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동물을 진료하지 않는 수의대에서 농장동물 수의사를 기를 수 있나
미래 돼지수의사 양성, 안정적 의료 수요·교육 인프라 개선 두 마리 토끼 잡아야
박혁 서울대 교수가 18일 대전 계룡스파텔에서 열린 한국돼지수의사회 포럼에서 ‘돼지수의학 교육의 현주소와 개선대책’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박 교수는 돼지수의사를 양성해 돼지 임상의 명맥을 이어 나가려면 돼지의료환경 개편과 돼지수의학 교육 개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장전담수의사제, 약품 공급체계 개편 등을 통해 돼지수의사에 대한 의료수요를 안정화하는 한편 수의과대학에서 돼지를 접할 기회를 늘리고 임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돼지수의사에 안정적 의료 수요 주어져야
이날 박혁 교수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의뢰로 실시한 ‘농장동물 의료 활성화 방안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발표에 나섰다.
이에 따르면 국내에서 돼지를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약 60개소, 수의사는 80여명에 불과하다. 업계에서 초임수의사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공급은 부족하다. 농장의 자가진료가 여전히 허용되어 있는데다, 수의사처방제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 돼지수의사로의 도전을 유도하기 어렵다.
농장에서 사용되는 약품의 92%는 동물용의약품도매상에서 공급하며, 동물병원의 비중은 8%에 그친다.
박혁 교수는 “의료수요가 안정적이어야 돼지수의사 공급도 안정화될 수 있다”면서 “수의사 진료 없이 약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없애고, 진료비를 따로 받지 못한 채 매약 수익의 일부로 대체하는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도입, 광역 단위 돼지·가금 공수의사 위촉을 위한 수의사법 개정 등으로 안정적인 의료수요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대학 동물병원이 돼지를 진료하지 않는데 돼지 진료를 어떻게 배우나
‘친숙해질 기회 있어야’ 수의대 공동 실습농장 필요
수요가 있다 한들 현재 수의과대학에서 돼지수의사를 양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개 수의대 동물병원 중 농장동물을 상시로 진료하는 곳은 3개뿐이다(서울대·전북대·제주대). 이들도 대동물(소)이나 말을 진료한다. 돼지를 진료하는 곳은 없다. 대학 동물병원에서 돼지를 진료하지 않으니, 돼지수의사가 실제로 하는 진료를 가르칠 사람도 사실상 없는 셈이다.
돼지 진료 이전에 돼지 자체를 접하기부터 힘들다. 자체적인 실습목장을 갖춘 수의대는 한 곳도 없다.
국내 수의대에서 돼지 임상을 실습할 수 있는 기회는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서 진행되는 실습교육 정도인데, 그나마도 평창 연수원에는 돼지가 없어 부검실습용 돼지를 일부 들여오거나, 인근 농장에서 심화실습을 진행하는데 그치고 있다.
박혁 교수는 “수의대에 다니는 6년간 소, 돼지, 닭을 못 만나는데 농장동물 수의사가 되길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본 아자부대학에는 12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실습 돼지농장이 설립됐다. 태국의 콘캔대학도 실습농장이 있다’면서 “(국내에도) 전국 수의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돼지 실습농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임수의사를 교육하기 위한 지원정책도 주문했다. 돼지 진료의 특성상 수련하는 초임수의사에게 급여를 줄만한 매출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은 인력·시설 기준에 부합하는 동물병원이 신입 수의사를 교육하는 경우 최대 40만엔을 동물병원에 지원하고, 초임 농장동물수의사에 농장 방역관리 지원을 조건으로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등의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박 교수는 “현재 돼지수의사의 양성 교육과 평생 교육은 전적으로 민간에 의존하고, 제도적 뒷받침도 없다”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평창 연수원에서 학생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초임수의사에 대한 교육 기능도 확대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임상뿐만 아니라 양돈 관련 약품·사료업계에 취직한 수의사에게도, 갓 임용된 가축방역관에게도 실습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초임수의사를 양성하지 못하면 돼지수의사회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회원들의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