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어느 공중방역수의사는 겨울 내내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 현장에 있다가 정신질환자가 되었습니다.
2010년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 ‘가축방역관’이었던 수의사들 중 여럿이 트라우마를 겪다가 공무원 직업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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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간지 보스턴글로브는 지난 9월 23일 동물학자이자 작가인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왜 많은 수의사들이 자살을 택하는가?” 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몽고메리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고귀한 직업으로 여겨지는 수의사들이 높은 비율로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결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습니다.
2014년 미연방 질병관리본부가 임상수의사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명 중 1명이 자살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영국수의사회가 발행하는 [The Veterinary Record]에서도 수의사의 자살율이 치과의사나 의사의 두 배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여러 미국 수의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수의사들은 고객이나 동물애호가들의 오해나 비난에 시달립니다. 몽고메리는 “수의사들은 물고 할퀴는 환자들은 잘 다루지만, 그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은 대개 사람 고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수의사들은 ‘치료냐 돈이냐’의 도덕적 문제 사이에서 죽어가는 동물을 자주 목도합니다. 의사들이라면 이런 문제가 드물겠죠.
안락사로 환자에게 편안한 죽음을 제공하다 보면, 죽음을 ‘고통해서 해방되는 수단’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자살에 쓰여질 수 있는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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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ism을 다룬 영국 논문에서도 ‘수의사의 자살과 우울증 유병률이 높다’ 는 보고를 인용합니다(Bartram 2008; Bartram, Yadegarfar et al. 2009a; Bartram, Yadegarfar et al. 2009b).
해당 논문이 제시한 통계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몇몇 수의사와 이야기해 보았더니 “그것은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의 문제일 것이고 대부분 ‘소송’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더군요. 위 기고문에서도 소송과 항의에 휘말린 미국 수의사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면서도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의뢰에 응해야 하는 수의사, 동물진료비에 대한 보호자들과 사회의 몰이해 등 수의 임상의 특수성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매서운 지적은 ‘안락사와 죽음을 계속 접하는 수의사의 심리 변화’였습니다.
반복되는 죽음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의사가 ‘죽음 또한 어떤 해결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몽고메리가 언급하지 않은 점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수의사는 진료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을 읽어내는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로 동물이 아픈지, 그 아픔은 어느 정도 크기인지 읽어 들여 치료합니다.
하지만 더욱 힘든 점은 그 과정이 침묵 속에, 수의사 마음 속에서만 머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그 ‘고통’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의사는 통증의 크기를 측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상상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보호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생활인’인 수의사로서 비용도 계산해야 합니다.
많은 수의사들이 술을 즐겨 마십니다. 흡연율도 높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통증의 전이’ 때문이 아닐까요. 생활인 수의사로서 겪는, 생명을 구하는 윤리 실행자로서 겪는 마음의 ‘고통’ 때문이 아닐까요.
수의사-보호자-환자의 삼각관계(VCPR, Veterinarian-Client-Patient)에서 ‘환자-의사 관계’만 겪는 의사보다 더 큰 고통을 안고 사는 존재로서 말입니다.
수의사들 스스로 이러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요?
사이 몽고메리는 기고문에서 수의사들이 자신만의 세계와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그에 덧붙여, ‘수의사들끼리 나누는 깊은 대화’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수의사 초년병 시절에는 술자리에서 많은 실수담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통증을 읽어 내는 능력의 한계와 그에 대처하지 못했던 무력감’을 공감하며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수의사들 사이의 대화는 더이상 동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가 실수를 인정하거나 고백하면 경쟁하는 다른 수의사에게 지는 것으로 여기고 까다로운 보호자들이나 경제적 문제, 가정문제를 한탄합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수의과대학의 제임스 서펠 교수(Prof. James Serpell)는 그가 집필한 [동물, 인간의 동반자]에서 미국 수의대생의 동물보호의식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그 결과, 저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동물보호의식은 매우 큰 편차를 보입니다. ‘직업으로서 수의사를 선택한’ 학생과 ‘생명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수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의식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3년 후 졸업이 가까워진 해당 학생들을 다시 조사해보니 하향평준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쌓여가는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주의 깊이를 갖고 있는 생명 앞에서 작아졌던 경험을 마음 한 켠에 트라우마로 쌓아 놓지 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바라는, 사람들이 모두 기대하고 있는 ‘생명 수호자 수의사’로 살기는 이렇듯 어려운 길이겠지요.
그래도 희망을 부여잡고, 동료들을 신뢰하는 마음이 모이는 그곳이 있을 것이라 믿어 봅니다.
그곳은 아마도 의뢰 받거나 요구 받은 진료가 아니라 생명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는 ‘진료 봉사 현장’ 아닐까요. 이제라도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봉사에 꼭 참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