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역학은 범인 찾기가 아니고, 스탠드스틸은 효과 있다
발생원인보다는 위험요인 규명..방역조치 효과도 과학적 평가
“(그 발생농장은) 왜 터진 거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할 때마다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발병원인을 찾는 것으로 들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유대성 전남대 교수는 지난달 7일 충남대에서 열린 한국예방수의학회 초청 강연에서 역학조사를 두고 “인과성이 아닌 연관성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발병원인보다 위험요인을 찾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유대성 교수는 부임 전까지 검역본부 역학조사과에서만 8년여간 근무했다. 구제역, 고병원성 AI, ASF에 제주도 돼지열병(CSF) 롬주 등의 발생에 대한 역학조사를 담당했다. 이러한 역학조사 결과 및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역학 연구결과도 여러 논문으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특정 발생농장의) 발병 원인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찾는다 해도 다른 농장에 적용하기도 힘들다”면서 “직접적인 발병원인보다 ‘위험요인’을 찾아 해당 위험요인이 많은 농장 및 시설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출범한 제2기 대한수의사회 재난형동물감염병특별위원회에서 조호성 위원장은 과학방역을 위한 데이터 생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면 좋지 않겠냐’는 식의 직관에만 기반해 규제를 강제하기 보다, 농장이나 축산차량 등 피규제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근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한국동물위생학회에서 조호성 교수팀이 발표한 전실 관련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다(본지 2023년 6월 7일자 ‘돼지농장 전실, 없으면 2주만에 20m안까지 병원체 침입한다’ 참고).
예방수의학회에서 유대성 교수의 발표가 눈길을 끈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탠드스틸이 효과적인지, 실제 감염 후 신고·예찰로 포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차단방역시설이 더 중요한지를 역학 연구를 통해 데이터로 제시했다.
이날 소개한 유 교수의 논문 몇 편을 읽었지만, 생소한 수학 공식이 섞인 역학 논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달 25일 전남대 수의대에서 유 교수를 따로 만나 몇 가지 시사점을 추렸다(아래는 모두 유 교수가 부임 전 검역본부에서 16-17 H5N6형 고병원성 AI 사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농장과 축산차량의 차단방역이 미흡할수록, 수평전파 가능성은 높아지고 양상이 복잡해진다
유대성 교수가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 ‘Dynamics of inter‑farm transmission of highly pathogenic avian influenza H5N6 integrating vehicle movements and phylogenetic information’은 2016~2017년 국내에서 발생한 H5N6형 고병원성 AI의 농장 간 전파(수평전파) 역학을 규명했다.
당시 AI 발생농장 343개소 중 ①다른 발생농장과 연결된 차량이동기록이 있으면서 ②AI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결과도 있는 농장 259개를 분석했다. 이들 발생농장에서 분리된 바이러스는 유전자 특성에 따라 4개 그룹(C2~C5)으로 나눴다.
그 결과 발생농장 간 수평전파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차량이동 연결고리(tie formation)는 주로 같은 유전형의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발생농장끼리 형성됐다. 대체로 C2는 C2끼리, C4는 C4끼리 차량을 통해 연결된 셈이다.
물론, 차량이동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차량으로 인해 전파됐다고 볼 수는 없다. 철새든 야생동물이든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유전형(C2~C5)끼리 연결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차량이 수평전파 요인일 수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연구진은 ‘수평전파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반영하기 위해 발생농장과 축산차량의 전염가능기간(infectious duration)을 설정했다.
발생농장의 전염가능기간은 7, 14, 21일로 분류했다. 7일이라면 신고(혹은 방역당국 예찰로 포착되기) 직전 7일간 바이러스를 배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출입한 차량은 ‘오염원’이 된다.
이 축산차량이 오염원으로서 작동한 전염가능기간은 1일이나 3일로 분류했다. 가령 이를 1일로 본다면, ⓐ발생농장을 출입한 차량이 1일 안에 ⓑ또 다른 발생농장을 출입했어야 ‘연결고리’가 형성된 셈이다.
이는 연구진이 역학 분석을 위해 임의로 설정한 값이지만, 실제 발생상황과도 연결할 수 있다. 발생농장이 조기에 신고할수록 전염가능기간이 짧아진다. 축산차량의 소독이 미흡하다면 전염가능기간이 길어진다.
[그림1]에서 볼 수 있듯 발생농장과 축산차량의 전염가능기간이 길어질수록 발생농장간 연결고리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수평전파 위험도 높아지고,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도 힘들어지는 셈이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수평전파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당시 H5N6형 고병원성 AI는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통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AI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 철새 등의 요인으로 인한 개별적인 원발 발생을 의심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림2]에서 C4 유전형의 AI 발생농장들은 호남-충청·경기남부-경기북부에 걸쳐 차량으로 연결됐다. 위에 언급한 ‘수평전파였을 가능성이 있는 발생농장 간 차량 연결고리(tie formation)’로서다.
연구진이 역학적 모델링을 통해 분석한 결과, 같은 유전형의 AI 발생농장이 차량으로 인해 전파됐을 가능성은 11.8%~46%로 분석됐다.
실제 감염과 포착시점(의심신고 혹은 예찰과정 중 검출) 사이의 시간차는 평균 5.91일로 추정됐다.
당시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던 계란운반차량은 역학 연구에서도 두드러졌다. 전체 축산관계차량 이동 중 계란운반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그쳤던 반면, 수평전파였을 가능성이 있는 발생농장 간 차량 연결고리(tie formation)을 구성하는데 계란운반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7~17%에 달했다.
유대성 교수는 “당시 현장 역학조사를 벌이면서도 산란계농장 내부로 출입하는 계란운반차량의 위험성이 보였는데, 이후 역학 데이터를 분석하면서도 놀랐다”고 전했다.
▲스탠드스틸은 수평전파 위험을 낮추는데 기여한다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발생농장이 처음으로 나오면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이 발동된다. 구체적인 위험요인(발생농장과 연결된 출입차량·사람·가축 거래 등)을 파악할 시간을 벌면서 수평전파 위험을 낮추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스탠드스틸이 오히려 위험기간에 차량이동을 폭발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의심농장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확진(스탠드스틸 발령)되기 전에 출하가 임박한 가축을 도축장으로 서둘러 보내는 식이다.
스탠드스틸이 발령되어도 사료공급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이동할 수 있는데, 형식적인 행정절차만 추가될 뿐 ‘다닐 차량은 다 다닌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번 연구는 전국적으로 발령되는 스탠드스틸이 수평전파 위험을 줄인다는 데이터를 보여준다.
[그림3]에서는 전국 단위 스탠드스틸 이후로 발생농장 간의 차량 연결고리 형성 정도가 줄어드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탠드스틸 발령시점에는 아직 발생이 포착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AI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전염가능기간인 발병농장을 출입한 차량이 (당국에 파악되지 않았을 뿐) 오염원으로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스탠드스틸이라는 융단폭격이 내려지면 해당 오염원의 이동이 줄어들게 되고, 스탠드스틸 이후에 비로소 감염여부가 포착된 해당 발생농장으로부터의 유래된 차량연결고리가 예방적으로 감소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장거리 연결고리가 확인됐던 C4 유전형 발생농장들 사이의 차량 연결고리 형성이 감소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유대성 교수는 “원거리 수평전파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전국 단위의 스탠드스틸이 효과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