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칼럼]김선아의 행동문제도 의학이다② – 우리 애가 화장실을 못 가려서 미치겠어요
“우리 애가 화장실을 못 가려서 미치겠어요!”
임상수의사라면 자주 듣는 보호자의 하소연이 아닐까 한다.
많은 보호자들이 사료나 간식을 사러 오면서 ‘화장실을 못 가리는데 어떻게 해요? 우리 애가 사람을 무는데 어떻게 해요? 너무 심하게 짖는 거 어떻게 고치나요?’ 등 행동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덤으로 답을 얻어가려 하신다. 그리고 간단하게 질문을 하시면서, 간단한 해결책을 기대하신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단한 행동학적인 문제도 없지만, 이 세상에 마법 같은 간단한 해결책도 없다. 있다 하면 TV에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행동학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몇 마디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학적인 문제도 질병이다. 따로 예약을 해서 자세한 병력청취를 통해서 진단을 하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얼마 전에도 ‘우리 애가 화장실을 못 가려서 미치겠어요! 매달 카펫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수십만 원이예요’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이 보호자 역시 사료를 사러 오셔서 질문을 하셨다. 그래서 따로 행동학상담 예약을 한 후, 며칠 뒤에 상담실에서 11개월 된 푸들 두유와 함께 보호자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1)나: 두유가 언제부터 화장실을 못 가렸나요? 강아지 때부터 못 가렸나요? 아니면 못 가린지 얼마나 되었나요?
두유엄마: 강아지 때는 잘 가렸는데, 못 가린지 3개월 되었어요.
2)나: 사람 없을 때나 있을 때나 똑같나요? 혹시 짖는 문제는 없어요?
두유엄마: 배변 자체를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 안 싸고, 없을 때만 싸요. 짖는 문제는 없고요.
3) 나: 혹시 배변하는 중에 놀란 적이나 혼난 적이 있을까요?
두유엄마: 살짝 혼낸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제가 있을 때는 안 싸는 것 같아요.
4) 나: 몇 군데에 싸는 것 같아요?
두유엄마: 카펫에 가장 자주 싸요. 한 달에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20만원 넘게 들어가요. 그리고 여기저기 좀 넓은 공간에 3-4군데에 싸는 듯해요.
5) 나: 카펫 없애면 안 되나요?
두유엄마: 카펫 없애면 다리를 들고 다녀요.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께서 꼭 깔아주라고 하셨어요.
나: 빙고!
두유엄마: 그런데, 다리 문제는 두 달 전부터이고, 화장실을 못 가리는 것은 3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다음은 각 대화(1~5번까지)에 대한 설명이다 – 편집자 주)
1) 처음에는 잘 가리다가, 어느 순간 못 가렸다면 재훈련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2) 그리고, 혹시 분리불안증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사람이 없을 때 짖는 문제나 그 밖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분리불안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3) 화장실 재훈련은 기본적으로 원하는 곳에 배변을 했을 경우에 과한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사람 앞에서 배변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는 칭찬을 할 기회가 없어서 교정하기 가장 힘든 경우 중 하나이다. 대부분 배변을 하는 중에 혼난 경우에 이런 행동을 보인다.
4) 보호자는 무엇보다 카펫 세탁비용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보였다. 보호자가 반복적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줘야지만 보호자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5)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애면 되는 것이니, 카펫을 없애면 안 되냐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이 대화는 2시간가량 걸쳐 진행된 상담을 몇 줄로 줄여본 것이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슬개골탈구로 인한 화장실 문제였다.
어느 날 좁은 배변판에서 배변을 할 때마다 무릎의 통증을 느꼈을 것이고, 넓고 덜 미끄러운 카펫에 배변을 할 때 무릎 통증이 덜하니 지속적으로 카펫을 배변 장소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추정했다. 그래서 일단 카펫을 없애고, 대형견용 배변판에 미끄럼방지 배변패드를 추천했고, 슬개골탈구를 위한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화장실 재훈련을 시작했다. 역시나 화장실 문제는 해결되었고, 한 달 후에 두유엄마가 돌떡을 해오셨다.
‘우리 애가 화장실을 못 가려서 미치겠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또, 화장실 문제군.’ 하면서, 화장실 훈련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재훈련이 필요한 경우보다, 다른 원인에 의해 화장실문제가 생겨서, 그 원인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내과적, 외과적, 환경적 원인을 비롯하여, 분리불안증이나 인지장애증후군과 같은 다른 행동학적 문제까지 다양하다.
강아지 시절부터 한 번도 화장실을 제대로 가린 적이 없는 아이라면 ‘재훈련’을 시켜야겠지만, 어느 순간 시작된 문제라면 다양한 원인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마디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즉, 사료나 간식을 사러 와서 물어본다고 해결책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수의사들부터 ‘화장실 문제’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화장실 문제도 따로 시간을 내서 수의사가 진단 및 치료를 해야 할, ‘질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