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마사회 양영진 말보건원장 1부 `국내 말 임상 발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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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수의사’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마사회(KRA)입니다. 한국마사회의 수의업무를 총괄하는 곳이 바로 ‘말보건원’인데요, 2013년부터 말보건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양영진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말 임상계 현안을 다룬 1부와 말보건원을 다룬 2부로 나뉘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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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말보건원 양영진 원장

Q.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처음부터 말 수의사를 꿈꿨나.

어렸을 때부터 말 수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직업이 말 수의사였던 것은 맞다.

동물이 좋아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작 학교를 다니면서는 수의사로의 길에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졸업 직후에도 ‘수의사가 과연 내 꿈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여러 진로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마사회 채용시험에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했다.

87년 말 진료팀으로 입사했을 때 국내에 말 수의사라고는 마사회 소속의 4명뿐이었다. 말 임상 실력도 없는 내가 대한민국 NO.4가 된 셈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준비도 안된 내게 책임감이 먼저 찾아왔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직업윤리도 확고해졌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 이번 달로 입사 만 27년 차에 접어들었다.

Q. 입사 당시에 말 임상에 대해 하나도 모르셨다니, 힘들었을 것 같다.

너무 어려웠다. 그때만해도 변변한 말 수의학 책이 없었다. 선배들이 아주 쉬운 말 수의학 원서책을 주면서 번역을 하라고 시켰지만 그것도 참 힘든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이 정밀진단을 통한 진료나 수술이 없었다. 시진, 문진, 청진, 직장검사가 주된 수단이었다. 진단 장비라고는 엑스레이 정도였지만 골절 이외에는 특별히 사용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과 위주로 진료가 치우쳐 있었다.

돌이켜보면 여의치 않았던 환경 속에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참 무모했었다. 아쉬운 감도 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항생제∙소염제 산탄식 진료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Q. 현재는 정밀진단 장비는 물론이고 재활센터가 따로 있을 만큼 진료수준이 높아졌는데, 어떻게 그런 발전이 있을 수 있었나

진료영역의 확장은 수의사들이 주도적으로 개척했다기보다는 자연히 생겨나는 진료수요에 대응해나가면서 이뤄졌다. 풍족한 환경에서 이런 저런 연구를 통해 임상기술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진료 의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의뢰하는 진료수준이 발전하는 계기는 1993년 ‘마주제 전환’이었다. 그 전까지는 국내 말의 주인이 한국마사회로 단일화되어 있었던 것을 개인마주제로 전환한 것이다. 개인이 마주가 되면서 보다 수준 높은 진료서비스를 원하는 수요가 생겼다.

88년 올림픽이나 93년 마주제 전환을 계기로 일부 말 수의사가 미국 등 선진국에 해외연수를 다녀오면서 수의임상기술수준이 굉장히 향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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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된 진료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양영진 원장.

Q. 말 수의사의 숫자도 그와 함께 늘어났을 것 같다. 전국 말 수의사 현황은 어떠한지.

현재 말임상수의사회에 소속된 수의사가 65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 마사회 소속 수의사가 올해로 38명이니 외부에 있는 임상수의사가 27명 정도라는 얘기다.

마사회 수의사 38명이 모두 임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 보건업무에는 약 25명이 종사 중이고 나머지는 비임상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Q. 마사회 수의사라고 해서 말 진료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신데, 원장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

아무래도 수의사다 보니 직접 진료를 보지 않더라도 보건파트에 굉장히 오래 머물렀던 편이다.  그 외에도 교관이나 목장 담당, 지사장 등 여러 보직을 두루 거쳤다.

기수양성소에서 말 수의학 교양을 가르치는 교관업무를 담당하기도 했고, 부천과 강남에서 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보직마다 수의사의 전문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두루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다시 진료 이야기로 돌아가서, 경마공원 내에서도 KRA(마사회)동물병원은 2차 진료를, 마사회 소속이 아닌 일반 개업수의사가 1차 진료를 담당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경마장 내에는 마사회 소속 KRA동물병원도 있지만, 일반 개업수의사가 마사회 시설을 임대해서 운영하는 동물병원도 따로 있다. 서울에만 3개 병원에 수의사 6명,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2개 병원에서 3명의 수의사가 로컬수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감기나 간단한 외상 정도의 진료는 개업 로컬 수의사가 마방(말이 머무는 곳)으로 왕진한다. 그 중 치료가 잘 안되거나, 정밀진단장비를 이용한 감별진단이 필요한 케이스가 있으면 KRA동물병원에 2차 진료를 의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로컬병원은 고급진단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해도 왕진에 바빠 활용하기가 힘들다.

