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일선 동물병원의 심장사상충 예방 현황과 향후 과제
데일리벳 주최 정책좌담회..진단에 기반한 정석적 관리 보편화돼야
최근 메이저 심장사상충예방약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첫 판단이 내려지는 등 심장사상충 관련 임상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를 두고 임상수의사들 사이에서 ‘그 동안 많은 동물병원이 반려동물 개체별 정기 검사에 기반한 정석적 관리를 외면하고, 약국과 다를 바 없이 예방약 판매에만 몰두한 것 때문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동물병원협회와 동물병원 EMR 기업 PnV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에서의 심장사상충 검진율은 3% 미만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심장사상충증이 지역별로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마저 거의 없다. 단지 전국 각 지역에서 유기동물을 중심으로 심장사상충 감염이 진단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가끔씩 산발적으로 발표될 뿐이다.
이에 [수의사신문 데일리벳]은 IDEXX와 함께 국내 심장사상충 예방의 현황을 짚어보고 일선 동물병원이 향후 나아가야 할 심장사상충 관리의 모습을 모색해보고자 정책좌담회를 개최했다.
일시 : 2016년 4월 14일 오후 6시, 여의도 메리어트 파크센터
주제 : 심장사상충 예방의 현황과 과제, 일선 병원을 위한 진단 및 치료법에 대한 고찰
패널 : 신성식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수의기생충학) / 윤원경 원장(수호천사동물병원, 한국수의심장학연구회 운영위원장) / 한수 원장(한수동물병원) / 김동후 원장(고강동물병원, 부천시수의사회장) / 김현욱 원장(해마루동물병원, 한국수의임상포럼 회장)
후원 : IDEXX, MEDEXX
이날 좌담회에서는 각 패널들이 주제 발표를 진행한 후 ‘동물병원의 심장사상충 관리형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신성식 교수와 윤원경 원장은 심장사상충 예방관리에 대한 이론적 기반과 미국심장사상충학회(AHS) 가이드라인에 입각한 올바른 관리법을 소개했다.
한수 원장은 ‘심장사상충 검사 없이는 예방약도 판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한수동물병원의 사례를 들며 정석적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동후 원장은 심장사상충 검사에 대한 일선 동물병원장들의 여론과 현장에서의 검사실시 노력과 어려움을 전달했다.
완벽한 예방약도 진단법도 없다..오직 수의사의 지속적인 관리가 핵심
신성식 : 단순한 예방약 투약만으로는 심장사상충증을 완벽히 예방할 수 없다. 심장사상충예방약은 심장사상충 유충이 성충으로 성장하기 전에 죽일 뿐 성충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마저도 유충단계에 따라 구제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방약이 제대로 작용하는 구간은 모기에 물려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후 1개월까지다(L3 유충단계). 이후에는 치료효과가 점차 감소한다.
이미 성충에 감염된 경우에는 예방약을 투약해도 소용없고, 드물긴 하지만 혈액에 미세사상충(Microfilaria)이 다량 존재하는 상황인 줄 모르고 예방약을 투약하면 쇼크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때문에 예방약 투여에 앞서 반드시 검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검사 시에도 키트검사 1회의 결과를 맹신해선 안 된다.
사상충 감염을 확진한 개 24두를 대상으로 국내 시판 중인 키트 9종의 정확도를 실험한 결과 45~95%의 다양한 민감도를 보였다. 키트검사는 성충 존재여부를 진단하므로, 검사시점에서 유충이 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6개월(모기 물린 후 성충으로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 후 재검도 필요하다.
이 같은 요소들을 고려할 때 수의사들이 각 개체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중예방+매년 정기검사 필수..LOE(Lack of Efficacy) 가능성 고려
데일리벳 : 보호자들 사이에서 ‘모기가 없는 겨울철에는 심장사상충예방약’을 투약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많다. 그러한 인식에 동조하는 임상수의사도 일부 있다. 연중예방, 꼭 필요한 것인가?
신성식 : 1990년대 국내 아파트 지하에서의 모기 출현 연구를 살펴보면, 3월을 제외하면 겨울철에도 일부 모기가 발견된다.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수 : 투약을 잘 하다가 11월과 12월 사이에만 거른 반려견이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케이스를 경험한 적도 있다.
윤원경 : ‘매달’ 투약하는 보호자를 만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대부분 중간중간 끊기거나 투약을 깜박 잊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에 중단했더라도 모기의 출현시기에 맞춰 늦지 않게 검사 후 투약을 시작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래서 미국심장사상충학회에서도 연중투약을 권고하고 있다. 그래야 보호자들이 잊지 않고 매달 투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려동물의 기타 기생충성질환과 인수공통전염병 예방에도 중요하다. 실제로는 이들의 예방관리를 보통 심장사상충예방과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하나를 깜박하면 나머지에도 구멍이 생긴다.
