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방역수의사 대규모 미달 사태 “공방수 대신 현역 입대 해보니..”
소집해제 인원보다 임용 인원 21명 부족..현역병 처우 개선으로 공방수 매력↓
공중방역수의사에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주 임용되는 제17기 공중방역수의사는 모집 정원에 비해 23명이나 부족하다.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 및 처우개선, 수의대 재학생의 성비 변화와 대학원 진학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지목된다.
공방수를 포기하고 국가시험 합격 직후 현역으로 입대한 A씨는 “시간 절약이 가장 중요했다”고 전했다. 공방수 복무 37개월과 현역 복무 18개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의과대학 출신 공중보건의사 숫자도 2017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훈련기간 복무기간 산입을 포함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집해제 인원 대비 신규 충원 21명 부족
대규모 미달 사태
공중방역수의사 제도는 수의사 면허를 취득한 현역 입영 대상자를 선발하는 대체복무 제도다. 검역본부, 시도 동물위생시험소, 시군구청에 3년간 근무하며 가축방역·축산물위생 업무에 종사한다.
2007년 제1기 선발을 시작으로 올해로 17기째를 맞이했다. 수의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수의사관후보생을 미리 선발하고, 이중 수의장교로 임관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공방수로 복무하는 방식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등으로 모집인원이 늘어난 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매년 150명을 선발해왔다.
수의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개인사정으로 이탈하는 경우는 매년 있지만, 당해 연초 추가모집을 통해 충원해왔다. 국가시험 합격률 저하 등 외부적 요인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때에 따라 있었지만, 올해 합격률은 96.6%로 예년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대규모 미달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한공중방역수의사협회(대공수협, 회장 이재호)에 따르면, 올해 임용되는 제17기 공방수는 127명이다. 올해 복무를 마친 14기 공방수 148명에 비해 21명이 부족하다.
선발 인원이 부족하니 기존 배치지 일부는 공방수를 받을 수 없다. 대공수협에 따르면 검역본부에서 7명을 감원했고, 나머지 인원은 전국 지자체 여러 곳의 공석으로 이어졌다.
고병원성 AI가 주로 발생하는 전남은 유지됐다. 반면 ASF가 발생 중인 포천을 관할하는 경기도 북부동물위생시험소 인원은 감축됐다. 상대적으로 선호 배치지로 꼽히는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도 감원 대상에 포함됐다.
수의직 공무원 충원이 어려운 상황 속에 공방수마저 부족해진 셈이라 현장 인력난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전남 영암·장흥에서는 고병원성 AI가, 경기 포천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추가로 발생했다.
수의사관후보생 희망 비율 절반 못 미쳐
학생들도 현역 입대 고려
현장에서는 공방수 미달 사태가 이제 시작일 뿐이란 분석도 나온다. 향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 회장 안태준)가 실시한 ‘2022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총조사’에서도 이 같은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조사에 응한 남학생 618명 중 미필은 504명이었다. 이중 이미 수의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 150명을 제외한 354명 중에서, 향후 수의사관후보생(수의장교 혹은 공방수)을 희망한다는 응답은 160명(45%)에 그쳤다.
반면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는 응답도 34명으로 10%를 차지했다. 전체 남학생 응답자들 중 군필자가 114명에 달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수대협 안태준 회장은 “(학생들이) 점점 현역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군 복무기간도 짧아지고, 병사 대우도 좋아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현역병 복무기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18개월까지 단축됐다. 개인 핸드폰 사용 허용, 봉급 인상 등 처우 개선도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공방수는 중위 봉급을 받는 대체복무라는 장점은 있지만, 실질 복무기간은 37개월로 현역병의 2배 이상이다.
안태준 회장은 “공방수 기피 현상은 학교나 학년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를 것”이라면서도 “남학생 비율 감소, 수의대생 평균 연령 상승 등의 요인도 있다”고 덧붙였다.
본4때 공방수 포기하고 현역 입대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후회없는 선택’
지난해 현역병으로 입대해 복무 중인 A씨가 이 같은 현상의 주인공이다. A씨는 수의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됐지만, 본과 4학년 재학중에 이를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택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한 A씨와의 인터뷰는 주말 카카오톡으로 진행됐다. 달라진 병사 처우를 실감할 수 있었다.
A씨는 2022년 국가시험에 합격하자마자 곧바로 수의병으로 입대했다. 졸업식도 치르기 전이었다. ‘동기들이 졸업식 사진을 찍을 때 훈련소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었다’며 웃었다.
A씨는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본4 때 임상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현역 입대를 결심했다”면서 “시간 절약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당해 3월에 입소해 기초군사교육 및 실무교육 1개월과 36개월의 복무가 이어지는 공방수와 달리, 국가시험 직후 현역 입대하면 훈련기간을 포함해 18개월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최대 21개월 빨리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서 “공방수도 배치지에 따라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다고 들었다. 임상수의사가 되려고 한다면 공방수의 메리트가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제대 후 임상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같이 졸업한 동기들보다 빠르면 2년 앞서 입학할 수도 있다. 동기 공방수들이 소집해제될 시점에 이미 석사과정 종료를 눈앞에 둘 수도 있는 셈이다.
늦은 나이에 현역병으로 입대한다는 부담에 대해서는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았지만,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다. 개인 성향 차이가 큰 것 같다”고 전했다.
A씨는 “공방수인 동기들도 부러워하는 것 같다. (현역 입대가) 개인적으로는 후회없이 만족하는 선택”이라며 “수의학 공부도 다시 하면서 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출신 공보의도 감소세
공방수도 복무기간 단축, 처우개선책 필요
대체복무 지원은 줄고, 현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과대학 출신 공중보건의사 임용인원은 2017년 814명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올해는 450명에 그쳤다. 공보의들 사이에서도 ‘현역병 처우는 개선됐는데 공보의는 그대로다. 임용 감소, 코로나19 등으로 업무 부담만 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불만은 공중방역수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수의직 공무원 결원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공방수의 업무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공보의와 달리 별도의 주거지원책이 없는 배치지도 많고, 동물보호업무 등 가축방역 업무가 아닌 일을 맡는 문제도 여전하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대공수협 모두 3년 1개월인 복무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타 대체복무와 달리 훈련기간(1개월)을 복무기간(36개월)에 산입하지 않는 규정부터 해결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공방수가 일선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해온 만큼, 존속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무기간이 더 길더라도 공방수 복무를 더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공수협 김동현 미디어소통이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의사관 후보생 선발에서 탈락해) 현역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던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방안 모색이 절실하다. 공방수가 대체복무자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수의사로서의 노고를 인정받는 현장 분위기도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훈 법제정책이사는 “병사 월급 인상과 복무기간 단축으로 공중방역수의사로서의 복무 메리트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공중방역수의사 정원 미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방역활동장려금을 월 90만원으로 상향 일원화하고, 주거지원을 의무화하는 등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