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벤다졸이 항암제?` 동물병원 구입 문의에 몸살‥오남용 우려

벤지미다졸의 세포 분열 억제 효과에 관심..사람·동물 모두 효능·안전성 근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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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fenbendazole)의 항암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한부 암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개선된 사례가 유튜브 등을 통해 관심을 모으면서 일선 동물병원에도 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는 아직 세포 단위(in vitro)의 실험으로만 확인되고 있어, 오남용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논문(2018, Scietific report)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논문(2018, Scietific report)

펜벤다졸 먹은 사람 환자가 암치료? ‘학술근거 미비’ 지적

벤지미다졸 계열의 펜벤다졸은 선충, 흡충, 조충 등 장내기생충을 사멸하는 구충제다. 개, 소, 말, 양 등 동물에게 널리 사용되는 구충제다.

세포내 미세관의 기본 단위인 튜불린(tubulin)에 작용해 세포분열을 저해함으로써 성장을 억제하고 사멸을 유도한다.

펜벤다졸은 동물용의약품으로만 허가되어 있고, 사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약물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펜벤다졸을 복용한 암환자 조 티펜(Joe Tippens)의 사연이 외신과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폐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조 티펜은 ‘뇌종양 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해 치료됐다’는 수의사의 글을 접하고 의사에게 알리지 않은 채 펜벤다졸을 복용했다. 3개월 후인 2017년 5월 PET-CT 검사 결과 암세포가 없어졌다는 결과를 받았고, 같은 해 9월과 이듬해 1월 검사에서도 정상을 유지했다.

이와 함께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에 대한 학술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암환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2018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에는 펜벤다졸이 구충 효과를 보이는 것과 유사한 기전으로 사람의 암세포에 항암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2017년에는 수의비교종양학회지에 개의 신경교종 세포에 펜벤다졸, 메벤다졸이 튜뷸린에 작용해 사멸효과를 보인다(anti-tubulin effect)는 실험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논문들이 모두 세포 단위(in vitro)에서 실험을 다루고 있는 만큼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람은 물론 동물에서도 생체(in vivo)에서의 임상시험이 실시되지 않은 만큼 효능이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량으로 투약할 경우 정상적인 세포의 분열을 방해해 세포를 죽이거나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전남대 수의대 기생충학 교실의 신성식 교수는 “세포 내 튜불린에 작용해 세포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는 펜벤다졸의 벤지미다졸 구조에 의한 것으로, 벤다무스틴(bendamustine) 등 벤지미다졸 구조를 가진 항암제가 개발된 바도 있다”면서도 “벤지미다졸의 세포 내 튜뷸린에 대한 특성은 암세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펜벤다졸이 주 성분인 파나쿠어는 인체용 구충제나 항암제로 개발되지 않아 인체에서의 안전성에 대한 자료가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 구충제

동물병원에 구입 문의 폭주..사람용 처방은 불법

동물 암환자에 대한 근거도 아직 없어..허가외사용 고려할 단계 아냐

펜벤다졸이 유사 항암제인 것처럼 관심을 끌자 일선 동물병원에도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사람 암환자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암환자의 보호자들도 펜벤다졸 구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 일선 임상수의사는 “동물병원으로 대뜸 파나쿠어(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구충제)가 있는지 찾는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반려동물에서 기생충 감염이 문제가 되면 치료약을 ‘구충제’로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파나쿠어 같은 제품명이나 펜벤다졸 성분명을 직접 지목하는 경우는 의심사례로 꼽을 수 있다.

수의사는 동물을 치료할 목적으로 진료 후 약품을 처방·사용할 수 있다. 사람에게 쓸 약품을 처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의사가 동물에게 약품을 처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동물병원과 거래하는 공급처에서도 품절 사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펜벤다졸 성분이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오남용 우려를 높인다. 동물약국 등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에서는 ‘동물에게 사용하겠다’고만 말하면 수의사 진료없이도 누구나 아무 제약 없이 펜벤다졸 약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수의사회는 20일 “보호자만 방문하는 경우 등 (동물을) 진료하지 않고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수의사법 위반”이라며 “동물 진료 및 처방 목적 외에 의약품이 판매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날 대한약사회도 “동물용의약품으로 허가된 제품을 암치료 목적으로 임의 복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며 “사람에 대한 부작용 관련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복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동물약국은 허가된 용법·용량 외의 판매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암환자에 대한 허가외사용(extra-label)도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

반려동물암센터 임윤지 원장은 “펜벤다졸이 동물 암환자에게 적용된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며 “학술적 근거도 없이 동물 암환자에게 사용한다면 치료보다는 실험이나 민간요법에 가까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임윤지 원장은 “펜벤다졸이 구충목적의 투약에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품이지만, 비슷한 작용기전으로 항암효과를 기대하기 위해 투약용량과 기간을 늘려도 포유류 동물의 정상 세포에 부작용이 없을 지는 미지수”라며 “아직 어떤 종류의 암에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밝혀진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성식 교수도 “동물에서도 암 치료용으로 허가가 나 있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암을 대상으로 반복적인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았다”며 “어떤 종류의 암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모르므로 항암 목적으로 처방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말기 암환자라도 보호자의 판단에 따라 사용해야 하며, 그런 상황에서라도 수의사가 처방을 내리거나 전문가적 입장에서 조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펜벤다졸이 항암제?` 동물병원 구입 문의에 몸살‥오남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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