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계일주’일 것입니다.
세계여행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동물을 만나고, 여행 중 만난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위해 복원 연구의 길로 뛰어든 수의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여행경험담을 두 권의 책으로 펴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픈 우리나라 청년들이여, 지금 행복하라”고 말하는 조영광 수의사를 데일리벳에서 만났습니다.
Q. 말 나온 김에, 진짜 위험했던 적이 있었나?
사하라 사막에서 죽을 뻔 했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에 들어가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는 투어를 했던 때였다.
선배여행자들에게서 ‘별로 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갔었는데, 정말 별이 엄청 많더라.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별똥별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쪽 보면 떨어지고 저쪽 보면 떨어지고. 그런 환상적인 상황이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라마고기가 탈이 났는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은 좀 지저분하길래, 캠프장을 살짝 탈출했다. 손전등도 없이 별빛의 도움을 받아 캄캄한 사막을 일단 걸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저쪽 너머 캠프장이 빛으로만 보일 무렵, 사막에다가 발로 구덩이를 파고, 아무도 없으니 바지도 아예 벗어버린 채 별을 보면서 볼일(?)을 봤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시커먼 형체가 스르륵 하면서 굉장히 빠르게 내게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허벅지 안쪽이 갑자기 따끔했다.
Q. 전갈이었나
나도 순간적으로 ‘전갈에 쏘였구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아팠다. 무언가에 쏘였다는 감촉이 있자마자 타는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망했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바지를 입고(나중에 보니 너무 놀라서 앞뒤를 거꾸로 입었더라) 캠프장 쪽으로 달려갔다. 한참 자고 있던 일행들에게 ‘스콜피온! 스콜피온! 바이트 미!’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쓰러졌다.
깜짝 놀란 가이드와 동행자들이 일어나 상처 부위를 보니 동전 크기만하게 까맣게 변해있었다. 너무 아프고 너무 놀라서 눈물로 범벅이 됐다. 사하라 사막에 전갈이 몇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어떤 것들은 쏘이면 해독제를 써볼 틈도 없이 3분만에 죽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패닉에 빠져 있던 내게 가이드 할아버지가 요리에 사용했던 커다란 가스통을 들고 왔다. 쇠꼬챙이로 입구부분을 누르니까 액체가스가 좍 나오더라. 그걸로 병변부를 순간적으로 냉각시켰다. 현지인의 지혜였다.
가이드 할아버지는 “네가 지금까지 안 죽은 것을 보니 맹독성 전갈은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 “딱하루 정도는 정말 아프겠지만 그 다음에는 괜찮아질 거다”라고 얘기했다.
정말 악몽 같은 밤이었다. 모래바람이 부는데 잠을 한 숨도 못 자겠더라. 너무 아팠다. 전기로, 불로 물린 부위를 계속 지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비몽사몽 낙타를 타고 돌아와서 하루를 쉬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지금도 흉터는 허벅지 안쪽에 동그랗게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경험이다. 결국 뭐에 물렸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Q.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금은 동물복제 연구의 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다. 원래부터 그 쪽으로 생각이 있었나
지금 걷고 있는 길에 대한 관심은 세계여행 도중에 생겼다. 수의사의 입장에서 여러 동물들, 동물원들, 국립공원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멸종위기’의 동물에 관심이 생기더라.
샌프란시스코에 피어(PIER)39라는 항구가 있다. 수천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떼지어 머무는 모습 자체가 관광상품화 되어있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 바다사자들은 약 30년전 하루 아침에 나타났다고 했다. 엘니뇨, 라니냐 현상 등으로 인해 바다의 수온분포가 변하면서 한대성 지역에 있던 바다사자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떠나온 것이다.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한 변화 때문에 자기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동물들이다. 여행을 통해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됐다.
그러다가 페루 바예스타 섬을 방문하게 됐다. 보트를 타고 그 섬을 둘러보는 투어였는데 펭귄과 바다사자, 펠리컨, 바다새들이 섬을 뒤덮고 있었다. 그야 말로 ‘동물들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눈 앞에 펼쳐졌다.
순간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손이 더럽히지 않은 곳에 멸종위기의 동물들,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멸종한 동물을 복원해서 그들만의 생활터전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바예스타섬이 충분히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Q. 우리나라 야생동물에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고, 서해, 남해에 무인도도 많다. 여기에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위한 낙원을 조성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외래종 도입으로 인한 생태교란문제나, 전염병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수의사로서 책임지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만 한다면 국립공원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고, 자연친화생태동물원의 비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작은 일은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내가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정당성이 생겼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Q. 멸종위기 동물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인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방법에는 ‘보존’과 ‘복원’이 있다.
‘보존’이란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접근 방식이다. 지금 자연계의 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남한에 없는 호랑이를 예로 든다면, 200년이 걸리든 300년이 걸리든 현재 시베리아에서 서식하는 아무르 호랑이를 백두대간을 통해 우리나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한다면 이는 ‘보존’에 가까운 방식이다.
반면 멸종위기의 동물을 체세포 핵이식 복제기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체수를 늘린다면 이는 ‘복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연적인 상태로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멸종위기 동물들이 처해 있는문제다. 보존이나 복원이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같지만, 멸종을 막기 위해 사람이 어느 선까지 개입할 것인가의 차이라고 본다.
나는 수동적인 접근보다는 적극적인 쪽에 더 관심이 갔다.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님 실험실이 내가 생각하는 동물의 복원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진학하게 됐다. 현재는 Canine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다.
Q. 아예 멸종해버린 동물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한가
개인적으로는 멸종위기종 뿐만 아니라, 도도새와 같이 이미 멸종한 동물에도 관심이 있다.
어느 책에서 하루에 100종 이상의 동물이 멸종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따져보면 15분에 한 종씩 멸종하고 있는 셈인데,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면에서는 분명 인간이 멸종의 속도를 가속화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변화를 막고 되돌려야 할 존재도 인간이다.
Q. 그렇다면 지난해 화제가 된 매머드 복원도 현실가능성이 있나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추진해오던 연구였다. 매머드의 세포를 채취해, 가장 가까운 동물인 코끼리에 이식하여 매머드 새끼를 낳게 하겠다는 컨셉은 같다.
그러던 중 러시아의 빙하 속에서 혈액과 조직이 모두 남아 있는, 거의 원형에 가까운 새끼 매머드(Yuka)가 발굴됐다. 이를 계기로 세계 연구진이 앞다퉈 복원에 뛰어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현실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한번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얘기만 들었던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고, 현실화되고 있다.
Q. 세계여행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세계의 동물들을 만나고, 멸종을 막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앞으로의 꿈을 말씀해주신다면.
내 이름을 건 ‘멸종위기 동물 연구소’를 세워 이번 매머드 이슈처럼 멸종위기 혹은 멸종한 동물을 복원하는 것이 내 꿈이다. 언젠가 내 능력과 지식을 이 분야에 활용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다들 그냥 아프다. 그것도 약간 아픈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 만큼 무지무지하게 아파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리도 아플까? 그건 아마도 스스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의문이 들었다. 혹시 오직 우리나라의 청년들만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은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세계여행을 떠났고, 수 많은 외국의 빛나는 청춘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들은 생활 환경이 그다지 풍족하진 않을지언정 적어도 우리나라의 청춘들과는 다르게 항상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현재에 충실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돈 잘 버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아이들의 개성과 꿈은 쉽사리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가 즐겁고 행복할 때,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장래희망이 싹트고 더욱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그저 나만 좋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잔뜩 지쳐 있는 바로 이 땅의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그냥 지금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