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북한에서 왔다면 어떻게 왔을까
양돈수의사회 연례세미나에서 접경지 ASF 유입 추정 시나리오 제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농장에서는 소강상태, 멧돼지에서는 산발적 발생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아직 ASF 바이러스의 유입추정경로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11월 27일 충북 C&V센터에서 열린 한국양돈수의사회 연례세미나에서는 북한 접경지역으로의 바이러스 유입 시나리오와 멧돼지 대책을 조명하는 세션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야생동물 전문가인 김영준 국립생태원 부장과 멧돼지를 연구하는 서울대 이성민 연구원이 연자로 나섰다.
멧돼지 직접 넘어올 가능성은 희박..남북 잇는 하천·조류로 인한 간접 전파 시나리오
김영준 부장은 북한에서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가 DMZ를 거쳐 넘어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멧돼지가 군부대 철책을 넘어오기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DMZ에는 멧돼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 김영준 부장의 지적이다. 멧돼지는 숲에 사는 동물인데, 시계확보를 위해 정기적으로 불을 지르는 DMZ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영준 부장은 국내 멧돼지의 ASF 감염시점을 9월 중순 이후로 추정했다. DMZ 남쪽에서 양성 폐사체가 발견된 것은 10월 12일부터지만, 양성 폐사체의 부패정도를 감안해 역해석한 결과다. 파주·연천의 양돈농가에서 ASF가 최초 발생한 시점(9/17)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북한의 접경지 인근에 폐기된 감염 폐사체로 인한 간접전파 가능성을 제기했다.
7, 8월 북한 당국의 지시로 폐기된 ASF 감염 돼지들이 인프라 부족으로 제대로 매몰되지 못하면서 야생환경에 노출됐고, 이들이 하천이나 야생조류를 통해 남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ASF에 감염된 돼지의 폐사체에는 6개월 이상 ASF 바이러스가 생존할 수 있다.
김영준 부장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 임진강과 연결되는 사미천, 역곡천의 수계와 9월 초중순 휴전선 서부 지역의 강수량 통계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하천을 통해 ASF 감염 폐사체의 조각이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파주-연천 지역의 멧돼지에 바이러스가 유입된 경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철원 원남면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ASF 양성 멧돼지에는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사체를 섭식하는 야생조류가 남북을 오가며 바이러스를 전파시키고, 특히 군부대 잔반이 위험요인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수계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는 점도 감안했다.
김영준 부장은 “북한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은 한 차례가 아닌 여러 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양돈농가에서의 최초 발생이 멧돼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은 낮게 점쳤다. 거의 동시에 발견된 1차(파주), 2차(연천) 농장 인근에서 멧돼지 폐사체가 곧장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서식하는 멧돼지는 사육돼지와 마찬가지로 ASF에 감염되면 높은 확률로 폐사한다. 감염 후 바이러스를 배출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증상발현 시점 사이의 간격이 짧아, 멧돼지가 발생농장에 바이러스를 직접 전파했다면 인근에서 폐사한 채로 발견될 확률도 높다는 얘기다.
ASF 발생농장이 위치한 임진강 이남지역에서는 아직 멧돼지 양성 폐사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멧돼지 자가소비는 금지하면서 보상금은 부족..개체수 저감에 한계 우려
폐사체 제거 막는 지뢰지대도 문제
이성민 서울대 연구원은 “11월까지 전국에서 멧돼지 6만여마리가 수렵됐는데, 2017년 5만 5천두를 수렵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라며 “전문적인 엽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렵 증가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멧돼지 수렵 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환경에서 전문 엽사가 늘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가소비를 금지하는 대신 지급하는 포상금 20만원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성민 연구원은 “팀단위로 움직이는 엽사에게 두당 20만원은 너무 적다”며 몰래 유통시키면 얻는 이익이 보상금에 비해 높다는 점도 꼬집었다.
김영준 부장도 “멧돼지 쓸개 등을 한약재로 팔면 훨씬 더 받을 수 있는데 20만원으로 (자가소비를) 포기하라고 하는 수렵대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ASF 감염원이 되는 폐사체 제거도 문제다. 이성민 연구원은 “멧돼지가 농작물을 노리고 내려오던 시기는 지났다. 폐사체 수색도 산림 안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감염 멧돼지 폐사체가 주로 발견되고 있는 민통선 내부는 농경지 등 일부를 제외하면 지뢰가 매설된 지역이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준 부장은 “지뢰가 많이 매설된 철원 북부는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미 강원 산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폐사한 개체가 미라화된다면 향후에도 멧돼지에서의 발생이 지속될 경향을 보일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성민 연구원은 “내년 2월까지 이어질 번식기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는 어렵다. 새로운 새끼 멧돼지가 태어나는 내년 6월까지가 분수령”이라며 “멧돼지를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멧돼지가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방역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