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가입` 가축질병치료보험 정착, 수의사의 책임 있는 변화에 달렸다
시범사업 3년차, 농가 가입 궤도 못 올라..진료서비스 개선할 지역단위 수의사 협력 필요
도입 3년차를 맞이한 가축질병치료보험 시범사업이 갈림길에 섰다. 기대와 달리 농장의 가입률이 좀처럼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건별진료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1인 원장 위주의 대동물병원 진료 환경이 한계점으로 지목된다.
김두 강원대 명예교수는 1일 한국우병학회 학술대회에서 “어렵게 만든 진료권 확보의 토대를 살릴 수 있을 지는 수의사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 수의사 나름의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가가 치료보험에 만족할 수 있도록 진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형 소 사육농가 질병치료비 보장, 재가입률 80% 달하지만..
가축질병치료보험은 소 사육농가의 질병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이다. 사람의 실손보험과 유사하다. 일단 농장이 수의사에게 치료비를 지불한 뒤, 보험사로부터 자기부담금(2만원)을 뺀 보험금을 받는 형태다.
송아지에서 4종, 비육우 8종, 한우번식우 28종, 젖소 23종의 질병·진료행위를 보장한다. 이들 항목별로 보상한도액도 설정되어 있다. 송아지 설사병은 10만원, 난산처치는 15만원인 식이다.
농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를 받아 보험료를 지불한다. 기본적으로 보험료의 50%는 국비가 부담한다. 일부 시범사업 지역에서는 지자체나 축협의 가입지원예산이 더해져, 실질적으로 농장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10~20%에 그치기도 한다.
농장이 보험료의 일부만 부담하는 반면, 전체 보험료의 130%까지 질병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자가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조기에 수의사를 불러 치료받을수록 결과가 좋아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김두 명예교수는 “한번 치료보험에 가입한 농장의 재가입률은 80%에 달한다. 농가 입장에서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만족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치료보험 시범사업, 많이 가입해도 16% 그쳐
보장항목 부족, 야간·응급진료 수요 대응에 농가 불만
하지만 이 같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농장의 치료보험 가입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가축질병치료보험 시범사업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현재 12개 시군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날 공개된 지난해 연말 기준 사업현황에 따르면 가입대상 가축(한우·육우·젖소) 대비 실제 가입두수는 약 7%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16% 정도의 가입률을 보인 청주, 함평, 합천을 제외하면 한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횡성, 경산, 상주, 서귀포 등은 아예 가입농가가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김두 명예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농가나 수의사를 대상으로 보험가입을 홍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도 시범사업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수의사 측면에서는 수기 청구의 번거로움 등이 지적됐지만, 대체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험가입농가의 진료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건당 진료비도 높아지는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치료보험 사업을 운영하는 NH손해보험이 최근 전자청구시스템 도입을 시작하기도 했다.
반면 축산농가에서는 보험료 대비 보장항목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야간·휴일 응급진료체계에 불만이 제기됐다. 치료보험에 가입했는데도 보장되지 않는 질병치료도 있고, 필요할 때 곧장 진료를 받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2020년 진행된 연구에서 농가 만족도 조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귀띔했다.
김두 명예교수는 전자에는 단계적 개선을, 후자에는 수의사들의 전향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두 명예교수는 “농가가 자가치료에 기대고 수의사는 이차적으로만 진료하는 실정이다. 질병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며 “질병발생률이 높은 상황에서 보험의 보장범위를 넓히기엔 보험료 부담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만연한 송아지설사병과 호흡기질환은 이미 치료보험 지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시범사업 초기 1년간 진료항목별 보상현황을 분석한 결과, 송아지설사와 폐렴의 보상건수가 70%를 차지했다.
치료보험에 가입한 축종의 대부분을 한우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지만, 난산처치를 제외하면 송아지 소화기·호흡기 질환이 보험 급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김두 명예교수는 단계적 개선을 해범으로 제시했다. 농가가 부담할 수 있는 보험료에 한계가 있는만큼 치료보험을 기반으로 수의사의 질병관리를 개선하고, 현재 보장하는 질병의 발생률을 줄여 보험금 지출을 낮추면, 보장범위도 조금씩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업 성장했지만 동물병원은 그대로 1인 원장..한계 분명
가칭 ‘통합동물병원’ 수의사들이 모여 일하는 협력체계 만들어야
하지만 야간·휴일 응급진료 수요는 수의사들의 자발적인 협력 없이는 개선이 어렵다. 밤이나 주말에 걸려오는 농가의 전화를 지역 수의사들이 전부 외면하면 답이 없다. 그렇다고 수의사에게 주7일 24시간 대기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두 명예교수는 “국내 대동물병원의 대부분이 1인 원장 체제다. 병원 간 협력해서 운영하는 시스템도 없다”며 “1인 원장이 농민의 모든 진료서비스 수요를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칭 ‘통합동물병원’이나 ‘동물건강관리센터’ 등으로 시군의 소 임상수의사들이 모여서 일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두 명예교수는 “유럽은 축산 규모가 커지면서 동물병원의 크기도 커졌고, 응급진료뿐만 아니라 번식, 영양, 동물복지까지 모두 담당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국내는 축산업 규모는 성장했지만 동물병원은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지역의 소 임상수의사들이 모여 야간·주말 진료요청에 번갈아 대응하는 기초적인 협력을 시작으로 예방의학, 사양관리 등 농가의 수요 전반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두 명예교수는 “결국 치료보험의 정착은 진료서비스의 질을 높여 농장이 만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핵심은 수의진료조직의 효율적 운영에 있다”면서 “치료보험에 대한 만족도와 정착이 전적으로 수의사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단일 서울대 교수는 “수의사의 진료권을 조금씩 확보해나가는 과정”이라며 치료보험 정착에 수의사들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인형 서울대 교수는 “일선 수의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협력하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면서도 “젊은 소 임상수의사들 위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