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⑨] 김영찬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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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아홉 번째 주인공은 김영찬 수의사입니다.

40년 넘게 소 임상수의사로 활약한 김영찬 수의사는 파주, 연천, 고양지역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소 임상 그룹진료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진료소 소속 수의사가 각 농장을 전담하여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서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축질병 공제제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요, 수말수 집필 당시 5명이던 소속 수의사는 현재 1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며 소임상수의사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김영찬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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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원장

Q. 수말수 집필 후 10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조금만 더 하고 떠나련다’고 쓰셨는데 최근에는 소임상수의사회 회장도 맡으시고 여전히 바쁘신 듯 하다.

사실 당시에도 처음에는 출판을 거절했다. 하지만 ‘참여하겠다는 대동물 수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출판사의 고충을 듣고 ‘아무도 없으면 차라리 내가 하지’라는 사명감에 합류했다. 창피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다.

부인과 함께 패키지 유럽여행을 떠난 길에 독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 분들 자녀가 수의과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어서 책을 읽었다며 나를 알아본 것이다. 책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파주와 인근지역의 소들을 돌보고 있다. 1970년 서울시립대 수의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우유협동조합 진료과에 입사한 후 쭉 소 임상수의사로 활동했으니 벌써 40년이 넘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는지 감회가 새롭다.

낙농환경도 그 동안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마리당 착유량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다. 그만큼 유방염을 비롯한 생산성 질병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Q. 1990년부터 소들을 진료하기 위한 수의사그룹을 운영해 오셨다.

본인도 처음에는 여느 임상수의사들처럼 혼자서 진료했다. 해외에서 접한 그룹진료체계를 국내에서 시도한 것이다.

1980년대초 호주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는 길에 현지 동물병원에서 한 달 간 실습한 적이 있었다. 4명의 수의사들이 그룹을 짓고 농장에 매월 2회씩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리하는 시스템이더라. 이후 1986년 방문한 미국 코넬대학에서 그룹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1인 진료가 가진 한계를 여러 명이 모여 넘고 있었다.

이거다! 싶어 귀국 후 바로 시도했지만, 서울우유조합은 물론이고 수의사회에서도 생소한 방식이라 다들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농가들과 주변 수의사들을 계속 설득한 끝에 농가 7군데와 수의사 4명을 모아 시작했다. 지금은 거래하는 농가도 늘어나고 수의사도 10명이나 된다.

초기부터 서울우유조합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파주시로부터 유방염을 관리하기 위한 진단시설을 지원해주는 등 도움을 받았다. 자체적인 진단실까지 갖춘 소 동물병원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Q. 수말수 책에서도 농가와의 신뢰관계를 강조하셨는데, 수십년간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농민들을 친절히, 무엇보다 솔직히 대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치료가) 안 될 일이면 안 된다고 솔직히 말한다. 모르는 걸 숨기려 해봤자 상대방은 다 안다. 오히려 솔직함이 통한다. 비교적 그렇게 살아왔다.

‘농민들이 손해를 덜 보게끔 해줘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어쨌든 질병이 생기면 손해가 나니 어떻게든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당장 진료비를 얼마 받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농가를 돕는게 먼저고 돈은 나중이다. 어차피 나중에는 그만한 보상이 오게 된다. 40년간 봐도 진료를 약삭빠르게 한다고 떼돈 버는 후배나 동기들은 없었다. 오래 달라 붙어 치사하게 굴면 고객들도 다 안다.

임상수의사는 그냥 먹고 사는 거다. 너무 욕심 낼 필요도 없다. 아내와 놀러 다니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그 정도면 됐다.

소 임상이 적성에도 맞는다. 성격상 틀에 얽매이는게 싫어 농장을 자유로이 다니는 일이 즐겁다. 직원 수의사들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놔두는 편이다. 공부는 알아서 해야하겠지만.

