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선제로 치러진 제26대 대한수의사회장 선거에서 허주형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이 당선됐습니다.
첫 직선제 회장, 첫 임상수의사 출신 회장의 타이틀을 거머쥔 허주형 당선인을 데일리벳이 만나 당선 소회와 임기 첫 해의 계획을 알아봤습니다.
Q. 회장 당선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선거운동을 되돌아보는 소회를 전해주신다면
지난해 12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선거 준비에 돌입했으니 약 40여일간 한 셈이다. 전국의 동물병원과 공직 관련 기관 등을 절반 정도 방문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동물병원 진료환경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동물병원을 찾아오는 신규 내원객이 줄어들고, 수입도 감소하고 있었다. 임상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 많이 고민하는 기회가 됐다.
공직 분야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농식품부에 방역정책국이 만들어지고 지자체에 동물방역조직이 신설됐지만 인사 적체는 여전했다. 동물방역 부서가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했는지도 의문이다. 일선 수의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대한수의사회장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 등 관련 기관에 문제를 정확히 지목해야 한다.
Q. 첫 직선제 회장이자, 대부분의 회원들이 현역 임상수의사 회장을 처음으로 뽑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임상회원들의 기대가 높을 것 같은데 부담이 되지는 않나
임상수의사로 일한 지 28년이 넘었다. 그만큼 동물진료 환경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여전한 동물 자가진료, 수의사처방제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임상수의사가 나서야 한다. 부담보다는 사명감이 더 크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Q. 반려동물 임상 분야에만 회무가 치우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천시수의사회장에 취임했던 것이 38세 때다. 그때부터 수의사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농장동물 분야나 공직 처우개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시수의사회장 재직 시절에도 인천보건환경연구원 등 지역 수의직 처우개선에 노력했다. 예전에 8만원이었던 수의사 수당을 15만원으로 인상하고, 공중방역수의사 제도를 도입하는데도 일조했다.
회무를 25년여간 해오다 보면 반려동물 이외에도 많은 수의분야에 경험을 쌓게 된다. 중앙회 사무처의 수의사들을 제외한다면, 다양한 수의 관련 분야에 경험을 갖춘 인물로 손꼽힌다고 자부한다.
반려동물 임상 분야에만 치우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그칠 것이다.
Q. 당선 인사에서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설명절 등을 감안하면 임기시작까지 약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이미 인수위원회 인선을 마무리했다. 한태호 인천광역시 농축산유통과장을 위원장으로 일선 반려동물 임상수의사, 양돈수의사회 임원, 법조인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예전에는 2월말 대의원총회에서 신임 회장을 선출하다 보니 곧장 다음날부터 업무가 시작됐다. 지금은 한 달이 넘는 인수인계 기간이 있어 다행이다.
인수위를 통해 전임 김옥경 집행부가 달성한 업적과 추진 현안을 한 번 더 챙겨볼 생각이다. 특히 한수약품과 유·무형 재산 등 대한수의사회의 재정 상태를 면밀히 살피겠다.
Q. 현 집행부도 당선인의 의사를 반영해 올해 사업계획을 구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 가운데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들은 무엇인가
단기공약 중에서는 우선 광견병 관납백신과 동물병원 전용제품 문제, 산하단체 운영 개선 등에 곧바로 착수할 생각이다.
선거기간 동안에도 밝혔듯 광견병 관납백신은 실패한 정책이다. 일선에서는 관납백신이 오히려 광견병 백신 접종률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납백신과 일반백신이 받는 가격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농식품부를 비롯한 관공서와 광견병 관납백신 정책 개선을 두고 해결방향을 논의하겠다.
수의사 처방사료를 포함한 동물병원 전용제품의 유통문제도 당면 현안이다.
‘동물병원 전용제품’이라고 표시된 제품을 동물병원 밖에서 파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본다. 동물병원이 아닌 곳에서 판매하려면 전용제품 표시를 삭제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법적 대응방향을 검토하겠다.
어차피 유통업자가 수의사 면허를 불법 대여하는 방식으로 동물병원 전용제품을 받든, 동물병원이 뒤로 물건을 흘리든, 본사는 다 알고 있다.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Q. 선거기간에서 다수의 후보자가 연수교육을 포함한 산하단체 관련 공약을 냈는데
산하단체에게 대한수의사회 분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이사회와 대의원회 참여를 보장하고 연수교육 필수교육 시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겠다.
