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세 번째 키워드 알파벳 C는 보존의학(Conservation Medicine)입니다.
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국제자연보전연맹) Red List는 전 세계 모든 생물종의 멸종가능성을 5가지 기준으로 평가하여 EX(절멸, Extinct)∙EW(야생절멸, Extinct in the Wild) ∙CR(위급, Critically Endangered) ∙EN(위기, Endangered) ∙VU(취약, Vulnerable) ∙NT(준위협, Near Threatened) ∙LC(최소관심, Least Concern) ∙DD(정보부족, Data Deficient) ∙NE(미평가, Not Evaluated)의 9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35,500종 이상의 생물들이 멸종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미 902종은 절멸하고, 80종은 야생절멸단계, 7762종은 위급단계, 13285종은 위기단계에 처해있는 상황입니다.(IUCN 2020. Th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Version 2020-3.)
국내에서는 환경부가 포유류, 조류, 양서류∙파충류, 어류, 곤충류, 무척추동물, 육상식물, 해조류, 고등균류까지 9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 60종과 II급 207종을 멸종위기야생생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2차 개정)
Conservation Medicine, 보존의학?
생물 멸종의 원인은 다양하며, 주요 위협원인으로는 외래종의 침입, 서식지 파괴, 질병, 밀렵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도 멸종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생태 환경 보전을 돕고, 지구의 다양한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필요한 학문이 Conservation Medicine입니다. 멸종위기생물에만 국한된 학문이 아닌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Conservation Medicine’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직역해보면 ‘보전의학’ 또는 ‘보존의학’입니다.
‘Conservation Medicine’이라는 개념은 1990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보건학, 생태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One health’처럼 동물의 보건, 사람의 보건, 그리고 환경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Conservation Medicine은 그중에서도 생물다양성 보존의 의학적 측면에 집중하며, 생물학자, 환경학자, 공중보건 전문가, 수의사 등 여러 전문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수의사는 이 모든 분야에 가장 광범위하게 관여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와 진료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에 관여하고, 교육, 현장 관리 등이 보전의학에서 수의사가 하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정보와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는 여러 조직과 네트워크도 형성합니다. 또한, 무척추동물, 어류, 양서류, 파충류 등 ‘잊혀진(forgotten)’ 종에 대한 포획과 사육도 담당합니다. 이들은 지구의 생물다양성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멸종위기에 더 가깝습니다.
보전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보전생물학 또는 종보전에 대한 넓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의 The Royal (Dick) School of Veterinary Studies를 비롯해 호주, 미국 등 여러 나라 수의과대학에서 Conservation Medicine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학교에서 야생동물보전유전학과 야생동물보전의학개론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보존의학개론(보존의학과 집단유전학)을 가르칩니다.
ASCM(Asian Society of Conservation Medicine)
ASCM(아시아야생동물보존학회)은 아시아 동물원의 전시동물과 야생동물의 치료와 보존, 관련 인재양성을 위한 학회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Conservation Medicine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SCM은 비영리 과학단체로 2005년 Zoo and Aquatic Medicine ∙ Wildlife Medicine ∙ Wildlife Management ∙ Ecosystem Conservation ∙ Zoonosis Control 연구의 발전을 목표로 ASZWM(Asian Society of Zoo and Wildlife Medicine)으로 시작하여 2014년 ASCM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ASCM은 아시아수의과대학협회(AAVS)와 아시아수의사회연맹(FAVA) 준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며, 2012년 ACCM(Asian College of Conservation Medicine)을 설립하고 전문의자격 시험을 만들었습니다. ACCM전문의(Diplomate of Asian Collage of Conservation Medicine, 아시아야생동물전문의)는 아시아수의전문위원회(AiBVS)에 의해 공인된 자격입니다. ACCM의 주요 목표는 아시아 Conservation Medicine의 발전과 현장에서의 실무 능력 향상입니다.
아시아야생동물전문의에 응시하려면 아래 표와 같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야생동물의학 관련 학회 활동 및 논문저술, 학위 등을 평가하는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및 구술시험 등의 최종시험을 통과해야 하죠. 2021년 2월 기준 전세계 35명이 아시아야생동물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고(honorary diplomates 21명, diplomates by exam 14명), 이중 국내에는 5명(honorary diplomates 4, diplomates by exam 1)의 전문의가 존재합니다. 시험전문의 자격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전북대 한재익 교수가 2015년에 취득한 바 있습니다. ASCM은 매년 아시아 각국에서 학회를 개최해왔으며,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화상회의로 대체했습니다. 올해는 9월 일본 삿포로에서 학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관련 국내 기관
Conservation Medicine과 관련되어 있고, 현재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는 국내 기관으로는 국립생태원과 환경부 지정 서식지외 보전기관, 사단법인 카자(KAZA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구, 생물종보전원, 종복원기술원) 등이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은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설립하여 생물다양성 확보와 건강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경상북도 영양군에 설립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졌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환경부는 서식지 파괴, 밀렵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서식지 외에서 체계적으로 보전, 증식할 수 있도록 ‘서식지외 보전기관’을 지정하여 관리 중입니다. 2000년 서울동물원을 시작으로, 에버랜드 동물원, 청주동물원, 국립생태원 등 26곳의 기관이 ‘보전 가치가 높은 야생생물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1985년 동물사육관리와 전시방법 등에 대한 정보부족을 해소하고자 개체된 ‘전국동물원∙수족관장회의’를 계기로 설립된 카자(KAZA)는 사육동물에 대한 관리, 보호, 정보교류 및 교육뿐 아니라 국내 야생동물 증식, 다양성확보, 멸종위기종 보존, 서식지 보전 등의 보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KAZA 회원사인 서울동물원과 청주동물원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삵Prionailurus bengalensis의 종보전을 위한 인공수정이 시도됐습니다.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구, 생물종보전원, 종복원기술원)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ussuricus의 복원 사업을 추진하여 인공수정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수의사가 종복원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고 있기도 하죠. 국립공원연구원에서는 여우, 산양 복원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 수의과대학의 야생동물센터, 지자체 야생동물구조관리시설에서 많은 수의사들이 보전의학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Conservation Medicine의 양면성
캘리포니아 콘돌(California condor)은 캘리포니아 북쪽 지역에서 발견되는 조류 중 가장 큰 날개를 가진 대형 맹금류인데요, 멸종 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 콘돌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썼던 약품이 Colpocephalum californici라고 하는 식모류(이)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louse)는 강한 숙주특이성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숙주에만 기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서 복원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C. californici는 숙주가 사라짐으로써 같이 멸종해버린 대표적인 ‘coextinction(동반멸종)’의 예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다른 종을 멸종시켜버린 것이죠.
2004년에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0년 동안 최소 100종의 나비, 이, 딱정벌레 등이 비슷한 이유로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비전문적인 Conservation Medicine이 오히려 다른 종을 멸종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Conservation Medicine 전문가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강력한 예시가 아닐까요?
참고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https://www.iucnredlist.org.)
IUCN 2020. Th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Version 2020-3.
대한민국 환경부 (me.go.kr)
Conservation Medicine, The University of Edinburgh
Veterinary Conservation Medicine Intercalated Honours BSc, University of Liverpool
What is conservation medicine, and why is it important? The university of Melbourne
Conservation Research Institute, The university of Cambridge
ASCM (ascminfo.org)
국립생태원 (nie.re.kr)
멸종위기 야생생물 포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nie.re.kr)
사단법인 카자 KAZA (kaz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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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n Lyman Kirst, “The power and plight of the parasite” High Country News, 2012.05.29
서울동물원 동물정보 “캘리포니아콘돌”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