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반려동물병원은 무한 경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수의사·동물병원의 폭발적 증가, 신규 개원입지 포화, 보호자 기대수준 향상, 경기불황 등이 동물병원 경영을 점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 여건 악화는 비단 수의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계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병원 경영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료과목의 전문화’가 급속도로 이뤄졌습니다.
이미 내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신경과 등 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인의 쪽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더욱 전문화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의 경우 지방흡입전문, 모발이식전문, 얼굴뼈 전문에 이어 다크서클 전문 성형외과까지 등장 할 정도입니다.
특정 전문 진료과목에 초점을 맞춘 전문병원이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종합병원보다 경영 효율성 개선에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임상 수의계를 돌아보면, 전문의 제도가 태동하고 있고, 임상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수의사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의계도 이제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동물병원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진료과목을 특화한 ‘전문진료 동물병원’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특정 진료과목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전문진료 동물병원’을 탐방하고, 원장님의 생각을 들어보는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를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동물행동의학 전문 ‘하이 반려동물 행동 클리닉’의 이우장 원장입니다.
경북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미국동물행동수의사회(AVSAB, American Veterinary Society of Animal Behavior) 회원으로 활동 중인 이우장 원장은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동물행동의학 전문 클리닉’을 개원했습니다(9월 17일 정식 개원).
데일리벳에서 이우장 원장님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 공통질문이다.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해외에 있다 보니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부모님께서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게 해주셨는데, 반려견이 가장 큰 친구였고, 많이 교감했다.
이후 미국으로 가게 됐는데, 반려견을 데려가지 못하고 좋은 분에게 입양을 보내게 되어 아쉬웠다. 그때부터 나중에 동물을 돕고, 동물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동물행동의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예과 때 처음 동물행동학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는 더 깊게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졸업 후 막상 임상을 시작하니 일반 로컬동물병원에서는 행동학적 부분을 집중적으로 챙기기가 어려웠다. 시간이나 비용문제 등 현실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심각한 경우에도 보호자가 간단한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동물행동의학만 집중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그럼, 졸업 후에 일반적인 동물병원에서 임상을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공중방역수의사로 군대체복무를 마치고, 일반 로컬동물병원에서 진료수의사로 일했다.
임상수의사로 일하면서, 정형외과, 안과, 치과 등 다양한 세미나를 들었는데, 동물행동의학 세미나를 접했을 때, 마음이 움직였다. 김선아 선생님(현 충북대동물병원 임상교수) 강의였는데, 이 길을 가면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선아 선생님이 미국 UC데이비스 수의과대학에서 전문의(ACVB, 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Behaviorists) 과정을 밟고 계실 때 익스턴십을 갔다.
Q. UC데이비스 익스턴십을 할 때 어떤 경험을 했나?
전문의들과 케이스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진료 참관을 할 때도 보호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의 선생님들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Q. 아무래도 한국 수의사(김선아)가 있어서 더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너무 큰 도움이 됐다. 김선아 선생님이 진료할 때 함께 들어가기도 했고, 퇴근하면 집에 가서 케이스를 정리한 뒤, 김선아 선생님을 만나 추가 공부를 했다. 1:1 과외를 받은 셈이다(웃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Q. UC데이비스 익스턴십 외에 또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NAVC(North American Veterinary Community)의 Advanced Behavioral Medicine 과정을 수료했는데, 전문의들과 함께 실제 진료 케이스를 놓고 치료 계획을 함께 짜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외에도 Fear free certified veterinary professional 과정을 수료했고, Living and Learning with animals(LLA) 과정도 이수했다.
LLA 과정은 동물행동학 이론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자의 치아관리 방법이나 물고기 교육 등 다양한 동물의 학습과 보상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다.
The Great Big Dog Aggression Workshop에 참여했던 것도 기억이 남는다.
바디랭귀지를 읽는 방법부터 수의학적인 처치와 약물 사용/부작용을 소개해주며, 보호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올해 수의행동의학심포지엄(VBS, Veterinary Behavior Symposium)에도 참석했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온라인으로 개최되어 참여할 수 있었다.
동물행동의학 분야는 끊임없는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려고 노력 중이다.
Q. 병원에 행동코치가 있던데, 행동코치는 어떤 역할을 하나?
미국에 가보니 수의사와 트레이너의 영역이 나뉘어 있고 (즉, 치료와 교육 영역), 서로 협업하는 게 감명 깊었다.
미국 UC데이비스에 처음 가면 ‘어떻게 좋은 트레이너를 찾는지’ 알려준다. 실제로 수의사와 트레이너가 함께 케이스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The Great Big Dog Aggression Workshop도 공격성만 다루는 트레이너와 미국수의행동의학전문의가 함께 여는 워크샵이다.
이처럼, 미국은 트레이너와 수의사의 협업이 자리 잡혀 있다.
전문의들도 트레이너의 역할과 업무를 존중해주는데, 단순히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코칭 역할을 하므로 ‘behavior coach’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의 트레이너 선생님도 ‘행동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행동코치 선생님과 함께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감명받은 수의사-트레이너 협업시스템을 적용하고, 코칭만 필요한 경우에는 행동코치 선생님이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추후 퍼피클래스 등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할 수도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외부 트레이너와 협업 계획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수의사-트레이너 간 협업시스템이 자리잡혀야 하는데, 성공적인 협업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Q. 동물행동의학 책도 번역했다고 들었다.
미국수의행동의학전문의들이 쓴 개의 행동에 대한 일반서다. 반려동물의 행동 문제로 힘들어하는 보호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체벌이 안 좋은 이유부터 환경의 중요성과 예방법 등도 소개하고, 전문의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번역은 다 끝났고 출간을 위해 준비중이다.
Q. 일반 진료를 안 보고 동물행동진료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진료를 하지 않아서 아쉽지는 않나?
예방접종이나 중성화수술도 안 하고 동물행동진료만 본다. 전문성을 갖추고, 일선 동물병원으로부터 행동 진료를 의뢰받는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 진료를 보지 않는 게 맞다.
동물행동의학이 가장 재밌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다.
Q. 100% 예약제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문턱을 낮추려면 예약제를 운영 안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예약 진료를 해야 보호자와 반려동물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전에 검사지(행동의학 분석 검사지)를 보내드리고, 작성해주신 내용을 잘 분석해서 감별할 문제들을 생각한 후에, 환자가 내원하면 보호자에게 질문을 해서 감별 및 진단하여 치료 계획을 세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비용도 올라가기 때문에 보호자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진료가 끝나면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이해해주신다.
Q.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동물행동분야에서 수의사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김선아 선생님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다. 나도 작지만 기여하고 있다. 더 많은 수의사에게 동물행동의학 분야를 알리고, 트레이너와 잘 협업하는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 중장기적이 목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김선아 선생님과 같은 전문의의 길을 가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동물행동의학 관련 연구도 김선아 선생님과 진행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