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거 북한과 수의축산 협력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한수의사회장이던 이길재 회장의 건의를 현대그룹이 받아들여 시작된 ‘통일농수산협력사업’에 참여하며, 수의사, 사료회사, 종돈회사 등이 협력하여 금강산 지역에 3개·개성공단 지역에 1개의 양돈장을 건설하고, 양돈사업팀 소속 수의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북한의 양돈장을 방문하여 점검·지도했었습니다. 평양에도 대규모 양돈장 건설이 추진됐으나 2010년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되며 모든 논의가 중단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등으로 북한과의 수의방역 교류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수의방역 분야에서 남북이 공동대응할 경우 해외 가축전염병 유입차단이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데일리벳에서 북한에서 축산공무원으로 일했던 조충희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조충희 연구위원은 최근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의 초청으로 대한수의사회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Q. 북한에서 수의사로 활동했었다. 어떤 일을 했었나?
대학을 졸업하고 평안남도 농촌경영위원회 수의축산과 수의방역담당 공무원으로 활동했다. 주로 하는 일은 정부의 방역정책을 협동농장에 전달하고 그 실행과정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이다.
지역 가축방역소(북한에는 전국의 도, 시, 군에 각 1개의 가축방역소가 있음. 가축병원과 유사하지만, 치료보다 방역을 우선시한다고 하여 60년대 말 가축병원을 가축방역소로 고침) 직원들을 통하여 가축(소, 돼지, 염소, 양, 토끼, 닭, 오리)들의 질병 상태를 확인하고 백신을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Q.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동물 임상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가 가장 많다. 북한은 상황이 다를 것 같은데, 북한에서 수의사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북한에서 수의사는 주로 가축 상태 감시, 사육장 위생관리, 질병예방(백신접종, 위생관리 등)사업과 치료(소, 돼지, 개 등)를 진행한다.
전국의 도, 시, 군에 있는 가축방역소와 협동농장, 수의사, 축산전문 농장 및 공장 방역대 등에 적을 두고 활동한다.
북한에서 수의사 개인이 병원을 차리지 못하지만, 개별적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돈, 또는 돈에 해당한 상품(쌀, 술, 담배 등)을 받고 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Q. 언제,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나?
2011년 4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일본에서 살다 귀국한 재일교포의 신분을 가지고 있어서, 북한에서 능력과 실력으로 삶을 살기가 어려웠다. 또한, 나 자신은 그렇지만 자식들까지 고통을 받게 하기는 싫었다. 특히 일하던 기관에서 승진문제로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면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
Q. ‘북한 축산과 경제’를 주제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것으로 들었다. 한국에 온 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나.
초기에는 수의사 자격을 취득하여 동물병원을 차리려고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절차상 문제로 수의사시험 자격이 부여되지 않아 포기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한식조리사 자격을 취득해 식당일도 하고, 초콜릿 제조공장, 돈가스 제조공장 등에서 현장 일도 했다.
여러 가지 자격증 취득이 정착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 축산기사, 건강식품전문가,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도 취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일교육원’에 가서 북한 관련 강의를 하던 중, 서울에 북한대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북한 출신자의 경우 학비도 저렴하다는 탈북선배의 권고를 듣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축산, 경제)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북한의 축산과 남북협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굿파머스에서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 농민들의 소득증가를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Q. 굿파머스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어떤 일을 주로 하는가?
굿파머스 연구소에서 북한축산 알리기, 남북 축산협력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통일 후 남북한 축산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농어촌연구원, 서울대 수의과대학, 서울대 농생명대학, 건국대 북한축산연구소와 공동으로 북한 축산현황을 분석하고 남북협력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관한 연구를 한다.
동아시아(라오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나라들에서 양돈, 양계 등을 통하여 저소득 농가들의 소득증진을 위한 사업에 참여하면서 향후 북한지역에 도입할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Q.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등으로 북한과의 수의방역 교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에서 구제역은 한국전쟁 전후인 1949~1960년대와 극심한 경제난이 있던 1990년대 이후 대유행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간헐적인 유행이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2001년 3월 북한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세계동물보건기구(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의 회원국이 되면서 가축질병이 발생할 경우 이 사실을 OIE에 보고함에 따라 과거와 달리 전염성 질병의 발생 사실을 대외에 공개하는 사례들이 여러 차례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매체 보도 또는 OIE 보고로 공개된 북한지역의 구제역 발생은 2006년 1월, 2007년 3월, 2008년 7월, 2010년 2월, 4월, 12월, 2012년 1월, 2014년 2월 여덟 차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은 2005년 2월, 2013년 4월, 2014년 4월 세 차례로 확인되었다. OIE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북한의 가축전염병 발생 및 감염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난에 따른 재원 부족에서 비롯된 ‘형식과 실제 적용’의 괴리는 북한의 수의방역 현실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수의방역조직과 수의기술자 양성 등 기존의 수의방역체계에 관한 것과 전염병 확산에 취약한 현실에 관한 것, 그리고 체제 유지와 관련된 정치에 관한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경제난은 수의방역조직의 정상적인 작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수의약품 개발∙생산 능력의 저하와 수의기술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국의 계획에 의하여 철저히 통제되었던 축산 공장, 기업소도 사료, 장비 등의 부족과 ‘8.3 노동자’와 같이 노동력의 이탈 등에 따라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즉, 기존의 수의방역체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수의방역체계의 개선 능력도 함께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960년대 이후 축산의 집약화와 국유화는 가축의 집단사육에 따른 집단폐사의 문제로 연결됐다. 특히, 가계 빈곤은 축사의 위생환경 관리와 사료공급에도 차질 빚게 됨으로써 사육 가축의 면역력이 저하되고 있으며, 풀 사료를 주는 가축, 즉 우제류가축 사육의 증가는 급성전염병인 구제역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개인 농가에 의한 가축사육 증가와 가축전염병 발생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한 수의방역체계 개선과 같은 북한 당국의 실질적 조치가 없었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가축의 질병 예방과 치료를 개인 농가의 책임으로 전가한 것은 수의방역체계의 심각한 공백을 초래하였다. 개인 농가는 시장에서 각종 약품과 백신을 직접 조달하고 있다.
