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마이오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Timaeus 86b – 우리 중에 나쁜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된 것은 본의 아닌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식보다는 부모를, 양육되는 사람보다는 양육하는 사람을 나무라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나쁨은 피하고 좋음은 취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요.
(플라톤 지음/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뭔 책들이 이렇게 …” 오가는 이들이 던져 놓은 눈길들이 연구실 탁자의 책들 위로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아 예 그냥 뭐. 틈나면……“ 책 더미를 슬쩍 건드리면서 얼버무립니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갈레오토공의 이야기], 단테의 [신곡],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들 [향연] [국가/정체] [법률] [티마이오스]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대로 읽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각종 추천도서목록의 앞부분을 차지해오면서 방송매체나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책들이라 그저 익숙하게 된 것일지 모릅니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갈레오토공의 이야기] 부터 숨죽이며 읽다가 사랑 때문에 지옥을 헤매는 파울로와 프런체스카를 노래하는 단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 흔한 사랑 ‘에로스’를 노래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향연]은 얼마나 흥청거릴지 궁금했고 그렇게 필멸의 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본성을 다룬 [국가/정체] [법률] 그리고 그 사람들을 생겨나게 한 불멸의 우주를 풀어내는 [티마이오스]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그렇게 탁자에 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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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마이오스 Timaeus]는 작년에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본과 3학년 학생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리포트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질병의 원인과 치유에 관한 플라톤의 주장은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수용 가능한가? 아마 많은 학생들이 무척 당황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나 플라톤 읽는 사람이야’라고 폼 잡고 싶었거나 ‘이제 여러분은 플라톤 읽는 수의대생들이야’ 라는 ‘독(讀)부심’ 심어주려고 벌인 짓만은 아니라고 하기에는 적잖이 민망하다는 점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지한 생각들을 공유해준 57명 학생들의 다양한 관점 덕분에 [티마이오스]는 최소한 58번쯤 읽은 셈이 되었습니다.
‘수의학을 전공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바로 ‘큰 그림’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여러 수업이나 실습을 할 때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즉 큰 그림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정말 많았고, 이 때문에 이해에 혼란이 온 적이 매우 많았다고 생각했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에 매몰되어, 내가 왜 이것을 배우고 있고 질병의 치료는 어떠한 흐름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즉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원리에 대한 큰 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편적인 모습에만 매몰되지 않고 항상 큰 틀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환자들을 바라보는, 그런 유연하고도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수의사가 되고 싶다.’
라는 어느 학생의 소감이 자꾸만 떠올라 올해에도 학생들을 향한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겨우 참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국가의 올바른 정치제제를 주제로 한 대화편 [국가/정체]를 요약하면서 시작하는 티마이오스(우주론)는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이 오른손을 하늘로 향한 채 왼손에 당당하게 들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결코 재미있는 부류의 책은 아닙니다. 흥미롭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 입장불가”라고 하며 이데아를 추구했던 아카데미아 학원 원장인 플라톤 답게 완전한 비례를 갖춘 구형의 우주, 조화평균, 산술평균, 그리고 삼각형의 조합으로 구성된 물질들에 관한 기하학적 내용을 비롯해서 우주의 기원과 물질의 4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의 변화를 질병과 연결 짓는 건조한 대화체가 재미있을 리 없습니다만 흥미마저 생겨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의 독서로 온전히 내 것이 되기 힘든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열 두 번도 넘게 갈피끈을 젖힐 때마다 이해는커녕 궁금증만 커져가는 점이 그나마 책을 놓지 못하는 위로입니다만 범인의 처지에서 도무지 철인 플라톤의 넓이와 깊이는 쉽게 가늠되지 않습니다.
Timaeus 28a – 언제나 존재하지만 생성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며, 언제나 생성되지만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앞의 것은 지성과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언제나 같은 것이지만, 뒤의 것은 의견과 비합리적인 감각의 대상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플라톤 지음/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우주를 설명하는 중요 개념이라는 존재와 생성에 관해 티마이오스라는 학자의 입을 빌어 풀어내는 플라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항상 동일하게 존재하는 ‘이성’의 영역과 항상 다른 것으로 인식되는 ‘감각’의 영역에 대한 말장난에 가까운 낯설고 신선한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 내었는지 정신이 아득해 질뿐입니다.
무려 2천5백여년전을 살았던 플라톤의 한계 없는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니체와 칸트를 넘어 수많은 철학자들이 무수히 많은 답안을 제시하고도 여전히 풀어야 할 논제들이 많이 남은 것인지 오늘도 플라톤의 질문에 답하는 골치 아픈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던진 질문에 답하고 되묻고 또 답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일이 철학이라 한다면 이미 우리 모두는 철학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죽는가?’를 묻고, 이웃의 잘못에 분노하고 선한 행동에 감동하고, 동물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일 모두 철학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천개의 파랑]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공감하고,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언급되는 동물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어떻게 동물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갈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우리 모두는 이미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입니다.
[티마이오스]는 우주론을 비롯해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질병까지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그 시작은 소크라테스의 [국가/정체]론에 대한 헌사인 까닭에 [티마이오스]를 덮으면서 [국가/정체] 대화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사회의 근간이 되는 올바른 교육에 관한 플라톤의 교육관이 두툼하게 배어 있는 [국가/정체] 와 [법률]을 여러 번 펼쳐 들어야 할 이유가 더해집니다.
특히 수의교육학회장으로의 시선 즉 수의학 교육의 관점에서 짧게나마 엿보게 되는 플라톤의 교육관을 곱씹지 않을 수 없습니다.
Timaeus 86b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자의 태도와 ‘몸’과 ‘혼’의 균형 있는 교육 즉 흔히 하는 말로 심신단련의 중요성 대한 원론적인 대화가 우주의 기원에 비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부디 독자들이 [티마이오스] 내용 중 여성과 동물에 대한 납득하기 어려운 대화들(Timaeus 18d, 90e) 탓에 불필요한 오해 없이 책을 덮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티마이오스의 이야기에 앞서서 바닷속으로 사라진 신비의 섬 아틀란티스의 전설에 관한 크리티아스의 대화내용이 궁금해지면 다른 대화편인 [크리티아스]도 펼쳐보시라는 가당찮은 제언은 그만두고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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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탁자 위 책들은 말끔하게 치웠습니다. 대신 집 거실 탁자에 플라톤 전집을 비롯해서 어지럽게 쌓인 책들 위로 식구들 눈총이 쌓여 있습니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생성되지…” 질색하며 도망가는 집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녀 보지만 한 문장도 다 맺지 못합니다. 학생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 플라톤이 말하기를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그러니까 수의사는 더욱 이래야 하고 수의계는 저래야 하고 우리 사회는 어때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는 얘기를 어줍잖게 늘어놓는 날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이기창 (전북대 수의대 수의영상의학 교실)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 2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 서평 보러가기
– 3월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 서평 보러가기
– 4월 티마이오스 (플라톤, 옮긴이 천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