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축 방역 선진국이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2000년, 고병원성 AI가 처음 발생한 것은 2003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매년 구제역 또는 고병원성 AI가 발생한다. 구제역과 AI를 해외 전염병이라고 부르는데, 해외 전염병이라는 명칭이 부끄러울 정도다. 방역 선진국에서 방역 후진국으로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중앙 가축 방역 조직에 그 원인이 있다.
한국 동물용의약품산업 발전포럼(상임대표 곽형근)이 16일(금) 올해 첫 번째 정기포럼을 개최했다.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이 날 포럼에서는 김재홍 서울대 수의대 학장(조류질병학 교수)이 강사로 초청되어 ‘AI 발생과 대응 – One Health 접근’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재홍 학장은 이번 고병원성 AI의 발생 추이를 과거 AI 발생과 비교하여 설명하며 “3300만 수 이상이 살처분됐고 지금 진정세라고 하지만, 방역의식이 소홀해지면 또 다시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봄까지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I에 취약한 산업구조 개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라도, 그리고 바이러스의 전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금 농장의 사육 규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농장당 사육 규모를 줄임으로써 동물복지도 챙기고 차량과 사람의 이동도 줄어들어 기계적 수평 전파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
소독제 사용과 관련해서는 중앙 정부에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학장은 “지자체에서는 저가 입찰을 통해 소독약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은데, 얼마 전 논란이 된 것처럼 동절기에 효능 없는 소독약도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히며 “중앙 정부에서 소독제(유효성분만이라도)를 선정하여 올바른 사용방법까지 지자체에 전달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정책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재홍 학장은 AI 백신 접종의 장단점을 설명하며 “여러 가지 상황이 있기 때문에 백신접종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단순히 ‘백신을 왜 접종하지 않느냐’, ‘백신접종을 하면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맞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가 가축 방역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학장은 “방역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가축 방역 선진국이었는데, 왜 전문성이 축척되지 못하고 거꾸로 가느냐”고 한탄하며 “이런 이유 중심에 중앙 가축 방역 조직의 문제가 있다. 최소 국단위에서 국가 가축 방역이 논의되어야 제대로 된 방역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발표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가축 방역은 농가에 제재를 가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축산 생산성 진흥과는 반대되는 측면이 있는데, 가축 방역을 담당하는 조직(방역총괄과, 방역관리과)이 축산을 진흥하는 농식품부 축산정책국 안에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가축 방역은 별도의 독립된 국 또는 청 단위에서 관할해야 가축 전염병 창궐을 막을 수 있다”는 청중들의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