심지어 수의방역 당국의 허술한 관리에 따라 생계가 어려운 개인 농가는 사육 가축이 전염병에 감염된 경우라도 해당 가축을 도살해서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북한 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구제역이 발생하여도 현지 농민들과 축산 관계 당국에서는 가축을 이동시키거나, 가공공장에서 가공하여 공급하였으며, 가축전염병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당, 행정, 법’ 담당 일군들은 감염된 가축을 사육하는 개인 농가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한편, 전염병 발생지역의 수의사는 가축사양장소 또는 판매장에서 고기를 검사하고, 필요한 경우 압류 등의 조처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 농가의 생계를 고려하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수의방역체계의 공백은 전염병의 대유행 가능성을 증가시킴은 물론, 북한 주민의 보건위생도 인수공통전염병의 감염과 같은 심각한 위해요소에 노출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지역의 급성전염병인 구제역과 같은 가축전염병이 바람, 물 등에 의하여 남한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휴전선에 인접한 국영 및 개인 축산시설에서 배출되는 감염된 가축의 분뇨, 폐사된 가축에서 발생하는 각종 병원성 물질들은 인접 하천과 지하수, 매개동물 등을 통하여 우리 측의 가축 농가에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난에 기인한 문제점들 이외에도 북한 당국이 주민의 보건위생보다는 체제 유지에 초점을 둔 데 따른 수의방역 부문의 문제도 존재한다.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약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발생된 전염병을 대내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00년 초 전국적 범위의 대규모 토지정리 실시, 전력생산과 관개농업을 위한 무분별한 댐 건설과 물길 훼손 등은 가축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즉, 전염성 병원균의 보균자인 철새들이 관개수로와 농지에 모여들면서 이곳에서 방목 가금류, 특히 사육 오리가 전염병에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함경남도 정평의 광포 오리공장과, 함경북도 청진의 룡제 오리공장, 평양의 두단 오리목장을 비롯한 북한의 국영 오리 사육시설들은 자연하천과 자연호수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휴전선에 인접한 국영 및 개인 축산시설에서 배출되는 감염된 가축의 분뇨, 폐사된 가축에서 발생하는 병원성 물질이 하천과 지하수, 매개동물, 공기, 계절 조류의 이동 등을 통하여 한반도 전체에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가축전염병이 양측에 전파될 경우 남북한 축산부문의 피해는 물론, 식량난 가중으로 북한 주민의 피해는 더욱 우려된다. 따라서 남북 간의 공동 수의방역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남북 간 공동 수의방역체계의 수립은 북한의 수의방역 부문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남북 간 전염병의 직접적 경로가 될 수 있는 지역, 즉 임진강 등 남북이 연결된 하천 일대, 휴전선 일대 지역을 중심으로 남북 합동 방역, 조기경보 체계를 갖추고 상시 관리를 실시하며, 전염병 발생 시 특별 관리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로부터의 가축전염병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가축전염병 공동방역체제 구축이 절실한 과제다.
국경 지역에서 수의방역의 안전성이 확보될 경우 그다음 단계로 북한 전 지역의 방역체계를 구축한 데 기초하여 축산부문의 협력사업 등 교류를 진행하며, 이와 동시에 공동 수의방역체계를 주변국 감염 위험지역 등으로 확대 적용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Q. 남북 수의축산 교류를 대비하여, 한국 수의계에서는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할까?
○ 북한 해당기관( 내각 농업성 수의방역국, 중앙수의방역소, 동물검역부)과의 전염병 공동방역체제 수립에 대한 원칙과 방도를 협의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남북한 가축전염병에 대한 정보교류와 학술교류, 홍보사업을 선행해야 한다.
○ 휴전선 지역과, 중국 및 러시아 변경지역에 대한 방역과 소독사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구축이 필요하다.
○ 북한의 국경 지역, 공항에서 가축 및 축산물의 철저한 검역을 위하여 검역기술의 전수, 검역설비의 지원이 필요하다.
○ 백신 생산을 위한 협력프로그램을 만들어 북한지역의 백신 생산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도 바람직하다.
○ 북한지역에서 전염병 발생 시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북 간 공동 수의방역체계의 수립은 북한의 수의방역 부문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북 간 공동의 수의방역체계 수립은 축산전반부문의 협력사업의 활성화와 북한의 축산환경 개선, 그리고 다시 남북한경제협력사업 및 교류 확대로 가는 일련의 선순환 구상을 위한 첫걸음에 해당한다.
본인은 북한수의방역 부분의 유경험자로서 남북한 수의방역협력이 중요성과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으며 남북수의방역 부문에서의 협력이 향후 한반도 경제협력의 선도자적 역할을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 조충희 연구위원의 표현을 수정없이 작성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