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벳이 이영란 수의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입니다. 당시 고래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이영란 수의사는 6년 동안 아쿠아리움을 거쳐 자연보전단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 사무소에서 오션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영란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다시 만났습니다.
Q. 자기소개를 다시(?) 부탁드립니다.
WWF 오션팀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이영란입니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반려동물 임상에 9년간 있다가, 오랜 꿈이었던 해양동물 분야를 찾아왔습니다.
아쿠아리움에서 수의사를 채용하지 않을 당시라 어려움도 있었는데요, 고래연구소 소속 박사님의 강연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고래연구소로 가게 됐습니다. 정규직 수의사 채용도 아니었고 연구보조원으로 일했지만, 해양생태학 서적을 찾아보면서 소동물 인턴수의사가 된 것처럼 배우며 일했습니다. 부경대 해양생물학부에서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상괭이들을 구조치료한 일이나 여수 아쿠아플라넷에서 러시아 연구소와 함께 벨루가 번식 연구를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실제로 해양 포유류를 실내에서 번식시키기 매우 어렵거든요.
5년 가량 아쿠아리움 촉탁 수의사로 일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했습니다.
Q. 최근에 미국의 ‘The marine mammal center’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The marine mammal center는 해양포유류의 구조치료 및 연구, 교육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조치료’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프거나 상처 입어 구조된 해양 포유류들을 치료하고 일정기간 돌보는 것입니다. 한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같은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죠.
진료는 10명을 웃도는 수의 팀이 담당합니다. 해양 포유류들을 수술하기도 하고, 개체수가 많은 만큼 부검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연구가 상당히 활발한데, 수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생물학과나 동물학과 등의 관련 학문 전공자들도 함께 있습니다.
The marine mammal center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사설 기관입니다. 기부금이라 하면 약간 황당하실 수도 있는데요, 지역 유지가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큰 차질 없이 운영됩니다. 정직원 비율이 낮고 수의사도 2~3명 밖에 없긴 하지만요.
앞서 말했듯 이 곳의 많은 연구자들은 해양포유류 분야 학문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고 상당히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인턴쉽이나 익스턴십도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The marine mammal center같은 구조치료센터를 언젠가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있습니다.
Q. WWF로 오신 계기가 있다면
운 좋게 The marine mammal center에 방문한 세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할 시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WWF 소식을 듣게 되었고 우연히 지원해봤는데 합격해 2017년에 입사했습니다.
WWF가 수의사의 전형적인 일터는 아니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구조치료를 하기로 맘먹었을 때부터 임상 쪽과는 거리를 두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해양동물 수의사와 같은 임상쪽 일보다는 보전에 더 관심이 있어 선택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전 직장에 비해 연봉 차이가 상당한 편이에요. 그렇지만 이 일이 재밌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 만족합니다.
행복에 대해 오래 고민하면서 ‘지금 하고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하는 편이라 괜찮습니다.
Q. WWF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WWF는 World Wildlife Fund란 이름으로 먼저 만들어졌어요. 판다가 그려진 로고가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판다는 중국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동물인데, 영국에 판다를 보냈을 때 잘 살게 하기 위해 이들에 맞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국가적 차원의 관리 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의미로 현재는 World Wide Fund for Nature로 불리고 있습니다.
Q. WWF는 어떤 일을 하나요?
WWF는 크게 기후 및 에너지, 해양, 식량, 산림, 담수, 야생동물 등 6가지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약 110여개의 사무소가 있는데요, 모든 나라가 무조건 6가지 분야를 다루는 건 아닙니다.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최우선 주제를 정하는데요, 2014년에 출범한 한국지부는 <기후 및 에너지>와 <해양> 섹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Q. WWF가 국내에서 주목하는 문제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후 및 에너지> 섹션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적절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데 서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탄소에너지원의 과한 사용으로 심화되므로 사용량 감소가 시급한데요,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석탄 생산에 투자하고 있는 등 ‘탈석탄’에 무관심합니다. 또한 에너지 정책에 관해서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당사자의 입지가 너무 확고합니다.
이에 대해 WWF는 폭력적 시위가 아닌, 석탄유통경로에 접근하여 사용량 감소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해양> 섹션은 크게 해양보호와 수산으로 구분되는데요, 전반적으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수산물을 많이 먹는 나라입니다. 하다못해 국물요리를 할 때도 멸치를 끓여 육수를 내는 경우가 많죠.
이처럼 국내에서 어류는 보전의 대상이라기 보다 어업의 대상, 즉 식량원으로서 인식이 강합니다. 국내 정책에서도 0순위는 어민의 생계 유지입니다. 그래서 수생물 개체수도 적고, 오염도 심각한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원양업도 매우 발달했는데, 원양어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심각합니다.
Q. 해양보호 쪽에서 심각한 이슈는 무엇인가요?
혼획문제입니다. 얼마 전에도 뉴스에서 제주 큰머리돌고래 사망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물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혼획’은 원래 잡으려던 종 외에 다른 종이 우연히 잡힌 것을 의미합니다. 혼획된 고래는 그물에 걸린 뒤 질식사로 죽는데, 이런 식으로 매년 엄청난 숫자의 상괭이가 떼죽음을 당합니다.
상괭이는 어민들의 주 타겟은 아니면서, 지나치게 큰 그물과 작은 그물코에 걸려 죽게 됩니다. 상괭이는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되어있고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어 혼획 방지가 시급합니다.
저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은 어구법 관련 법률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양 보전에 관한 정책도 보다 면밀히 설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보호대상 해양생물이 77종이지만 앞으로 우리의 노력에 따라 더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해양 보전을 위해서 관련 법률 강화가 절실합니다.
Q. WWF의 업무 환경은 어떤 지 궁금합니다
우선 일이 재밌습니다. 사내에서 기본적으로 소통하는 언어가 ‘영어’라서 다국적 단체임을 실감했죠. 지금은 처음보다 많이 적응했습니다.
국제기구인만큼 시야가 넓습니다. 여러 나라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보게 되죠.
일의 소재를 고려한다면, 사실 개인적으로 수의학 전공자보다 국제정치나 국제법 지식을 갖추고 관련 학과를 전공한 사람이 이 곳의 일을 더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 수의학적 지식이 빛을 발할 때는 해양 동물을 부검할 때입니다. 수의사 같은 전문가는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상황 판단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Q. 해양 동물 부검은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작년에 열 번 정도 해봤습니다. 한 달에 한 건 정도 한 셈이죠. 해양보호 쪽에서 부검이 필요할 경우 자문 형태로 장기나 손상부위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수산 쪽은 부검보다는 유통 경로나 관련 정책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Q. WWF 한국지부 오션 팀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전입니다. 이 때문에 혼획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른 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해외는 ‘dolphin safe label’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식용 어류 포획 과정에서 해양 포유류를 잡지 않았다는 인증마크인데, 국내에도 이와 같은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WWF와 별개로도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몬테레이 수족관에서 감명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 수족관은 예쁘고 신기한 물고기가 주 관심사이지만 몬테레이 수족관은 지속가능성과 생태계에 대한 교육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교육으로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지현 기자 kohcel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