가령 산하단체가 연간 1천만원의 분담금을 중앙회에 납부한다면, 일부 지부의 중앙회비보다도 더 많은 금액이 된다. 지부와 비슷한 권리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분담금을 납부한 산하단체와 그렇지 않은 산하단체를 나누어, 분담금 납부 시 산하단체장이 중앙회 이사로 들어와 회무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또한 소, 돼지, 가금 등 타 축종 임상수의사들이 직능 산하단체 주관 교육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연수교육 시간을 채울 수 있게 되면 더 편리해질 것이다. 물론 소속지부 회비를 납부한 경우에만 산하단체 교육의 필수교육시간을 인정해주는 방향이다.
이 같은 정책은 기존의 지부 중심의 회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다.
수의사회가 감당해야 할 다양한 분야의 현안들은 그 분야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산하단체나 위원회 형태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하단체나 위원회가 대응방향을 만들어내면, 지부에 전파해 실행되게끔 하는 것이 대한수의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
Q. 중장기로 제시한 공약 중에서도 우선 추진할 사항이 있나
무엇보다 4종백신을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지정하는 문제다. 양치기소년도 아니고 넣는다 넣는다 말만 반복되고 있는 상황인데, 올해 안으로는 분명한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Q. 타 후보의 공약도 적극 채용하겠다고 밝히셨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내심 ‘저건 좋다’라고 생각한 공약이 있을 것 같다
타 후보님들의 공약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추진할 사항을 추릴 생각이다.
그 중에서도 김중배 후보가 공약한 국회의원 비례대표 추진위원회 구성 공약에 눈길이 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의정회’를 통해 적극적인 대정부·국회 활동을 펼쳤다. 수의사회에도 대국회 활동을 담당할 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래홍 후보의 수의역사박물관 건립 공약을 보면서는 ‘수의 관련 정책의 역사를 이어갈 활동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역사적인 관점에서 회무를 연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Q. 대국회 활동을 말씀해주셨는데, 수의사회는 총선 정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타 의료단체는 벌써 작년 여름부터 2020 총선기획단을 꾸렸다
동물진료는 이미 정치권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 주요 거대정당이 동물진료비 관련 법안을 공히 내놓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회도 적극 나서겠지만 일선 회원들의 힘이 절실하다. 지역에서 정치인과의 교류를 쌓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중앙회가 적극 대응하겠다. 여야 상관없이 활동폭을 넓혀야 한다.
중앙회에서도 정치 관련 기구를 만들어 대응하고, 실제 정치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의사 회원들도 모셔서 의견을 듣고자 한다.
Q. 이처럼 우선 추진할 현안을 여럿 말씀해 주셨지만, 사실 대한수의사회 정책 업무의 대부분이 중앙회 사무처에 몰려 있다. 실무 단계로까지 일선 회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만큼, 회무를 확대하려면 사무처 인력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력확충은커녕 있는 직원들까지 나가는 실정이다. 사무처 수의사들은 회원들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차기회장으로서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사무처의 수의사 한 분이 떠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사무처가 튼튼해야 수의사 권익도 더 지킬 수 있는데, 수의사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사무처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사실 재정이 확보되어야 인력을 추가로 뽑을 수 있다. 한수약품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실적을 높이고, 국내 대규모 수의컨퍼런스를 통해 분담금을 모으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업무적으로는 사무처가 중앙회 이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이사회가 감사처럼 사무처 업무를 감시하는 형태가 되면 안된다.
인재 확보에 있어서는 꼭 수의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인문계통의 우수한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핵심부서에는 수의사가 있어야겠지만, 실무에서는 수의사가 아니라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Q. 그동안 농식품부와 각을 세우는 입장을 자주 보였는데, 대한수의사회장으로서 대정부 활동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대한수의사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저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는다. 김옥경 회장님도 농식품부와 많이 대립했다. 수의사의 기본권을 침범하는 경우는 같은 수의사라 해도 정부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Q. 현직 KAHA 회장이자 동물병원장이다. 임기를 앞두고 정리하는 것인가
동물병원은 2월 중으로 매각할 계획이다. 이미 인수희망자 분들도 여럿 있다.
대수회장이 원장인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큰 논란이 되고 회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진료원장을 따로 둔다 하더라도 이 같은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의협이나 약사회 같은 경우도 회장으로 당선되면 매각하거나 폐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병원은 아예 매각하려고 한다. 향후에도 임상수의사 출신 대수회장이 나올텐데 선례를 남기려는 의미도 있다. 첫 임상수의사 회장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동물병원협회도 3월 총회를 통해 회장직이 이양되도록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