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돼지수의사회 최종영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2천명 증원하기로 발표했다. 의사협회는 즉각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4년 전의 의료대란이 다시 벌어질 판이다.
의협은 정원 확대가 필수·지역의료 공백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필수의료 공백의 근본 이유를 분석하여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낙수효과만 바라고 인원부터 늘린다’는 식의 불명확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호하는 지역, 선호하는 전공에만 의사가 몰려 과잉경쟁을 부르고 정작 의사가 부족한 지방과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은 지속적인 문제로 남을 것이다.
돼지를 진료하는 농장동물수의사로서 의협의 주장에 공감한다. 부산대 수의대 신설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태가 남일 같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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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분야의 필수의료라면 농장동물 진료와 가축방역, 축산물 안전성 확보를 꼽을 수 있다. 수의분야도 이를 담당할 가축방역관, 농장동물 수의사 기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를 수의대 신설, 수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할 수 없다. 기피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과 현장 생태계를 이해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수의사들도 세대차이가 있다. 요즘 세대는 수의대에 진학한 이유부터 과거와는 다르다. 동물을 접해본 경험도 다르다. 농촌에서 가축을 보고 자란 세대와 도시에서 반려동물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동물에 대한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렵게 농장동물 수의사로 진입해도 그들의 처우는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다. 수의직공무원의 업무강도는 일반 행정직과 다르다. 농장동물 현장의 업무 강도도 높고, 수의사를 바라보는 소비자(소유주)의 시선도 다르다. 진료와 방역을 위해 지방 구석구석으로 직접 가야 하는 상황도 극한 환경을 만든다.
특히 농장동물 기피를 가속화하는 가장 큰 요인은 농장동물 수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반 환경이다.
이는 국가가 직접 진료하고자 하는 방역정책 관행에서 시작된다. 현장의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해야 할 일을 가축방역관들이 직접 한다. 현장에 대한 지도를 넘어 진료하고 행정업무까지 가중된다. 농장 지원을 명목으로 동물용의약품까지 직접 공급한다.
농장동물 수의사의 설자리는 사라지는데 수의직공무원은 탈진하는 구조적 모순이 있는 셈이다.
진료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은 더 있다. 가축소유주의 자가진료는 여전히 허용되어 있다. 수의사처방제가 시행됐지만 처방대상약물도 수의사의 진료 후 처방 없이 마구잡이로 판매된다.
여기에 동물약품 도매상의 약품소매행위, 동물용의약품 관납 등이 더해져 진료의 핵심인 ‘약품’이 수의사에 의해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진료를 받지 않아도 약을 오남용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농장에서 수의사의 설자리는 더 사라진다.
이 같은 문제를 감독해야 할 행정기관은 관행에만 머무르고 있다. 묵인과 암묵적인 권장이 농장동물 수의사의 진출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농장동물이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과잉배출된 수의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분야별로 치우친다. 이러한 상황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수의대 신설이라는 이권을 노리는 집단의 이상한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농장동물 현장에 있던 수의사로서 현실을 직시하여 해소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던 것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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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대 신설, 정원 확대만으로는 가축방역관 기피, 농장동물 수의사 기피를 개선할 수 없다. 반려동물 수의사만 더 늘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의대를 노리는 SKY 일반과 재학생, N수생들의 공허한 기대감이 대치동 학원가로 몰리고 사교육비 증가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지원, 수가 조정, 공공병원 및 지방병원 활성화 대책들이 병행되지 않으면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 명백하다. 과잉된 비필수의료시장으로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를 국민이 떠안는 현실이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 비전인가 묻고 싶다.
2022년 12월 가장 추웠던 날 국회 앞에서 수의대 신설 반대를 외쳤던 수의사 중 한 명으로서, 농장동물 수의사로서 현재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협 주장에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