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초의 비일본인 출신 `일본 수의종양전문의` 임윤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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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수의계에도 전문의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부 학회·연구회에서 전문의 제도 도입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인정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단체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의과대학 역시 ‘한국수의과대학협회 발족’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인증 추진’, ‘미국수의사회 인증 준비’ 등  수의학 교육과정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입니다.

일본의 경우 2000년 부터 일본동물병원협회(JAHA)인증의 제도가 시행됐으며, 각 분야별 인정의·전문의제도가 시행 중입니다.

이 중 JAHA 인증 내과 전문의(JAHA Certified Verterinary Internist )와 일본수의종양학회 인정 종양 전문의(JVCS certified Veterinary Oncologist)를 획득한 한국인 수의사가 있습니다. 바로 해마루동물병원의 임윤지 수의사님이 그 주인공입니다.

JVCS 인정 종양학 전문의는 현재 37명이 있는데요, 이 중 일본인이 아닌 사람은 임윤지 수의사님이 유일합니다.

비일본인 최초의 일본 수의 종양전문의가 됐으면서, 모든 인정 과정을 수석으로 통과한 임윤지 수의사님을 데일리벳에서 만나 일본의 전문의 과정, 종양전문의로서의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두 개의 일본 수의학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과정으로 일본 수의 전문의가 되셨나요?

일본동물병원협회 인증 내과 전문의 (JAHA Certified Veterinary Internist), 일본수의종양학회 (Japan Veterinary Cancer Society, 이하 JVCS)의 종양 전문의 최종시험을 합격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 수의 전문의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일본 수의종양 전문의가 어떻게 인식될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 종양학회는 미국, 유럽, 호주, 일본에만 조직되어 있습니다. 일본 수의종양 전문의도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고, 일본에서는 제법 인정되는 전문의입니다.

수의종양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2종→종1차→1종2차로 구성된 총 3번의 시험을 합격해야 합니다. JVCS 학회에 참석해서 총 8강좌를 들으면 2종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진단학 총론, 임상병리학, 세포 진단학, 영상 진단학, 치료학 총론, 외과적 치료,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로 구성된 총 8과목에 대해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각 시험은 1년에 한번 같은 날 모두 보는데 제가 시험 볼 때는 300명 정도가 시험에 응시했지만 최근에는 한해에 2000명이상이 도전하는 큰 시험이 되었습니다. 2종 시험의 합격률은 10% 수준입니다. 2종 시험에 합격한 뒤 학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임상학회에서 증례 발표를 해야만 1종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1종1차 시험은 매년 150~200명 정도가 응시하고 합격률은 10% 정도입니다. 최종시험인 1종2차 시험에는 매년 15~20명이 응시하고 있으며, 10% 정도만 최종 합격 수료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최종 합격자는 1년에 1~2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현재까지 JVCS에서 인정하는 종양 전문의는 37명인데, 그 중 제가 최초의 외국인 합격자입니다. 제가 이 시험에 투자한 시간은 총 6년이고, 일본을 오가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q. 시험에 1등 했다고 들었는데 외국인으로써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JVCS의 모든 과정을 1등으로 합격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2종 시험 보는 대부분의 일본 수의사들이 아직 종양 환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1~2년차 수의사들이었고, 다음 단계인 1종 시험을 보는 수의사들도 70~80%가 3년차 이하 수의사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해마루 이차진료 동물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에 비해 시험에 실제 종양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적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체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필기시험과 최종 구두시험인데, 저에게는 외국어인 일본어로 시험을 보는 것이 모국어를 사용하는 일본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점이었습니다. 언어적 불리함이 있었지만, 이차 진료 기관에서 다양한 종양 케이스를 폭넓게 경험해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보호자의 요구에 맞는 치료 방법을 계획하고 실시하는 기본적인 진료 과정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던 최종 구두시험에서도 침착하게 답변 할 수 있었습니다.

q. 어떻게 수의종양 전문의가 될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또 일본 수의종양학회 전문의를 준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일본에 가기 전 부천에서 작은 동물병원을 5년간 운영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데 5살에 만나서 9살에 유선종양을 발견한 케이스였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작은 유선 종양을 적절한 시기에 수술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다가 종양이 주먹만하게 커졌고, 결국 발견한지 1년 만에 폐 전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에 대해 수의사로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호자분은 고맙다고 하셨지만, 제가 아닌 다른 수의사를 만났더라면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좀 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많은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일본의 JBVP 회장이신 Ishida Takuo 선생님의 내과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일본에 가보면 뭔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Ishida Takuo 선생님이 계신 동경 아카사카 동물병원으로 1년간 비지팅을 떠났습니다.

