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식 사료의 인터넷 판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처방식 사료는 질병이 있는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로써 수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함께 처방되어야 하며, 수의사의 진단 없이 무분별하게 급여할 경우 오히려 반려동물에게 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처방식 사료를 취급하는 회사들 역시 동물병원을 통한 공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변하고 있다. 동물병원 수의사를 통해서만 취급되어야 할 주요 처방식 사료들이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수의사의 진단이나 처방이 없어도, 소비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처방식 사료를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동물병원에서 직접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고 처방식 사료를 판매하는 경우다. 실제로 주요 포털사이트 ‘쇼핑’ 검색을 해보면 동물병원에서 직접 처방식 판매에 나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위 사진 참고).
둘째, 일부 회사에서 직접 처방식 사료를 인터넷으로 유통하는 경우다.
동물병원 전용 사료를 표방하며 동물병원으로만 제품을 공급하던 업체가 ‘경영난’과 ‘인터넷 유통 채널의 발달’을 이유로 인터넷 판매를 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의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동물병원에서 동물을 진료한 뒤 처방식 사료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제품을 추천해왔는데, 실제 소비자는 인터넷으로 해당 제품을 구매하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인터넷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동물병원을 통한 유통 비율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편
실제 반려동물 사료(펫푸드)의 인터넷을 통한 유통 비율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터넷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은 43.9%로 영국(9.4%), 미국(13.3%), 캐나다(2.9%), 일본(10.7%)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동물병원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12.0%)이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의 경우 동물병원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이 1.7~5.2% 수준이다. 일본은 펫샵(56%), 미국·영국·캐나다는 마트같은 그로서리 점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이 가장 높다.
동물병원을 통한 사료 유통 비율이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하더라도, 점차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으며(2017년 12.5% → 2018년 12.0%), 인터넷을 통한 유통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2017년 42.9% → 43.9%)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 수 있다.
하지만, ‘처방식’이라는 특수한 성격의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최종적인 피해는 반려동물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처방식’의 인터넷 판매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처방식 사료, 기능성 사료, 일반 사료, 마트 사료 모두 법적으로는 그냥 ‘사료’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사료’에 불과하므로, 일반 사료의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 것처럼 처방식 사료의 인터넷 판매도 합법이다.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는 ‘처방식 사료’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등록 기준을 신설하여 관리해야 한다. 그럼 ‘동물용의약품’의 인터넷 판매가 불법인 것처럼 처방식 사료의 인터넷 판매도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제한이 필요한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현재는 ‘법적으로 제한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을 통한 처방식 사료 판매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수의사는 억울하고, 반려동물은 부작용 가능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답답한 형국’이다.
수의사 스스로 처방식 사료 ‘처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수의사 스스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수의사들은 ‘처방식 사료’를 정말 처방해왔냐는 것이다.
2017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장사상충예방약을 동물병원으로만 공급해온’ 주요 업체에 대해 “약국으로도 심장사상충예방약을 공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중 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 시정명령에 불복해 부과처분취소송을 냈고, 이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며 ‘심장사상충예방약의 동물병원을 통한 공급’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런데,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정위 심사관이 이런 주장을 했다.
“수의사들은 (심장사상충) 성충검사를 잘 실시하지도 않으며, 동물병원에 가서 심장사상충예방약을 달라고 하면 진료 없이 비수의사 직원이 그냥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심장사상충약의 안전성과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며 동물병원을 통한 유통을 강조하지만, 실제 수의사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동물용의약품은 법적으로 반드시 동물을 진료한 뒤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심장사상충약 주세요”하면, “네 얼마입니다”하고 판매하는 동물병원이 많았다. 불법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병원의 행태가 <심장사상충예방약은 동물병원을 통해서만 유통되어야 안전하다>는 주장의 발목을 잡을 뻔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물병원이나 약국이나 똑같이 ‘약을 그냥 판매’하는데, 왜 심장사상충약이 동물병원을 통해서만 유통되어야 안전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처방식 사료의 인터넷 판매’ 사태를 보면서 당시 공정위 심사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젯밤 동네 동물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진열대에 있는 처방식 사료 하나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대에 있던 직원(리셉셔니스트)에게 카드를 제시하고 곧바로 사료를 살 수 있었다. 처방식 사료 구매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의사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필자는 어제 그 동물병원에 처음 방문한 것이었는데 어떤 동물을 키우는지, 내 반려동물이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몇 살인지 등에 대한 질문은 단 하나도 받지 못했다.
물론, 동물병원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다.
처방식 사료를 일반 진열대에 진열하지 않고, 별도로 관리하며 반드시 수의사와의 상담 후 판매하는 동물병원도 많다. 이런 동물병원이야말로 처방식 사료를 ‘처방’ 한다고 볼 수 있으며, 모든 수의사가 처방식 사료를 이렇게 ‘처방’해야, 인터넷 판매를 비판할 명분이 생긴다.
처방식 사료는 ‘동물용의약품’과 달리 법적으로 진료 후 판매해야 할 의무가 없다. 수의사가 판매하지 않아도 되며, 인터넷으로 판매해도 합법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수의사의 ‘처방 후 판매’ 노력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처방식 사료의 인터넷 판매’의 위험성을 어떻게 알릴지, 그리고 안전한 처방식 유통을 위해 어떤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수의계 내부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처방식 사료를 실제로 처방’하려는 개별 동물병원 수의사들의 노력이 없다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처방식 사료, 정말로 처방하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