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법 여전히 뒷전,국회 소관 상임위서 검토 외면
동물보호법 개정안 연이어 발의됐지만, 법안소위 상정도 불투명
20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총 14건이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100일 만에 10개의 동물보호법이 발의될 정도로 국회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쉽게도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18대, 19대 국회 개원 이후 100일간 동물보호법 발의 : 0건).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23일(수) 열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동물보호법 개정안 전체가 상정안에서 모두 제외될 전망이다.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한정애 의원안, 표창원 의원안은 물론, 14건의 동물보호법 모두 논의 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상정되더라도 그간 주요 개정사항으로 일컬어진 피학대동물의 긴급격리, 동물학대 처벌범위 확대 및 형량강화, 자가진료행위 동물학대 포함 등이 다뤄질지도 불투명하다.
농해수위 전문위원실이 이달 발표한 동물보호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는 주요 개정내용 대부분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아래는 해당 검토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동물보호법 통한 식용견 제한에는 국민적 합의 필요”
현행 동물보호법은 목을 매달거나 고의로 사료를 주지 않는 등 특정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은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가축전염병예방법] 등 관계 법률이나 수의학적 필요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만 제외하도록 했다. 현행 규정이 오히려 열거되지 않은 살해행위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전문위원실은 “이 같은 개정은 식용견의 사육을 금지하게 된다”며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정애 의원안은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도 학대로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행법을 동물학대혐의에 적용할 때, 혐의자가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며 회피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구체적이지 않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여 규정할 실익이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전문위원실도 이를 고려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운송, 직접 전달이냐 동물배송업 기준강화냐
한정애 의원안과 표창원 의원안 모두 동물판매업자는 동물을 구매자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했다. 현재 반려동물 운송에 관한 규정이 없다 보니 고속버스 택배를 이용하는 등 동물복지를 침해하는 경우도 단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위원실도 동물배송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개정취지에는 공감했다.
다만 정부는 ‘직접 전달’ 규정 하에서도 판매업자가 차량 등을 활용할 여지가 높으므로, 동물배송업 기준을 신설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려동물이 아닌 다른 동물들까지 고려하다 보니..
반려동물 복지 차원에서 제시된 개정안 임에도 산업동물이나 실험동물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보인 조항도 있다. 동물보호법이 동물 전반에 적용된다는 점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발목을 잡은 것이다.
황주홍 의원안은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해하는 방법에 의한 강제임신출산을 금지하도록 했다. 올해 초 논란이 된 강아지공장형 번식장의 열악한 동물복지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축산업에서 인공수정과 관련 호르몬제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의학적 이외의 방법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활동이 심하게 제한되는 좁은 공간에 장기간 가두는 행위’를 금지한 표창원 의원안도 농장동물과 실험동물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가진료 금지 문제는 수의사법에서 다뤄야
전문위원실은 “개 번식업자가 불법 마약류를 상용해 제왕절개수술을 임의로 실시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며 동물을 수술하는 자의 자격이나 대상을 규정하려는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동물진료 관련 내용은 수의사법 소관이라고 선을 그었다.
관련 내용은 현재 진행 중인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피학대동물 긴급격리, 일반시민에게 전면 허용하자면 ‘글쎄’
진선미 의원안과 표창원 의원안은 담당 공무원의 현장출동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누구든지 피학대동물을 격리조치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관할 지자체가 학대행위자로부터 동물의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근거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전문위원실과 정부는 일반시민에게 긴급격리권한을 주자는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동물학대행위에 대한 판단을 일반인에게 맡기면 분쟁이나 남용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아동학대범죄에서도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게 권한을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소유권 제한문제도 해당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동물의 보호’를 소유권을 제한할 ‘공공복리’로 볼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업허가제만이라도 제발..”
“동물보호복지 담당 위원회가 ‘농해수위’라 아쉬워”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동물보호법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경우 동물보호단체 및 동물보호복지 지지 시민들의 실망감은 매우 클 전망이다. 올해 5월 SBS TV동물농장 방송 이후로 ‘강아지공장’ 이슈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수십만 명이 서명운동에 참여할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도 높았으며, 동물보호법도 연이어 발의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법 개정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열릴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동물보호법이 단 1건도 상정조차 되지 못한다면 “동물보호법 담당 정부 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고, 동물보호법을 논의하는 국회 상임위가 농해수위이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는 볼멘소리가 또 나올 것이다.
아무래도 농업, 축산업, 식품 등 관련 산업의 발전을 추구하는 정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에서 동물보호복지는 계속 외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복지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분위기에서 14건의 동물보호법이 발의됐다. 그리고 이를 다룰 정기국회 농해수위 제1법안심사소위가 내일 열린다.
AI 발생, 농협법 개정 등 농해수위에서 다룰 다른 대형 이슈가 많지만, “생산업 허가제 전환만이라도 최소한 통과시켜달라”는 게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동물보호단체의 마지막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