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순례자의 길 위에서 수의학의 본질을 찾다

제46회 수의역사학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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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의인문사회학 연구실

주설아·최유진 연구원

제46회 세계수의역사학회(World Association for History of Veterinary Medicine Congress; WAHVM)가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스페인 레온(Leon)에서 열렸다.

레온 대성당이 자리한 옛 레온 왕국의 수도는 로마시대부터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중심지로 그 유산을 잘 보전하고 있다. 학회가 열린 레온 대학의 수의학부는 1852년 설립됐다. 마드리드, 코르도바, 사라고사에 이어 스페인에서 네번째로 오래된 수의과대학이다.

레온대성당과 성당 내에서 열린 학회 축하 공연(오르간연주)
레온 대학 정문과 수의과대학 전경

올해는 세계동물보건기구 창립 100주년을 맞아 동물 질병 및 공중보건, 그리고 스페인 출신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근대 뇌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의 업적을 기리는 기조 강연이 열렸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총 10여개국 연구자들이 참여한 본 학회에서는 총 3건의 기조강연과 68건의 학술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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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대학의 수잔 존스(Susan D. Jones) 교수는 ‘The laboratory life of Brucellosis: fighting a multi-species epidemic, 1880-1930’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존스 교수는 다양한 축종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전염되고 발현됐던 증상들이 “실험실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880년부터 1930년 사이, 브루셀라(Brucellosis)라는 하나의 질병으로 확립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는 서로 다른 축종에서 증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체를 발견하고, 특정 짓고 감별하는 혈청학적 과정부터 유전학적인 기술까지 포함한다. 과학자가 실험실을 통해 지식생산의 결과를 축적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영국 링컨 대학의 우즈(Abigail Woods) 교수와 트리니티 대학의 세이어(Karen Sayer) 교수는 영국에서 가축 질병 조사에 사용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역사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19세기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20세기 중반까지 송아지와 젖소에서 발생하는 질병 조사가 점차적으로 한계를 드러내며 권위를 상실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컴퓨터 등의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현장의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으며, 질병과 축산 방식 사이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조사는 신뢰를 잃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컴퓨터는 매뉴얼 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더 빠른 데이터분석과 정보에 대한 통합적 관리를 가능하게 했지만, 인간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혁명(revolution)’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우즈의 분석 결과였다.

수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린 학회 개회식 모습

마드리드 대학의 수의역사학자 프리에토(Joaquin Sanchez de Lollano Prieto)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오늘날 스페인에서의 원헬스 개념을 형성하는데 기반이 되는 라몬 이 카할 시대(1852-1934)에 이루어진 선제적, 제도·법적인 맥락들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시기 질병상황이 제도와 공중보건, 그리고 학술적 연구와 이어지기 시작했지만, 의학·약학·수의학 사이의 학문적 위계와 전문가들의 ‘영역 주권(territorial sovereignty)’에 의해 더딘 발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건강 시스템 영역은 관료화(bureaucratization), 정치화(politicalization), 그리고 기술화(technification)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세분화되어왔으며, 이러한 개선에는 개입적 행정조치와 전문적 기관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19-20세기를 거치는 동안 공중보건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holistic perspective)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수의학의 기여와 의학과의 협력을 강조했던 카할의 선구안과 영향을 소개한 발표였다. 

영국 킹스컬리지의 역사학자 스키퍼(Alison Skipper)는 개 브리더의 폐쇄적인 육종으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 감소, 질환 증가에 대한 문제 개선 방안을 시사하기 위하여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에 걸친 혈통 등록의 역사적 흐름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브리더의 부모견 등록 관행이 모호하고 불완전하였으나, 20세기 초 유전학 발전과 맞물려 종 표준(breed standard)과 순종 육종(pure breeding)의 의미가 변화되며 부모견 등록이 폐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음을 확인했다.

연자는 개 건강 개선을 위해 초기 혈통 등록의 측면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재료는 역사적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동물관계에 대한 문화적, 윤리적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팀(Marchisio & Mazzucco)은 말을 지칭하는 영어 및 유럽의 단어들을 비교 분석(semic analysis)을 통해 나이, 성별, 수태능력에 따라 말을 구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사회와 문화가 언어에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터키의 연구자 젠크(Savaş Volkan Genç)는 그림자 연극(shadow theatre)인 카라고즈(Karagöz)에 문화적, 교육적 요소들이 담겨 전수되고 있으며, 권력, 부, 신성 등의 상징에 동물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19세기말 이탈리아 수의사 Vittore Nessi를 기리는 길라자르(Ghilarza) 지역의 도로명에 대한 분석(Veterinary odonomy), 과거 식민지 국가인 나이지리아에서 경험한 동물 질병에 대한 전문성 형성의 도전적 상황을 분석한 연구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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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검역본부 심유정 주무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연구팀은 ‘Policy-driven changes in perception and consumption of dairy products in Korea’(배재예 박사과정생), ‘A historical forum on antimicrobial use in the livestock industry in south Korea and its implications’(천명선 교수), 그리고 ‘Korean wolf naming in the context of animal colonialism’(김동윤 박사과정생) 세가지 주제의 구술 발표를 진행했다.

검역본부 심유정 주무관은 ‘Historical valuing of animal health relief sculpture at the building of APQA in Anyang city’를 주제로 포스터 발표에 나섰다.

격년으로 열리는 본 학회의 다음 (2026년) 개최지는 서울이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수의인문사회학 연구실)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동으로 조직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수의역사학회 차기 개최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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