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 생긴다
공시제 아닌 20개 항목 자율 표기..경남수의사회 `부가세 폐지, 처방대상약 확대` 촉구
사전고지제, 공시제 등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연이어 발의된 가운데 경상남도가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완화 정책을 내놨다.
지역 동물병원이 자율적으로 다빈도 기초진료항목 20개의 비용을 표시하는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저소득층 반려동물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 제정에 나선다는 것이다.
경남도청과 경상남도수의사회가 참여한 TF에서 도출된 합의안으로, 수의사법 개정에 여파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엄상권 경남수의사회장은 “자율표시제와 공시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창원시내 동물병원 대상 진료비 자율표시제 시범도입..초·재진, 백신 등 20개 항목
경남도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완화 지원조례 제정, 저소득층 진료비·동물등록비 지원
이날 발표된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 창원시내 동물병원 70개소를 대상으로 10월 1일부터 시범 실시될 예정이다.
초진료·재진료, 개·고양이 예방접종, 심장사상충을 포함한 기생충 예방, 흉부방사선, 복부초음파 등 20개 항목의 수가를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경남지역 220여개 동물병원 중 70개가 모인 창원부터 우선 실시하고 진주, 김해, 양산, 거제 등 다른 시군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김국헌 경남도 동물방역과장은 “경남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 완화 TF이 7월 도출한 합의안에 따라 자율표시 진료항목은 경남수의사회가 결정하고, 항목별 진료비는 개별 병원이 책정한다”고 설명했다.
엄상권 경남수의사회장은 “수의사회 내부 논의를 거쳐 항목을 선정했다. 주로 예방 목적에서 진행되는 진료항목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5월 구성된 경남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완화 TF에는 도·시군 관계관과 경남수의사회, 동물보호단체, 보험업계가 참여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국가별로 비교하면 (국내 동물병원비가) 비싸지는 않다. 다만 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많아 ‘합당한 진료비를 부담하는가’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 있다”며 “공시제는 어렵지만, 기본 항목이라도 동물병원이 자율적으로 게시한다면 (수의사와 보호자의) 오해도 줄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자가 모여 합의해낸 것이 중요하다. 경남수의사회가 대단히 어려운 결정을 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진료비 자율표시제는 부담 완화보단 보호자-수의사간 소통을 증진하는 정책에 가깝다.
경남도는 실질적인 진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완화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저소득층 반려동물 진료비 지원, 일반도민 대상 반려동물 등록비 지원 등에 나설 계획이다.
도내 저소득층 가구 중 반려동물을 키우는 5천가구의 진료비를 지원하고, 도내 반려견 1만두의 내장형 동물등록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자율표시제에 참여하는 동물병원에는 LED 표시장비를 도비로 지원한다.
경남수의사회, 진료문화 개선하겠다..부가세 철폐·처방대상약 확대 촉구
황승민 경남수의사회 권익복지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동물병원 진료 환경 개선과 보호자 부담완화를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황승민 위원장은 “경남수의사회는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보다 한층 개선된 진료문화를 만들어가겠다”면서 진료비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황 위원장은 “(국내 동물 진료비는) OECD 국가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지만 건강보험체계와 비교되며 ‘비싸다’는 막연한 인식으로 이어졌다. 진료비 부담으로 유기동물이 증가한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라며 “사람 의료체계처럼 진료항목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동물병원 사이의 진료비 비교도 불가능하다. 수의사회가 진료항목 표준화 방안을 정부와 국회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치재 취급을 받아 부가세가 부과되는 동물진료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 위원장은 “도민의 이익과도 직결된 수의권을 확립하기 위해 김경수 도지사의 사회적 역할을 건의한다”며 ▲동물진료비에 대한 부가가치세 철폐 ▲불법 자가진료 완전 철폐를 위한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약품 확대 ▲반려동물 등록 장려, 읍면지역 시골개 중성화 추진 등 유기동물 감소 정책 ▲유기동물보호소 신규건립과 운영비 증액 ▲반려동물 종합백신 접종비 지원 등을 제시했다.
정기우 전 경남수의사회장은 “인체용의약품을 도매상이 아닌 소매점(약국)에서 구입하도록 제한돼 가격 상승요인이 된다”며 동물병원 인체용의약품 도매상 구입을 위한 약사법 개정 필요성을 지목했다.
김경수 지사도 “보호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수의사회가 추진하는 제안들을 정부에 앞장서서 전달하고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경남의 한 일선 수의사는 “(자율표시제가) 실질적으로는 조건부 동의”라며 “건의사항 반영 여부에 따라 제대로 시행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창원 동물병원의 참여 여부도 각 병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진료비 공시제 수의사법 개정안과 자율표시체는 달라’ 선 긋기
지자체에서 시도하는 자율적 진료비 표시가 수의사법 개정에 영향을 끼쳐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껏 대한수의사회는 진료항목 표준화, 표준진료체계 수립 이전에는 공시제, 사전고지제 등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역 동물병원 일부가 특정 진료항목에 대한 가격 공개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두고, 마치 수의계 전체가 진료비 공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처럼 오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당장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시각이 드러났다. 경남 TF에 참여한 손해보험협회 방병호 팀장은 이날 “진료항목 표준화를 통한 (진료비) 공시가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다면 펫보험도 활성화될 수 있다”며 “(경남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 개정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상권 경남수의사회장은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와 자율표시제는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창원시내 동물병원도 각자 참여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만큼, 법적으로 공개를 강제하는 공시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엄상권 회장은 “(자율표시제는)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한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참여했다”며 “수의사법 개정의 마중물은 절대 아니다. 법 개정은 대한수의사회와 정부, 국회가 논의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