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칼럼] 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④ – 황조롱이
공주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완치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대부분의 야생동물에게 표식 장치를 부착하고 있다.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역할을 하는 표식 장치는 그 종류와 부착 방법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이표(ear tag)를 달아주거나 마이크로 칩을 체내에 삽입하고, 조류는 주로 가락지(ring)를 다리에 부착하여 방생하게 된다.
본래 조류에게 가락지를 부착하는 것은 철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국립공원 철새연구센터에서 매년 만여 마리의 새들에게 가락지를 부착하여 수많은 조류 종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그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부상에서 회복되어 방생되는 동물에게도 이와 같은 표식을 함으로서 여러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부상에서 회복된 개체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뒤 생존여부 확인을 통해 치료나 재활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또한 방생 방법이나 시기, 장소와 같은 부분과 연계해서 해당 종에 대한 최적의 방생 방법을 확인할 수 있고 더불어 해당 종의 평균 수명, 철새인 경우 번식지와 월동지 같은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단, 이런 표식 장치를 부착해서 방생된 동물의 경우 다시 포획되거나 발견이 되어야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다시 포획할 필요가 없는 인공위성추적기나 GPS기반 위치추적기를 사용해서 방생 후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더 나아가 야생동물의 생태 등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추적기는 상당히 비싸고 부착 가능한 종이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 때문에 방생되는 모든 야생동물에게 적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표식장치를 부착해서 방생된 야생동물 중에 다시 구조된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그들 중 하나인 접수번호 ‘12-028’ 황조롱이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12-208 황조롱이’는 2012년 1월 20일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한 주택가 주변에서 날지 못하는 상태로 발견되어 구조됐다. 당시 암컷 1년생이던 이 녀석의 사고 원인은 발견 장소와 정황으로 미루어 유리창 충돌로 추정됐다.
초기 신체 검사와 혈액, 방사선, 안저 검사 등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기에 충돌에 따른 일시적 쇼크로 진단이 내려졌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만큼 약 4주 동안 센터에서의 치료와 재활을 마친 후, 최종적으로 2월 17일 발견 장소에서 다소 떨어진 농경지에 방생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12-208’ 황조롱이에게도 방생 전에 표식 장치를 하였는데 오른쪽 발에는 고유번호가 적혀있는 금속가락지를, 양쪽 날개에는 자체 제작한 태그(이를 윙택-wing tag이라 한다)를 부착하였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5월 5일, 서산의 한 동물병원에서 윙택 4번을 달고 있는 황조롱이가 구조되어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지난 2월 17일 윙택이 부착해 방생했던 황조롱이였다.
구조 장소 역시 방생 장소와 동일했고 방생 전 부착했었던 윙택과 가락지 모두 온전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러나 신체검사 및 방사선 촬영 결과, 오른쪽 날개 손목관절(carpal joint)의 골절이 확인되었고 먹이활동을 하지 못해 기아와 탈수가 심각한 상태였다. 비행 중 전선에 날개를 부딪쳐 다쳤던 것으로 보였다.
야생 조류에게 있어 날개 ‘관절’의 손상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며 설령 구조되어 치료를 받는다고하더라도 정상 비행 능력을 100%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는 완벽한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야생에서 먹이 사냥을 하며 살아남을 수 있기에 결국 이 ‘12-028 황조롱이’는 안락사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2-028 황조롱이’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생을 마쳐야 했지만 표식 장치를 해둔 덕에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방생 후 2개월 넘게 살았으므로 접수 초기 진단과 치료, 재활 과정에서의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연령, 성별, 시기, 장소와 같은 요인들도 고려를 해야겠지만 황조롱이에게 부착한 윙택이 사냥과 같은 비행에 별다른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윙택 덕분에 일반 시민이 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중요한 새’라고 생각하여 비교적 신속한 구조로 이어져 다시 우리 센터로 올 수 있었다.
끝으로, 처음 구조된 장소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방생을 했었는데 약 3개월 뒤 그 장소에서 다시 구조가 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 곳이 황조롱이를 방생하기에 적당한 먹이 활동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부상 상태와 발견 정황으로 추정컨대 전선이나 이와 유사한 시설물들이 위협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해에 구조되는 야생동물은 전국적으로 만여 마리 정도인데, 이중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동물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또한 방생된 동물이 다시 사고를 당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치료 후 방생했던 동물이 다시 구조되어 들어오게 되면 반갑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또다시 치료해서 야생으로 돌려보내도 건강히 잘 지내리라는 확신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치부하기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위협 요인들이 여전히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