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위생안전성학회 `WHO가 불안조장,육류 적정 섭취 필요해`
“특정 성분 아닌 전체 식육 발암물질 선정은 잘못”..민관학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중요
가공육과 적색육을 발암물질로 분류한 세계보건기구(WHO) 발표가 논란을 빚은 가운데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가 긴급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WHO 발표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육류 섭취의 장점과 잠재적인 위험성을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식육섭취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4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긴급세미나는 강경선 서울대 교수를 좌장으로 박용호 서울대 교수, 하상도 중앙대 교수,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식약처 식품위해평가과 황명실 연구관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지난 10월 26일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전세계 800여건의 암 관련 연구결과를 분석한 결과 가공육을 1군 인체발암물질(발암성 증거가 충분함)로, 적색육을 2A군 인체발암추정물질(실험동물에서 발암증거가 충분하지만 인체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함)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가공육은 하루 50g 섭취 시 대장암 발병가능성이 18% 증가하며 적색육은 하루 100g 섭취 시 대장암 가능성이 17% 증가한다는 것. 가공육은 염지, 훈연 등을 통해 가공한 햄, 소시지 등이며 적색육에는 모든 종류의 포유류에서 생산된 식육이 해당된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가천대 암당뇨연구소 남정석 교수는 WHO 발표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대장암 발병가능성을 1%라고 가정했을 때, WHO의 발표는 가공육을 매일 50g 이상 섭취할 경우 19%가 아닌 1.18%로 증가한다는 의미”라며 확대해석을 지양했다.
농식품부와 식약처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인의 1일 평균 적색육 소비량은 85g으로 WHO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가공육은 이보다 훨씬 적은 1일 평균 6g 수준이다.
이번 WHO 발표가 가공육·적색육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규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됐다.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WHO 국제암연구소는 가공육과 적색육의 유해성에 초점을 맞췄다. 국제암연구소는 같은 1군 발암물질인 담배·석면과 가공육의 위해성이 같을 순 없다면서 가공육과 적색육의 발암위험성(Risk)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공육과 적색육을 얼마만큼 먹어야 안전한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기엔 근거가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이날 전문가 패널들은 WHO가 특정 성분이 아닌 식육 자체를 발암물질로 규정해 불필요한 소비자 불안을 조장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질산염이 식육의 아민과 결합해 만들어지는 질산나이트로조 화합물이나 고기를 구울 때 생성되는 헤테로사이클릭아민 및 다륜성방향족 탄화수소 등의 발암성은 이미 학술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상도 교수는 “가공육·적색육 성분 중 그 자체로나 조리과정에 의해 발암위험을 일으키는 물질만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함유한 식육 전체를 발암물질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자외선과 벤조피렌의 발암성 때문에 햇빛과 참기름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모든 식품은 독성과 항암성을 가진 성분들을 가지고 있다”며 특정 성분에만 집중된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선 교수는 적색육의 카르노신 성분이 항산화효과를 통해 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들었다.
암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같은 양의 적색육을 먹더라도 운동을 많이 하는지, 담배를 피우는 지 등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개인별 인종별 유전적 소인에 따라 발암가능성은 달라질 것”이라며 “이번 WHO발표는 발암의 종합적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계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 발표는 ‘과도한 육류섭취에 대해 검토해보자’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적절한 양의 식육섭취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대경 식품위생안정성학회장은 “미국암협회는 암 유발 원인은 복합적이므로 하나의 음식이 암을 유발한다고 규정하기 어렵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국내 육류섭취량이 과도하지 않은 만큼 올바른 식습관을 통한 영양섭취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도 화두에 올랐다. WHO 발표 일주일 만에 식약처가 “국민의 가공육 섭취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적극 진화에 나선데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박용호 서울대 교수는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전문가와 정부, 소비자 간의 소통을 통한 신뢰관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식약처는 위해분석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명실 식약처 연구관은 “각종 연구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국민 건강식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1985년 출범한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는 식품과학, 수의학, 의약학 분야의 학계 및 관계기관이 참여해 식품안전성에 대한 최신 정보를 교류하고 정책을 제안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