데일리벳 : 예방약 투약을 거른 경우는 당연히 성충감염 여부를 검사해야 할 것이다. 연중으로 예방약을 투약한 경우에도 정기검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LOE(Lack of Efficacy, 예방실패현상)의 가능성 때문인가?
신성식 : 그렇다. 사실 예방약을 투여했음에도 사상충에 걸리는 이유의 대부분은 보호자가 투약주기를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Compliance failure).
또한 심장사상충예방약으로 활용되는 ML 성분(Macrocyclic Lactone)에 대한 내성을 가진 사상충이 존재한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시판 중인 예방약에 대한 유충의 감수성이 다양한 것도 요인이다.
(캐플란 조지아 수의과대학 교수는 대부분의 LOE케이스가 보호자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 편집자주)
윤원경 : LOE는 미국심장사상충학회에서도 논란이 거듭되는 핫이슈다. 하지만 2005년 미국FDA가 ML 성분에 대한 LOE문제를 제기한 이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인근 지역에서 내성을 가진 심장사상충이 보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바이런 블랙번 박사가 미국수의기생충학회(AAVP)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개체에 ML 성분을 반복적으로 투약할 경우 내성균주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염됐는지 검사해보지 않고 예방약을 남용하게 되면, 심장사상충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성이 출현할 위험도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학계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줄 모르고 예방약을 투약하는 사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심장사상충 정기검사를 실시하고, 감염개체에게 장기간 예방약을 투약하는 ‘슬로우킬’ 용법을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데일리벳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일선 임상수의사들이 심장사상충을 검사하는 원칙은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신성식 : 예방약제를 변경하거나 처음 내원했다면 6개월 간격으로 2회 검사하여 두 번 다 음성이라면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로 판정할 수 있다. 그 후부터는 매년 1회 항원 검사를 실시해 LOE로 인한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첫 검사에서 항원검사가 양성이라면, 말초혈액 중에 미세사상충이 존재하는지를 검사해 둘 다 양성이어야 최종 양성으로 판정한다.
첫 항원 검사는 양성임에도 미세사상충이 음성이었다면, 제2의 항원검사나 PCR 검사 중 하나를 실시해 양성일 경우를 최종 양성으로 판정해야 한다.
보호자 거부감 극복 못한 수의사의 매너리즘 돌아봐야
데일리벳 : 하지만 국내 심장사상충 예방관리 실태는 앞서 언급한 ‘연중예방+정기진단’과는 거리가 멀다. 연중예방은 커녕 제대로 검사하는 사례가 드물 정도다. 묻지마식 예방약 투약이 보호자들 뇌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자가진료와 동물약국 그리고 동물병원을 통해서도 실현되고 있다.
김동후 : 좌담회에 앞서 병원 규모와 성별, 연령이 다양한 지인 원장들에게 심장사상충 검사를 좀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상당 부분이 보호자의 거부감과 연관된다. 검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잉진료로 비춰질까 염려되고 설득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투약률이 높은 보호자는 ‘약도 잘 먹였는데 걸렸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이 어렵다고 했다.
이 밖에도 설명시간이 오래 걸려 꺼려진다거나 귀찮다, 습관이 안 돼서 그렇다, 양성을 본 적이 거의 없어 스스로 권하기가 망설여진다는 등 매너리즘에 빠진 답변도 있었다.
윤원경 : 아직도 많은 병원들이 계절적으로 예방약을 처방하거나 검사를 권유하지 않는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오랜 기간 보호자들에게 그렇게 대해왔기 때문에 말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이유도 든다.
하지만 이제는 보호자들도 외국 자료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신성식 : 동물병원 원장분들께서 보호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동물의 건강관리를 이끌어 나가기보다 끌려다녔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김동후 : 많은 원장분들이 ‘누군가 이 상황을 개선시켜 줬으면’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는 좀처럼 나서지 않으려는 상태인 듯 하다.
‘심장사상충 진단검사 없이는 예방약 판매도 없다’
데일리벳 :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진단 기반 처방’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사례가 있어 인상적이다.
한수 : 한수동물병원은 ‘검사 없는 예방약 처방 판매는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본인은 물론 직원들도 반드시 준수한다. 병원 특성상 예방의학을 실시하는 근처 내원객의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매년 300건 이상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5~6월을 집중 검사 기간으로 설정하여 기존에 관리하던 보호자들에게 일괄 안내 문자를 발송한다. 이 기간 동안 150~300건의 심장사상충 정기검사를 실시한다.