1년간 아카사카 동물병원에 머물면서 종양, 노령 환자를 많이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종양과 노령 환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병들고 고통 받는 반려 동물들의 삶의 질 개선과 편안한 죽음을 위해, 그리고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보호자에게 위안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수의사들을 보면서 ‘힘들어 하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돌봐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만났던 환자들과 보호자들 중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종양이라고 판단해서 종양 전문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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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열린 JCVS 인증 Oncologist 수여식.
임윤지 수의사(가운데)와 Ishida Takuo 수의사(오른쪽)

Q. 수의종양 전문의로서, 혹은 수의사로서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철학이나 생각이 있나요?

보호자들은 수의사에게 ‘환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게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심한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반려동물의 고통을 줄여주고 조금이나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내가 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비로서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름다운 이별에 동행하는 수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암환자는 마지막까지 의식이 명료한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라도 적극적인 호스피스를 통해 통증관리, 영양공급을 한다면 마지막까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들은 마지막까지 함께 여행하며 사진도 남기고 추억을 만들며, 반려동물과 함께 했던 10년 넘는 세월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수의종양 전문의의 철학은 일반 수의사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도와주고 새로운 시작을 도와주는 수의사! 어떻게 보면 동물을 위한 수의사이면서 보호자의 마음까지 챙기는 수의사를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q. 수의종양 전문의로서, 항암 치료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항암제를 주사할 때도 주의할 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항암치료의 주의 점에 대해 말하기 전에 진단이 정확한지, 항암치료가 정말 이 환자에게 필요한지, 사용하려고 하는 항암제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숙지하고 있는지, 항암제 투여 후 발생 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투여 전 보호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가능한지, 또 항암제 사용 후 부작용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보호자의 시간과 경제 사정, 환경, 집안 여건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동의가 필요합니다.

부적절한 항암제 투여는 환자를 더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물의 선정과 투여에 있어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암 환자의 치료를 계획 할 때는 단순히 항암제를 한두 번 투여해서 암을 없애버리겠다는 생각보다 이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까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암치료를 결정했다면, 환자, 보호자, 진료진의 안전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오늘은 진료진의 안전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항암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암제 자체가 발암 물질이고, 항암제 희석과정에서 미세한 증기가 공기 중으로 누출될 수 있고, 조작 과정 중에 항암제가 튀거나 뭍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 본인을 지킬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항암치료를 하길 당부 드립니다.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마스크, 글로브, 가운)를 갖춰 입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주사액을 뽑거나 희석하고, 항암제가 새지 않도록 하는 기구(chemo-protector system, Phaseal 등) 사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실시해야 합니다. 국내에도 여러 가지 chemo-protector system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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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임상수의사 학술대회에서 강의 중인 임윤지 수의사

Q. 아직 국내에 방사선 치료가 도입된 곳이 없는데, 방사선 치료 도입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동물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이미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10대 정도 방사선 치료 기계가 있는데, 그 중 5대는 개인 동물병원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해마루에 내원하는 보호자들도 가끔 방사선 치료를 문의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장비 비용, 차폐시설에 관한 규정, 전문 인력 등이 높은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이고, 방사선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면 환자들의 생존기간이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방사선 치료기 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비용문제인데, 외국과 같이 민간에서 운영하는 종양 연구 기금, 반려동물 의료보험, 사람 종양 연구와 관련된 기초 연구등과 연계되어 국내에도 머지않은 미래에 방사선 치료기가 도입될 것을 기대합니다.

q. 앞으로 5년 뒤에 어떤 모습을 그리고 계신지요?

우선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이별에 동행하는 임상 수의사로서 역할을 좀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수의사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수의종양학회와 한국수의종양전문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전문의제도가 생기기 위해서는 전문의를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연구회 또는 학회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려동물의 건강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수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위해 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전문의를 꿈꾸는 후배 수의사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후배 수의사들은 저 보다 고생하지 않고, 임상 수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후배들이 있다면, 더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만약 전문의를 꿈꾸는 후배 수의사분들이 있다면, 먼저 ‘내가 전문의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인가 우리나라도 다양한 분야에 전문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반 임상 수의사와 전문의 사이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호자와 환자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주치의’가 더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로컬병원은 더 로컬답게, 중대형병원은 더 중대형병원답게 명확한 역할분담을 통해 상호 공존이 이루어질 때 수의사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적·경제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깊은 고민 없이 막연하게 전문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벽에 부딪히면서 어렵게 시작한 공부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수의대에 공부하고 있는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에 전문의 제도를 시작하고 정착시켜야 하는 세대라고 봅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충분한 동기가 있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소신 있게 전문의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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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초의 비일본인 출신 `일본 수의종양전문의` 임윤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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