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활동하는 여러 분야 중에는 연구자로서의 길도 있는데요, 국내 수의과대학의 기초분야 연구팀으로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는 곳들 중 하나로 한호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의 실험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999년 이후 약 260여편의 SCI 논문을 발표했고,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수의과대학 교수로서 최연소 가입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한호재 교수님을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처음 수의과대학에 진학했을 때부터 연구 쪽에 관심이 있으셨나
고등학교 때부터 수의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생물학’을 하고 싶었다. 생물학 중에서도 동물을 다루고 싶었다.
고3 담임선생님께서 ‘당시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는 식물 위주고, 동물학과는 분류학에 치중되어 있으니 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수의대가 어떠냐’고 조언해주셨다. 그렇게 처음 수의학을 접했다.
1983년 수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수의대 4년과정으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생물학 연구 중에서도 생리학을 선택했다. 당시 권종국 수의생리학 교수님께서 ‘생리학은 공부도 오래해야 하고 배고픈 학문이니 잘 생각해보고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젊었고 생리학이 수의사로서의 삶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부터 기초분야 학문을 제대로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절실히 실감했지만,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Q. 생리학 연구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안돼 수의과대학 교수가 되셨는데
1987년 수의학석사 과정을 시작하여 졸업 후 석사전문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병역 전후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까지 뉴욕주립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사이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그 이후로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계속 공부를 이어가고자 했다. 당시만해도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절박감은 없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직에 지원했던 것이 합격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1993년부터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최연소 교수였다.
Q. 처음부터 연구생활이 순조로웠던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석박사 과정이나 교수가 된 직후에는 고생을 참 많이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연구과제를 하나 수행했었다. 사실 내가 할 줄 모르고(웃음) 계획서를 정말 이상적으로 써서 낸 후 석사전문요원 복무를 시작했는데, 결국 복무만료 후 내가 하게 됐다. 수의대 내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여러 다른 대학 실험실들을 전전했다. 사정사정해서 점심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눈치 보며 실험했다.
그 때 나를 도와줬던 연구원, 대학원생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 경험 덕분에 나도 다른 연구진이 부탁하면 지금도 최대한 따뜻하게 배려해주려고 노력한다.
전남대에서도 연구활동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비를 넘겼다. 그 시절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다. 전임강사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은행 빚으로 실험설비를 마련하고, 기자재를 얻으러 스쿠터며 자전거를 타고 여러 단과대를 돌아다녔던 적도 있다.
전남대가 유치한 호르몬연구센터(SRC)에 참여하면서 연구를 본격화할 수 있었지만 첫 SCI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1999년 발표한 첫 SCI 논문은 임팩트 팩터도 높지 않고 세계 유명 저널에 실리지도 않았지만, 내 생애에 잊지 못할 논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점차 연구활동이 순조로워졌다. 2003년 21C 프론티어연구사업 세포응용연구사업단에 참여하는 등 탄력을 받았다. 2007년에는 전남대 수의대에 BK21 산업인력양성사업단을 유치했다.
Q. 현재까지의 주요 연구분야와 성과를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
20여년간 전남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세포기능조절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호르몬, 싸이토카인 및 신경전달물질이 세포기능에 미치는 영향과 다양한 종류의 세포가 병태생리학적 조건 하에서 보이는 세포단위 기능변화 및 조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1999년 이후 261편의 SCI 논문을 발표했다. 매년 평균적으로 15편이 넘는 SCI 논문을 낸 것이다.
앞으로도 연구에 있어서 양적, 질적 측면을 겸비한 실험실을 목표로 계속 노력할 것이다.
Q. 교수님 실험실 출신으로 타 대학 교수에 임용된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학원 제자와 박사후 연구원을 합하면 약 13명이 교수로 임용됐다. 경북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1호 제자를 시작으로 경희대 치대, 원광대 한의대 등 여러 대학의 기초분야 교수직을 아우르고 있다.
비결은 결국 ‘열심히 하는 것’이다. 비수의대 교수직에 수의사 출신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먼저 정량적인 부분에서 앞서야 한다. 양질의 논문을 많이 써서 자타가 공인하는 1등이 되어야 그 다음 얘기가 진행된다.
면접 등 정성적인 평가에서도 도움을 주기 위해 내 나름대로는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한다. 필요하다면 몇 번씩이라도 대학을 찾아가 ‘수의사로서 교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이들은 작게 보면 내 제자지만 넓게 보면 다들 수의사다. ‘못 갈 수도 있지’ 하며 포기하면 그 분야가 단절되는 것이다. 기회가 닿는 만큼 최대한 뻗어가야 수의사들의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2007년 준회원, 2010년 정회원이 되셨다.
2007년 당시 전남대 총장님께서 추천하셔서 지원했다.
사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생애 전주기의 업적을 평가하는 한림원은 나이가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류만 내고 잊고 지내다시피 했는데, 한참 후 어느 대학의 발표장에서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잠깐 빠져 나와 받아 보니 한림원이었다. 회원자격은 충분한데 나이가 어린 것이 걱정이라며 준회원이라도 좋은지 물었다. 급한 마음에 그러라고 하고 발표장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준회원으로 발을 디딘 후, 3년이 지나 정회원 후보로 추천 받아 통과됐다. 지금은 한림원 농수산학부 부학부장으로서 새 회원을 뽑는 주무를 맡고 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림원은 SCI 논문의 임팩트 팩터, H-INDEX 등 학술분야의 객관적 지표만을 기준으로 엄격히 심사한다. 연구자들의 업적을 인정해주는 것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가 높다. 또한 정원이 500명으로 정해져 있어 들어가기가 어려운 편이다.