 

Q. 소에서 만연한 자가진료 문제가 걸림돌이지는 않나.

그래도 젖소는 수의사들에게 관리를 받는 편이다. 반면 한우는 자가진료로 인해 수의사의 손을 벗어나 있다. 현장에서는 수의사들이 부족하다지만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교육이 문제다. 축주들도 사실 잘 몰라서 약부터 사다 써 보는 것이다. 소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니 수의사들은 진료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 본인도 20여년간 꾸준히 주변 농가들을 설득해왔다. 약 사다 쓰는 건 좋다 쳐도, 전화로 물어보고 해. 약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 저것 마구 쓰니 병이 고쳐지나? 전화하면 다 대답해 줄게.” 라는 식이다.

그러려면 농장주가 부담스럽지 않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 궁금한 가려움증을 긁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저 수의사한테는 물어보나 마나야 라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 소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해주려면 임상수의학 외에도 동물행동학이나 생리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소와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

일례로 착유기를 들 수 있다. 착유기 문제는 유방염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착유기를 사용하다 보면 유방염이 생긴다. 착유기 관리는 깨끗한 우유를 공급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착유기 관리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 전문적인 관리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착유기 관리도 수의사의 영역이다. 1986년 코넬대학에 갔을 때 착유기에 대한 100불짜리 강연이 있었다. 수의사들한테 기계나 가르치면서 100불씩 받아 먹냐 던 첫인상은 금세 ‘이거 안 들었으면 큰일 났겠구나’ 로 바뀌었다.

솔직하고, 친절하게, 교육하는 것. 그 것이 수의임상(Veterinary Service)이다.

 

Q. 그 동안 변화한 낙농환경에 따라 주요 질병문제도 달라졌을 것 같다.

이미 국내 젖소의 착유량은 세계 2, 3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성 질병이 많다. 우유를 많이 짜니 유방에 염증이 생기기 쉬워질 수 밖에.

특히 우유의 질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유방염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1등급 우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도록 임상수의사가 유도해야 한다.

현재는 수의사의 진료나 항생제 내성검사 같은 실험실적 진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 약 써보고 안 되면 저 약’ 형태의 관행이 만연해 있다. 넘어야 할 산이다.

한우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초유량이 근본적인 문제다. 한우는 품종상 송아지들이 생후 24시간내에 먹어야 할 초유의 양을 어미소들이 모두 생산해내지 못한다.

모자란 초유량은 부족한 면역력으로 이어져 송아지설사병, 호흡기질환을 유발한다. 어릴 때의 병치레가 증체불량으로 이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농가 생산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Q. 최근에는 소에서 문제가 되지 않고는 있지만 구제역이 아직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00년 국내 최초의 구제역을 발견했던 수의사로서 어떻게 보시나.

당시만 해도 구제역을 본 적이 없으니, 혓바닥이 벗겨져 침을 흘리는 소를 보면서도 긴가민가 했다. 그래도 의심스런 마음에 신고해서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사실 그 때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떻게 국내에 들어왔는지는 미지수였다. 지금은 구제역 상재국인 중국, 북한, 동남아와 교류도 많아졌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들어올 여지도 많다.

우리나라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중국만 하더라도 구제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을 놓기도 하지만 걸려도 그냥 판다.

결국 국내에서 구제역 발생을 막으려면 백신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Q. 수의대 졸업생의 대동물 수의사 지원은 여전히 적다. 수말수 집필 당시에는 대동물 수의사를 경험해볼 수 있는 목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하셨는데,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반려동물 수의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진료를 하더라. 결과가 나쁘면 보호자 컴플레인도 어마어마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익혀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지만 대동물 수의사들이 현장에서 주로 겪는 질병문제는 몇가지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공부를 좀 덜 해도 된다(웃음).

대동물 수의사 양성이 전국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정부와 대한수의사회가 함께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을 설립하게 됐다. 앞으로 역할을 기대해 본다.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질병이나 시설문제들 모두 농가들의 고민거리다. 수의사가 해결해줘야 할 책임도 있다. 시장은 있는 것이다.

결국 대동물 수의사의 전망은 수의사들 각자가 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은퇴 후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 이탈리아 언저리에 터를 잡고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싶다. 로마, 그리스, 이집트 문명 등 서양사를 쭉 둘러보면 워낙 재미가 있다.

미래 수의사들의 문제는 후배들의 몫이다. 젊은 분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양주영 기자 yangju@dailyvet.co.kr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⑨] 김영찬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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