반면 KRA동물병원은 정밀진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2차진료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진단 결과가 보험 사무 처리에 증빙이 되고, 경주마의 출전을 제한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료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간단한 케이스를 위해 마방에 왕진할 여유가 없다 보니 로컬수의사들과의 협력체계가 자연히 구성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부 동물병원에서도 2차 진료를 하는 곳이 생겼다. 이천에 생긴 JNC동물병원이 개복수술도 하고 있고, 조만간 관절경 수술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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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마를 진료하고 있는 한국마사회 KRA 동물병원 김아람 수의사.

Q. 로컬에서도 2차 진료가 도입되고 있는 만큼 마사회 동물병원에서도 새로운 목표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단순히 어려운 진료를 하는 2차 병원을 넘어서서 입원치료를 확대하고 말 수의사를 양성하는 대학병원 수준으로 가려고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개장한 말 재활센터에 입원마방 3개를 확보했다. 아울러 경마공원이 아닌 외부 목장으로부터의 진료 의뢰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경마공원 내에 머무르는 관리비가 외부 목장에 비해 비싸 장기 치료를 위한 리퍼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공원 내에 머무르되 관리비를 외부 목장에 준해 저렴하게 받는 형식을 도입해서, 진료 영역도 넓히고, 수송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부상을 방지하면서 보다 연속성 있는 집중치료를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Q. 2차 진료기관은 진료비가 비싸고, 일반 로컬은 좀 더 저렴한 것이 일반적인데, 이와 관련하여 말 임상 진료수가 개선에 말보건원(KRA동물병원)이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DJ 정부 들어 진료수가가 폐지된 이후, 수의사 단체 차원에서 진료수가를 책정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보건원에서는 경주마 진료시장의 안정화하기 위해 ‘평균 진료수가’를 마련하고 있다. 마주들의 진료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상한가를 책정하거나, 진료비 일정부분을 마사회가 지원해줄 때 객관적인 근거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마사회의 자료일 뿐 로컬 임상수의사에게 이를 따르라고 강제하지도 권고하지도 않는다.

Q. 말 임상에서의 평균 진료수가가 현재 조사되어 있다는 말인가.

93년 마주제 전환 당시 일본, 미국 자료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그 때 이후로 시대상황을 반영해서 계속 조정해왔다.

Q. 1차 동물병원 쪽에서는 마사회가 그 ‘평균진료수가’를 높여주길 원하는 것 같은데.

마사회 동물병원의 진료수가 조정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마사회 구조 상 마주에게 주어진 진료비 부담이 마사회로 돌아오기 때문에 무작정 올리기 힘들다.

마주들은 경마 상금이나 출전비(출주마장려금)를 받아 진료비나 사육관리비를 충당하고 있다. 쉽게 말해 매달 경주를 뛰면 관리비를 보전받을 수 있고, 월1회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상금 중 진료비 명목으로 연간 15억원이 편성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비를 올리게 되면, 진료가 비싸졌다고 치료가 필요한 말들이 덜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마사회가 부담해야 할 진료비도 많아지는 것이다.

Q. 앞서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93년 이후 말의 주인은 개인이고, 마사회는 경마대회를 주최할 뿐 아닌가. 상금 외에 개인 소유 경주마에게 진료비나 사육비까지 대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말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주들이 배부른 부자가 아니라 경주마 생산과 경주 참여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일반인이다.

경쟁으로 얻는 이득 이외에 안정적인 수입과 적정한 비용 보전이 없으면 경마산업에 참여할 사람이 없다.