수술전 검사 항목에도 심장사상충 검사를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 7년간 매년 5마리 내외의 심장사상충 감염환자를 치료했으며, 진단은 됐지만 보호자가 치료를 포기한 경우를 더하면 본 병원에서만 확인된 감염건수가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 도심지역도 심장사상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약만 사러 왔던 보호자들은 교육대상이다. 심장사상충 예방원리를 설명하고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설득한다.
데일리벳 : 보호자 설득을 어려워하는 수의사들이 많은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한수 : 감염된 환자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직접 일일이 설명하려면 오래 걸리니 ‘영상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시 : 바이엘 제작 영상에 한국어 음성을 입힌 서울시수의사회 동영상 – 보러가기)
먼저 영상을 보게 한 후 수의사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수의사의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보호자의 순응도도 올라간다.
데일리벳 : 최근 IDEXX에서 제작한 심장사상충검사 보호자 교육용 브로셔도 유용하니 필요한 동물병원에서는 IDEXX에 문의하셔도 좋을 것 같다.
한수동물병원의 사례처럼 검사의 기반한 예방관리가 동물병원들 사이에서 보편화되는 것이 가능할까.
윤원경 : 저도 검사를 거친 경우에만 예방약을 처방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의사들의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다.
한수 : 검사의 필요성을 모르고 그냥 예방약만 사용하려 하는 보호자들의 풍조는, 그 동안 충분한 설명 없이 약 판매에만 주력해온 수의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검사 후 처방’ 원칙을 지켜오면서 “왜 다른 병원에서는 얘기도 하지 않는 검사를 하라고 하느냐”는 보호자들의 불평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과학적 설득 근거 마련 나서야..지역별 발생 현황 지도 등
한수 : 일선 동물병원 입장에서는 보호자를 설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자료가 필요하다. 전국적인 심장사상충의 발생현황이라든지 데이터가 잘 갖춰져 있으면 이야기하기가 쉽다.
신성식 : 2012년에 전국의 사냥개 440마리를 검사한 결과, 18%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예방약을 투약하고 있다고 대답한 보호자의 개들 중 감염양성반응이 나타난 비율이 17%나 됐다.
윤원경 : 약을 제대로 투약해도 예방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LOE 가능성도 보호자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김동후 : 살인진드기가 이슈가 되면서 매개체감염질환(Vector-Borne Diseases)의 검사도 설득하기 용이해진 측면이 있다. 이러한 검사를 보다 늘려나간다면 심장사상충 검사를 보편화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데일리벳 : 우리나라에도 가장 기본적인 ‘지역별 발생현황 지도(Incidence map)’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일선 동물병원의 데이터를 모아 지도를 그려낸 대만 수의사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본다.
윤원경 :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논문을 바탕으로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연구사례가 적고 시간차가 커서 불가능했다. 해당 연구들이 대부분 바깥에서 키우거나 유기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도 한계점이다.
시도한다면 동물병원 전자차트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현욱 : 차트 기록에서 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별도의 유도책을 마련해서라도 참여할 수 있는 병원들이 가능한 범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장 % 유병률을 내기 어렵다면 양성진단건수를 기준으로라도 발생현황 지도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올바른 예방관리 교육할 공식 채널 필요해..美 CAPC, AHS 개념
김현욱 : 보호자들이 심장사상충과 관련해 공식적이면서 올바른 내용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많은 보호자들이 블로그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며 그 피해는 동물과 보호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동물병원협회(AAHA)나 심장사상충학회(AHS), 반려동물기생충질환자문단(CAPC) 등 공식적인 수의사단체가 발병현황을 전하고 관리 가이드라인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자료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 수의사들부터 미국과 우리나라의 환경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한국 나름대로의 채널을 만들고 과학적인 근거를 소개해야 한다.
신성식 : 학계나 수의사들이 올바른 심장사상충 관리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보호자들이 인터넷 상에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동물병원단체나 업체가 직접 운영하기 보다는 학계인사 등이 참여한 별도의 단체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공식화된 근거자료를 소개하고 일선 동물병원에서 이를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보호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데일리벳 : 최근 심장사상충예방약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은 동물병원이 그 동안 예방관리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돌아보는 자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일선 동물병원 각각이 ‘진단 기반 처방’의 원칙을 적용하고,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나가며, 보호자 교육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의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과제들 모두 임상수의사의 공감대와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임상수의사들이 전문가로서의 원칙에 입각해 변화된 임상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데 본 좌담회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