Q. 기초과학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수의사는 동물을 위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이다. 수의과대학은 당연히 훌륭한 임상수의사를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대 흐름에 맞는 수의사 진료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연구, 행정 등 수의사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다. 소수의 수의사라도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다면, 시간이 흘러 그들이 외부에서 수의학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기초과학 연구가 수의사 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을 수의사가 하는 것이다.
기초과학 분야로 통칭해왔지만 실제로 종사하고 있는 분야는 사실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이다. 앞으로 대부분의 학문이 응용과학으로 귀결되리라고 본다면, 그 융합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수의사다.
수의학이라는 교육 자체가 응용학문 연구에 강력한 자산이 된다. 수의학적 지식과 술기를 익힌 사람이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뭔가 다르다. 예를 들어 유전자 연구를 하더라도 동물의 행동과 증상, 병리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시야가 훨씬 넓다.
수의사가 기초학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점이 있지만 대학원 과정 등을 통해 보강한다면, 임상적인 백그라운드를 바탕으로 더욱 도약할 수 있다.
Q. 최근 기초분야에 지원하는 젊은 수의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옛날에 비해 절대적인 숫자가 늘었을지는 몰라도, 수의학 분야의 기초학문 인프라는 공학대학 등 타 분야에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수준이다. 연구역량은 누구 못지 않지만, 숫자 자체가 적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이제 수의과대학 교수진의 연구활동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후학을 훌륭히 양성하기 위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기초연구분야에 지원하는 수의사들은 적어지는 추세다. 요즘 수의대생들은 입학하면서부터 임상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기초대학원은 입학자가 미달되기 일쑤다. 수의사 인프라가 약해지고 있다.
연구분야에는 수의대 말고도 생명과학, 의과학 등 다양한 진로가 있고 연구자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데 이를 개척할 수의사가 부족하니 점점 영역이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Q. 기초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기초과목 교수들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강의도 열심히 하고, 기초분야에 대한 소개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학생들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수의학의 임상 및 비임상분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기회를 주다 보면 학생들도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지금도 4학년 실습과정에서 기초과목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학생이 알아서 하도록 맡기기 보다는 학교 차원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기회를 알선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Q. 수의과대학 정기 커리큘럼에서 기초연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다. 수의과대학은 어디까지나 수의사를 만들어내는 곳이지, 수의학자를 만들어내는 교육기관은 아니다. 본과 후반부 과정이 임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기초분야에 흥미 있는 학생을 위해) 교육옵션을 보다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Q. 연구 외에도 교육과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는다고 들었다
연구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교육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냥 과학자가 아닌 교수라면 연구보다 교육이 1차 업무다. 잘 가르치는 것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다.
수의임상을 이해하려면 생리학과 같은 기초 학문에 대한 이해가 튼튼해야 한다. 생명과학 연구를 하더라도 큰 자산이 된다. 때문에 생리학이지만 최소 30% 이상을 임상적용에 대해 강의하는 편이다.
의대와 달리 수의대 교육과정에서는 임상과목에서 기초분야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얼렁뚱땅 강의한다면, 교수로서 양심불량이다. 내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제자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강의자료를 만드는 것 외에도 당일 강의 준비에 최소 3시간은 필요하더라. 준비하고 교실에 들어가야 수업진행이 부드럽다. 강의가 있는 날은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집에서 강의준비를 하고 출근한다.
봉사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전남대에 이어 서울대에서도 BK 사업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 혜택은 별로 없는 일이지만, 대학원생들에게 큰 보탬이 되는 사업이다.
최근에는 KOICA의 해외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라오스 수파누봉대학교 수의학과 설립지원사업도 돕고 있다.
이들 모두 거창하게 얘기하면 봉사지만 우리 수의학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퍼맨이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선에서 노력하는 것이 내 역할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다방면에 일을 벌리다 보니 개인의 연구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걱정이다. 대학원생들에게 미안할 일이 없도록 연구가 위축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열심히 쫓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수의과대학은 교육 인프라 확충에 좀더 노력하고, 수의대생들에게는 넓은 시야를 갖고 더욱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수의사라는 전공에 대한 집착을 벗고, 다방면에 실력 있는 수의사가 진출해 저변이 확대되길 바란다.
단기간 반짝하고 지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꾸준히 정진하여, 서서히 해면에 형체를 드러내는 거대 잠수함 같은 수의사들이 곳곳에 많아지면 좋겠다.
이런 수의사들이 많아지는 것이 대한민국 수의사의 역량이 증대되는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임상가로서, 연구자로서, 공직자로서 훌륭한 역량을 기반으로 꾸준히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수의사의 사회적 위상도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기반 없이 ‘수의사인데 왜 대우를 안 해주느냐’고 권익을 주장해봤자 관철되기 힘드리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교육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 연구, 봉사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