당연히 말 수의사로서 말 진료수가가 수의사들의 노력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마사회 운영 측면을 감안하면 현재의 체계에도 어느 정도의 합리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추진했던 진료수가에 대한 연구용역 건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수가를 전체적으로 올리는 대신 말보건원이 자체적으로 진료업무의 경중과 업무피로도, 전문기술 투입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료항목별로 수가를 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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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경 수술 중인 KRA 동물병원 진료진

Q. 수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말 수의사가 수의사 중에서도 고소득을 올리는 상위 직종이라고 들었다. 이에 비해 국내 말 수의사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의임상기술적인 측면보다는 환경에서의 차이가 크다.

미국은 천만에 육박하는 말 두수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말은 반려동물에 비해 시설, 보정, 수의사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노력 모두 더 필요하다 보니 자연히 진료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2만 5천두 규모다. 그나마 주된 진료대상인 경주마는 1만두도 안 된다. 대부분 제주마(조랑말)나 품종이 섞인 승용마라서 상대적으로 치료건수가 적다.

경주마는 훈련이나 경주에서 수시로 다치고, 작은 외상에서부터 심한 근골격계 부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간단한 승마장에서는 말이 다칠 일이 없다. 천연기념물 제주마(조랑말)는 안 아프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이 됐을 정도다.

진료대상이 적은 것 외에 자가진료의 장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Q. 말 임상에서도 자가진료 문제가 심각한가

국내 말 임상은 태동기부터 자가진료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 자가진료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말 임상시장이 커지기는 힘들다고 본다.

말 목장에 가보면 약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목장의 약장에는 간단한 소독약 정도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항생제, 진통제, 소염제 등 전문약재가 화려하게 구비되어 있다. 목장에서 일하는 말 관리사들이 거의 준 수의사처럼 일한다. 한 목장에서 관리사들이 봉합까지 하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국내에서 시판되는 약재들의 효능, 용법 등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경주마에서는 어느 정도 자가진료를 억제하는 장치가 있지만, 앞으로 말고기 등도 육성한다는 정부 방침이나 말의 복지 차원에서라도 자가진료는 없애야 한다. 동물의 건강관리를 수의사가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사회악이다.

Q. 자가진료가 법으로 허용되어 있는데 경주마에서는 어떻게 막는다는 것인가.

경주에 한창 출전하면서 경마공원 내에 머무는 경주마들은 어느 정도 자가진료가 억제된다.

일단 수의사들이 가깝게 머무르기 때문에 필요하면 손쉽게 왕진을 요청할 수 있다.

게다가 ‘도핑검사’라는 안전장치도 있다. 멋모르고 약을 쓰다가 도핑에 걸리면 경주 출전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전을 해야 관리비나 진료비를 보전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만큼 출전제한은 큰 불이익이다. 심하면 사육관리 권한도 박탈될 수 있다.

물론 경주마가 경마공원이 아닌 외부 목장으로 가게 되면 자가진료를 확인할 길도 막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수의사처방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약재가 말에게 투약되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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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설립된 말 재활센터에 국내 최초로 설치한 염수 스파 시설

Q. 말 두수 차이가 말 임상수의사의 격차를 만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부는 「말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승마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는 등 말산업 키우기에 적극적이다. 이와 관련한 말 수의사의 전망은 어떠한가.

말 사육두수가 늘어야 말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국가나 조직에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2017년까지 말 사육두수를 5만두로 증가시킬 계획이다. 그에 따라 말 임상수의사도 늘어야 한다.

현재 말 수의사의 숫자가 대체로 안정화되었다고 전제할 때, 최소 80명까지는 말 수의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늘어나는 말이 어떤 용도냐에 따라서도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제주마보다는 승용마가, 승용마보다는 경주마가 수의사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사회에서는 말 수의사 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2017년까지 연도별로 5명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Q. 그래서 말 임상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인가.

그렇다. 의사의 수련의제도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수개월에 걸쳐 훈련 겸 실습을 충실히 진행한다. 말보건원의 정식 임상수의사를 따라다니면서 지도를 받아 치료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교육생이 매년 5~6명 정도라 상시 강의는 마련하기 힘들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습강의를 같이 들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물론 마사회 교육만 받는다고 바로 개업할 수준이 되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인턴쉽이다. 반려동물병원처럼 일반 로컬이든 마사회 병원에 취직하든 일정 기간의 추가 수련이 필요할 것이다.

2부에 계속..

[인터뷰]한국마사회 양영진 말보건원장 1부 `국내 말 임상 발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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