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미치지 않고 수의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킴 힐러스 수의사, KSFM 퍼스트 클래스에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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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의사의 자살률은 의사보다 2배 이상 높고 치과의사보다 2배 가까이 높으며 일반 국민보다는 약 4배 높았다. 네덜란드에서는 수의대 졸업 후 5년 안에 30%의 수의사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25.8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였다(OECD 평균 : 11.6명).

자살률이 높은 직업인 수의사, 그리고 OECD 자살률 1위 국가 한국. 그렇다면 한국 수의사는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할까. 미국수의전문의인 킴 힐러스 수의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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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 oncology)인 킴 힐러스 수의사(사진)는 지난해 6월 한국에 와서 서울대학교동물병원 수의응급의학교실과 로컬 2차 동물병원에서 일을 돕고 있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5월 19일(일) 시작된 한국고양이수의사회(KSFM) 퍼스트 클래스 첫 강의에서 수의사 복지에 대해 강의했다(강의제목 : How to stay sane as a veterinarian?).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수의전문의까지 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의사들이 미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동물을 다루는 직업 수의사…하지만 동물 외에 신경 쓸 게 너무나 많아”

“수의사 본연의 활동인 개·고양이 환자에 집중하려는 노력 필요”

임상 수의사는 동물을 치료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온전히 동물에 집중하기 어렵다. 동물이 좋아서, 아픈 개·고양이를 치료하고 싶어서 수의대를 선택한 경우가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단 매우 바쁘고, 동물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요구와 항의도 경험해야 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집에 가서도 진료 케이스를 떠올리며 푹 쉬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어릴 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뤘지만 다른 압박들이 많아졌다”라며 “열정적으로 수의사 일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압박감을 던져버리고 개, 고양이 환자에게만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호자는 종종 수의사에게 큰 어려움을 선사한다. 킴 힐러스 수의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보호자가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의료보험제도가 잘 갖춰진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불만도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동물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돈에 대한 고민과 압박을 받는다. 봉직 수의사일 때는 불만족스러운 보수에 대한 고민을, 원장이 되면 병원 경영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미국의 대형 동물병원 프랜차이즈의 경우, 고용된 수의사들을 대상으로 정기적(1~3개월마다)인 매출 점검을 한다. 이것이 수의사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동물의 삶의 질만 고민하지 말고, 수의사 자신의 삶의 질도 돌아보자”

“수의사 직업을 평생 유지하기 위해 신경끄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결국 스스로 결정이 중요해”

킴 힐러스 수의사는 종양 전문가로서 수많은 개·고양이 암 환자를 진료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질(QOL)에 대해 고민하고 상담했다. 하지만, 정작 수의사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질을 돌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킴 힐러스 수의사가 수의대 학생이던 시절 멘토로 만난 50대 여자 수의사는 고양이 전문 수의사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만성적인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훌륭한 수의사로 평판이 좋았지만, 보정 중에 고양이가 도망가자 고양이에게 소리를 치고 욕을 퍼붓는 모습을 보였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자신의 멘토처럼) 그렇게 되기 전에 멈춰야 한다. 분노와 번아웃을 컨트롤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가 동물 환자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람이 번아웃되면, 모든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도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임상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수 있다.

하지만 킴 힐러스 수의사는 이렇게 반문했다. “수의사를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까, 아니면 주유소에서 일할까? 쉽지 않다. 결국, 어떻게 오랫동안 수의사로 일하면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개, 고양이 환자를 돌볼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킴 힐러스 수의사가 강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문장은 “Take a breath”와 “Let it go”다. 잠시 숨을 돌리는 여유를 갖고,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결국 수의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수의대생일 때는 ‘수의사가 되면 취미도 갖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많이 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수의사가 되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돈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며 “좋은 집과 멋진 차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 압박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only you can change your life)”며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수의사 스스로 결정을 내리길 당부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정기적인 운동 및 신체적 건강 유지 ▲남들과의 비교 금지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하기 ▲긍정적인 병원 문화 만들기 등을 소개했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돈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개, 고양이 환자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임상도 더 잘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수의사들끼리 경쟁을 하지 않도록 수의사 직업의 가치가 무엇이고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직업인지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나쁜 보호자도 만나고, 수의사에게 온갖 불만을 퍼붓는 보호자도 만난다. 하지만, 좋은 보호자도 많다. 악플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수의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만족하는 사람도 많다. 10%의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Let it go), 90%의 좋은 것을 지속적으로 떠올리는 습관도 필요하다.

나쁜 것만 생각하면 생각이 거기에 갇혀서, 제대로 임상에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진료를 위해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킴 힐러스 수의사의 설명이었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우리 동물 환자를 생각해봐라. 그들에게는 음식, 쉴 곳, 사랑(food, shelter, love)만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수의사들은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쓴다”며 “돈, 시간, 가족, 삶의 질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고, 이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미치지 않고 수의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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