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임상수의사들 `약품사용내역 전산보고 안돼` 부정여론 여전
‘전산입력 부담 크다, 약품 공개 불가’ 한 목소리..’의무기록 의식 수준 낮다’ 자성의 목소리도
일선 수의사들이 처방대상약 사용내역 전산보고를 보이콧하고 있는 가운데, 소 임상 분야에서도 거부감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 진료 형태가 대부분인 소 임상수의사에게 전산보고 작업이 큰 행정부담인 데다가, 자가진료가 허용된 상황에서 약품 사용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처방전 발급형태를 전자처방전으로 일원화하는 것에는 공감대가 엿보였다. 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전자처방전 일원화만으로도 수의사처방제 위반업소를 단속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소 임상수의사들이 호소하는 불편함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일선 수의사들의 의식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농가들이 인체용 항생제까지 박스 채 구하는데 처방 공개 하라니 ‘어불성설’
소 임상수의사 대부분이 1인 원장 단독 진료..업무 부담 우려
2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우병학회에서 만난 소 임상수의사들은 처방대상약 사용내역을 전산보고해 농가에게 공개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호남 지역의 A원장은 “(농가가) 자가진료도 가능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약이든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의사 처방까지 공개하라니 말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에 사용내역을 전산보고할 때 성분과 용량을 모두 입력하다 보니, 농가들이 자가진료에 악용하고 수의사를 덜 찾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원장은 “농가가 달라고 해도 줄 수 없는 인체용의약품도, 다음에 다시 방문해보면 신기하게 구해 놓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충청 지역의 B원장도 “지금도 자가진료 해보다가 여의치 않아 수의사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수의사가 써볼 수 있는 약들이 농가에게 공개되면 자가진료로 남용된다. 그러면 수의사로서는 쓸 무기가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B원장은 “(사람이) 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상세히 공개하는 것은 공개해도 그 약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농가들이 약품을 사실상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처방내역을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방 공개 문제를 두고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 문제도 엿보였다.
A원장은 “축산차량 GPS 데이터도 처음에는 가축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했지만, 결국 수의사처방제 단속에도 활용했다”며 EVET을 통해 농가가 처방내역을 확인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렵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기록관리에 들어가는 업무 부담도 현실적인 제약이다.
B원장은 “스마트폰으로 입력하려면 거의 30분은 걸린다. 폰으로는 (입력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EMR로 차팅하면서 진료가 진행되는 반려동물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수기로 쓰면 편할 내용도 EVET 시스템 속에서 항목별 검색과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A원장은 “농가를 쭉 돌고 돌아온 후에 몰아서 입력할 수밖에 없다. PC에 익숙한 사람이 해도 최소 5~10분은 걸리는데, 하루 10농가만 되어도 1~2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C원장도 “혼자서는 입력 작업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1인 원장 단독진료가 대부분인 소임상 분야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날 만난 원장들 대부분 처방대상약 사용내역 전산보고에 대한 보이콧을 유지하고 있었다. EVET을 사용하는 사례는 HACCP 관련 서류를 발급해주는 등 일부 케이스에 국한됐다.
전자처방전 일원화에는 공감대..’의지 있다면 단속 가능해’
‘의무기록에 대한 수의사 인식 낮다’ 자성 목소리도
애초에 수의사처방제 전자처방전 의무화가 추진된 배경 중 하나는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가 ‘처방전 전문 수의사’를 활용해 처방제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처방대상약이라 하더라도 수의사 진료 없이 자유롭게 팔되, 결탁하거나 사실상 고용한 수의사에게 형식적으로 처방전을 발급하게 하는 방식이다.
면허 대여에 가까운 불법 발급이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수기처방전이 가능하다 보니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를 직접 방문해 처방전과 판매내역을 일일이 대조하지 않고서는 불법 혐의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2월 개정된 수의사법은 수기처방전을 없애고 처방전 발급 방식을 전자처방(EVET)으로 일원화했다.
소 임상수의사들도 처방전 발급 방식의 전자 일원화는 상대적으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반대 일변도인 사용내역 전산보고 문제와는 다른 분위기다.
C원장은 “(수의사가) 직접 약을 쓰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할 경우는 전자처방전만 발행하도록 하면, 불법 처방전과 연계된 판매업소의 혐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전 발급기록만 모두 EVET에 남아도 ‘처방전 전문 수의사’와의 불법 연계가 의심되는 판매업소를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의 사용내역 전산보고 의무가 철회될 경우 ‘가축약품상을 함께 운영하는 수의사가 마치 직접 사용한 것처럼 하고 전산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단속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국이 의지만 있으면 지금도 단속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동물병원이지만 도매상에 가깝게 운영하면서 직접 진료없이 처방대상약을 판매하는 곳이 어디인지 현지에서는 다 파악할 수 있고, 약 판매내역과 진료기록을 대조하는 등 점검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업계의 관계자 D씨는 “경쟁관계에 있는 판매업소끼리 서로의 불법사항에 대한 민원 분쟁을 벌이게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소 임상수의사들 사이에서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져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일부 확인됐다.
수의사 E씨는 “원래는 이미 불편하게 진료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전산화하는 것만 이슈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쓰지 않던 진료기록을 만들어 전산보고 하라니 불편함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수의 소 임상수의사가 노트에 수기로 적는 방식으로 진료부를 작성하면서 스스로의 기억을 위한 메모나 매출 파악용 자료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수의사가 봐도 어떤 진료가 진행됐는지 파악이 가능한’ 수준의 진정한 의무기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씨는 “진료기록을 제대로 남기는 수의사의 의무를 제대로 한 후 (EVET 전산보고의) 불편함이나 다른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