만을 사용해 고양이가 요구하는 영양학적 레벨을 충족하는 포뮬러를 만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높은 단백질 요구량을 가지면서 적은 탄수화물 함량(35% 이하)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식물성 원료는 육류에 비해 저단백, 고탄수화물이므로 식물성 원료에서 어떠한 영양소를 분리하거나 추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원재료만으로 고양이의 최소 요구량을 충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리하게 고양이에게 채식 식단을 강요하기보다, 고양이로 태어난 운명을 이해하고 육류가 섞인 식단을 주는 것이 오히려 고양이의 섭식 습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집고양이든 야생고양든, 고양이는 윤리적, 종교적인 의미나 채식 운동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비건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분들의 신념은 존중하지만, 사람이 만든 특별한 윤리 잣대를 개와 고양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역차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