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확산은 막고 농가 피해는 줄이고` 권역화 방역체계 눈길
자립도 반영한 권역화 연구..장거리 이동 잦은 가금산업 특성·데이터 접근성은 `한계점`
고병원성 AI 발생 시 확산위험은 차단하면서 이동제한으로 인한 농가피해는 줄이는 ‘권역화 방역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HPAI 발생 시 지역단위 권역화 방역체계 구축` 연구를 주관한 이지팜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18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학계, 업계가 참여하는 연구과제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AI 확산 막는 이동제한하지만..그 안에서 도축·분뇨 등 자립가능한 ‘권역’
발생농장 주변으로 반경 500m, 3km, 10km의 원을 그려 살처분 등을 실시하는 전통적인 ‘방역대’와 달리 ‘권역’은 권역 내외부의 이동을 제한해 확산을 차단하면서도 권역 내부 농가의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설정된다.
이제까지도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방역대보다 더 큰 경계를 기준으로 추가적인 방역조치가 실시되곤 했다. 충북 음성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경상북도에서는 충북지역으로부터의 병아리 입식을 금지하는 식이다.
이러한 조치가 시도 행정경계를 기준으로 실시되다 보니 농가로서는 피해가 불가피했다. 가령 닭 도계장이 부족한 전남에서 AI가 발생해 가금 반출을 금지한다면, 출하지연으로 인한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수집되는 축산관계차량의 이동정보를 활용해 AI 전파위험과 자립도를 계산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도축, 사료공급, 종축, 분뇨처리 등의 차량 이동밀도로 지역별 처리 수요와 용량을 계산하는 한편, 발생지역 주변의 확산 위험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웹프로그램에 발생농장을 입력하면 주변에 권역이 설정된다. 권역 내의 출하, 사료, 종축, 분뇨처리 자립도도 산출된다. 특정 항목의 자립도가 부족하면, 주변 작업장을 추가로 확보해 권역을 넓힐 수도 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해당 정보를 축산관계자에게 신속히 전파하고, 이들이 권역내 축산시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계열화율 높고 장거리 뛰는 가금업계 특성..권역화에 적합한가
하지만 계열화율이 높은 가금업계의 특성이 권역화에 적합치 않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날 자문회의에 참석한 육계협회 관계자는 “육계에서는 이미 95% 이상 수직계열화된 특성이 권역화 도입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계열화된 업체 내부에서 장거리 이동이 빈번한만큼 권역화 방역체계가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산업이 계열화되면서 병아리 입식이나 출하를 위해 1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도계장이나 종축장이 권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한들, 계약된 업체가 아니면 농가가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토종닭협회 관계자도 “토종닭은 도축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고 종계장 등이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지도 않다”며 “권역화가 되더라도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AI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권역을 설정하려면 축산관계차량 외에도 기존 AI 발생이력이나 철새도래지 인접 여부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농장 정보도 없이 어떻게 연구하나..데이터 제한에 답답함 토로
권역화를 포함한 방역체계 개선방안을 보다 정밀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접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자문회의에 참석한 박선일 강원대 교수는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해도, 보안각서를 써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축산농장의 정보조차 제대로 제공받을 수 없다”며 “국내 역학 연구의 근본적인 한계점”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권역화 방역체계 연구과제도 ‘리’ 단위까지의 차량이동정보만을 가지고 수행됐다. 특정 차량이 ‘OO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ㅁㅁ농장’을 방문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채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차량의 최종 방문지가 도계장이면 닭농장에서, 도압장이면 오리농장에서 출발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정도다.
도축, 분뇨 등 처리량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축산차량 이동빈도를 기반으로 유추한 수치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선일 교수는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비식별화’ 처리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음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며 “기초 데이터도 없이 연구하라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