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경기도수의사회 송년학술대회에서 곽지윤 수의사가 ‘반려동물과 아이가 함께하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주제로 강연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곽지윤 수의사의 기고문을 통해 반려동물과 아이 양육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가면서 이제는 임신, 출산, 육아를 반려동물과 함께하게 될 젊은 보호자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게 될 주류인 20~40대 보호자들은 ‘반려동물이 존재만으로 아기의 건강에 위협이 되지는 않으며 아기의 정서에 좋다.’ 정도는 많이들 알고 계신 듯합니다. 아마 본인이 언젠가 자녀를 낳게 된다면 지금의 반려동물과 함께 키울 것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대부분의 보호자가 임신, 출산 이후에도 반려동물과 문제없이 아기를 양육하게 될까요?
반려동물과 아기와의 양육과정에서 가이드가 없는 부모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입덧에 시달리는 임신 기간부터 시작해서 낮밤이 없는 신생아 육아와 널뛰는 호르몬은 엄마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녹초로 만들죠. 처음에는 아기와 함께 반려동물을 쭉 책임지고 기를 거라고 마음먹었던 보호자들조차도 이 과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반려동물을 파양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자녀출산으로 인한 파양을 경험한 젊은 보호자들은 평생 다시는 반려동물을 입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반려동물이 나를 귀찮게 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되는 모든 상황이 너무 벅차 이제는 예전처럼 마음을 써줄 수 없는 반려동물에게 미안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기의 출산으로 반려동물을 파양하는 보호자들은 ‘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더 좋은 집으로 갔으면 한다고 얘기하곤 하지요. 그만큼 파양 후 죄책감도 훨씬 크기에 이후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기는 어려워집니다. 미래에 자녀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이런 부모님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삶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본인의 자녀를 낳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반려동물의 보호자로서 아기를 낳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반려동물과 아기를 문제없이 함께 ‘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저만해도 첫째를 임신했을 때, 키우고 있던 개 2마리와 고양이 2마리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지 막막했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여기에 대해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저 ‘나는 이렇게 아기와 동물을 문제없이 키웠어’하고 정리된 육아 선배들의 글이 다였지요. 그렇게 헤매다 알게 된 곳이 바로 미국의 ‘Family Paws Parental Education’이라는 단체였습니다.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가족들이 아기를 잘 맞이하고 키워가도록 다양한 자료로 가이드를 제시하고 컨설팅을 해주는 단체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둘째 아이를 낳기 전에 3개월간 이곳에서 양성하는 부모교육전문가(Family Paws Parental Educator) 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에서 아기를 안전하고 올바르게 키우기 위한 강의가 조산사, 산후도우미, 산부인과 의사 등 아기와 관련된 직종을 대상으로도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아기와 반려동물을 둘러싼 여러 직종의 종사자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워나가고자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에 비해 반려동물에 대해 훨씬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반려동물과의 육아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적으며 특히나 출산, 육아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아이와 함께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처음 임신 진단을 받으러 간 산부인과에서 “동물은 안 키우시죠? 아기한테 안 좋으니 키우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얘기하셔서 괜히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실정에서 아기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보호자가 반려동물과의 문제를 가장 쉽게 상담할 수 있는 전문가인 반려동물의 주치의, 즉 저와 같은 수의사 선생님들께서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점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자녀를 출산하고 기르는 과정에서 올바른 정보제공과 상담으로 어려울 수 있는 시기들을 잘 넘겨 반려동물과 아이를 쭉 잘 길러낸다면, 이 반려동물은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반려동물과 생애 첫 친구로서 잘 자라온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쭉 좋은 보호자가 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부모가 자신을 양육하면서 힘든 시기들을 넘기며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을 경험한 아이들은 생명을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반려동물과 아이 양육에 대해 전문가들이 올바른 가이드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지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넘어가기엔 힘에 부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아기의 출산과 육아입니다. 이 순간들을 잘 넘기고 반려동물과 아기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도록 모두가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알아간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또 한 뼘 나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