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커리큘럼에 안주하던 동안..우리가 알던 교과목은 사라졌다

한국수의교육학회, 대한수의학회서 통합교육과정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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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던 교과목 구분은 의대 교육에서 이미 사라졌다. 세계 유수의 수의과대학에서도 사라졌다. ‘일제시대 커리큘럼’에 머물러 있는 수의학 교육에 통합교육과정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국내 수의대에서도 예과 전공과목이나 본과 실습 과목 일부에서 작은 통합이 시도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변화의 불편을 감수하길 꺼리는 대학과 교수진이 망설이는 동안 수의대생들은 이미 수직적·수평적 통합교육을 구체적으로 원하고 있다.

한국수의교육학회(회장 남상섭)는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대한수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수의학교육에서 적용할 수 있는 통합교육과정의 정의와 사례’를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한국수의교육학회 천명선, 남상섭, 이기창 교수

우리가 알던 교과목명은 사라졌다

‘2+4냐 6이냐’를 떠나 교육과정 내용이 통합되는가에 방점

최근 개정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수의과대학은 기존에 예2+본4로 고정됐던 수업연한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됐다. 1+5도 되고, 통합 6년제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날 발제에 나선 천명선 서울대 교수는 “흔히 예과·본과를 합치는 것을 ‘통합’으로 여기는데 실질적인 통합교육과정의 의미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본과 후반 로테이션 기간 도입으로 압축된 본과수업을 예과 학년으로 보내기만 하는 형태의 학제조정은 큰 의미가 없다. 학제조정은 교육과정 자체를 수평적·수직적 통합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남상섭 건국대 교수도 “외형적 학제보다 교육의 내용이 얼마나 달라지느냐에 실질적인 통합의 성과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1969년 서울대 의대의 교육과정
자료 : 신좌섭&이윤성, 서울의대의 통합교육시행경험(2000)

통합교육과정을 실행에 옮긴 의학 교육, 해외 수의학 교육과 달리 국내 수의대는 여전히 교과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일제시대 커리큘럼’을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2021년의 서울대 의대 교육과정은 정상인체, 질병이해의 기초, 인체와 질병I~IV과 의학연구 파트로 구성된다. 해부·생리·병리·내과 등 고전적인 과목명은 사라졌다. 대신 정상과 비정상, 시스템별 질병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해외의 유명 수의과대학의 커리큘럼 양상도 비슷하다. 이날 천 교수가 소개한 영국왕립수의과대학, UC DAVIS,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등 선진 수의대에서도 고전적인 과목명은 찾아볼 수 없다.

위트레흐트 대학의 1학년 과목(Block)은 ‘From Cell to Tissue’, ‘From Organism to Tissue’ 등으로 합쳐져 있다. 에딘버러 수의과대학의 코스명도 ‘Animal Body’나 ‘Professional & Clinical Skill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화임상과목도 개·고양이, 말, 농장동물, 특수동물 등 축종별로만 구분되어 있다.

천명선 교수는 “수의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과목으로 분리되어 찾아오지 않는다”면서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식을 쌓는 방식도 맥락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에딘버러 수의과대학의 학년별 전공과목(Compulsory courses)

‘임상과목 배울 때면 해부·생리 다시 봐야’

학생들도 통합교육 원해

비뇨기계의 해부·조직·생리를 함께 배운다면 수평적 통합을, 해부학을 배우면서 엑스레이나 초음파에 어떻게 나오는지를 연계한다면 수직적 통합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통합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학습성과를 높이는데 더 효율적이다.

반대로 말하면 학생들이 달성해야 할 학습성과가 명확해야, 고전적인 교과목의 틀을 벗어나 통합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중요한 내용을 중복없이 더 적은 교육량으로 익힐 수 있게 한다면, 사회적 요구에 응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교육을 도입하거나 실습기회를 늘릴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남상섭 교수는 “학생들은 교수보다 더 빠르게 통합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남 교수가 소개한 학생면담 자료에서는 가령 해부·조직·생리 등의 과목에서 정상 상태를 배우는 시점과 임상과목을 배우는 시점이 떨어져 있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임상과목을 배울 때 정상에 대한 내용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을 지목했다. 교육과정의 ‘수직적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다. 해부학과 수의방사선학의 교육 시점에 간격이 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질병이라면 내과, 영상, 외과에서 통합적인 수업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수평적 통합’ 요구도 나왔다.

천명선 교수는 “관행과 익숙함을 깨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어렵지만 해야 한다.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학생들은 대학별 커리큘럼을 비교하고 있고, 상대적인 미흡함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 일제시대 커리큘럼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수의사를 제대로 키워낼 수 없다는 점도 지목된다.

(자료 : 남상섭 교수)

 

통합 시도 있지만..예과, 실습과목 위주 그쳐

전공과목 이론교육 통합 유도할 인센티브 만들어야

이날 세션에서는 일부 수의과대학에서 시도한 통합교육 사례도 소개됐다.

건국대와 서울대는 실습교육 일부를 통합교과로 구성했다. 남 교수는 건국대 수의예과에서 도입된 기초과학통합실습에 대해 “본과 진입전 타 실습의 기초가 되는 내용을 다루면서 중복을 방지하고 스토리를 부여했다”며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고, 교수들의 행정적 부담을 줄이며, 실습실이나 예산을 경감하는 효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전북대는 해부학과 조직학을 연계하여 강의하고 있다. 교육과정 내에 공식적으로 통합되진 않았지만 내용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서울대는 지난해 수의예과의 일부 전공과목을 ‘수의생명의학’과 ‘수의전문직업성’으로 재편하기도 했다.

이기창 전북대 교수는 “외과 과목에서 가르치는 순서에 수의방사선학 교육 순서를 맞춰 학생들이 유사한 주제를 비슷한 시점에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통합교과목 운영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실습은 그나마 통합 작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본과 주요 교과목의 통합은 교수별로 이뤄지던 수업의 내용을 다 비교하여 조율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교육시간이나 조교 배정 등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행정적 지원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상섭 교수는 “(대학 내부의) 자생적인 통합 교육과 그 성과에 대한 동료들의 인정이 기반되어야 한다”면서 “의대에서도 통합교육과정 도입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수의대에서 시도한다 해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커리큘럼에 안주하던 동안..우리가 알던 교과목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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