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물병원 열정페이 전국적‥노동청 `대학원생 조교도 근로자`
학술연구-임상수련 과정 근본적 분리해야..의료계도 분리문제 `골머리`
대학 동물병원에서 진료에 참여하는 수의과대학 대학원생의 급여문제가 논란이 된 가운데, 전국 수의대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노동관청도 대학원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대학원생 진료급여 문제의 해법 찾기는 미룰 수 없다. 급여 합법화와 함께 대학원과 임상수련 과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10개 수의과대학 중 9곳의 임상대학원 급여실태를 조사한 결과, 석사 1년차를 기준으로 월급여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 곳이 6개소에 달했다.
그나마 100만원 이상의 월급여로 조사된 대학 중 2개소도, 제한적인 진료수의사 TO에 합류한 일부 대학원생에게만 해당될 뿐 나머지 대학원생은 월단위로 환산할 시 몇십만원대에 그치는 장학금 혜택을 받는데 그쳤다.
2017년 최저임금은 주40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세전 월135만원선이다. 대학 동물병원별, 각 임상과목별로 구체적인 근무시간이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부분의 대학 동물병원이 대학원생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진료행위에 따른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병원장을 역임할 경우 지급되는 보직수당을 제외하면 진료참여에 대한 보상은 없다. 임상과목 교수의 교수평가기준도 교육, 연구, 봉사 등으로 기초과목과 다를 바 없다. 교수직에 대한 급여는 교육과 연구활동에 주어진다는 의미로, 동물병원 진료는 급여를 받지 못하는 봉사활동에 가깝다.
이처럼 대학 동물병원의 인력관리는 비정상적이다. 정작 진료를 이끌어가는 인력 모두가 인건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상한 구조에 빠져 있다.
대학원생에게 장학금 준다? 서울노동청 `대학원생 조교도 근로자`
이번 조사 과정에서 그나마 받는 급여의 상당수가 대학원생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금이나 수업보조 명목으로 주어진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지적한 건국대 임상대학원생 1년차 월급여 60만원도 조교수당 명목으로 지급되던 것이다. 조교수당을 받는 대학원생들이 조교로서의 역할을 함께 담당한 것도 물론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학원생의 급여문제와 관련한 노동관청의 판단이 나와 눈길을 끈다.
서울지방노동청은 12일 동국대 한태식 총장을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대학이 대학원생 조교를 대상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가 검찰 수사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동국대 대학원총학생회는 조교 458명을 대표해 “대학이 조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한 총장을 서울노동청에 고발했다. 교직원과 유사한 행정업무를 담당하면서, 학교 측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 종속된 상태로, 교원의 지시를 받아 일했다는 점에서 ‘근로자’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서울지방노동청은 대학원생 신분인 조교라 하더라도 교직원과 같은 행정업무를 수행하면서 대학 측의 지휘감독을 받은 만큼,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학원생 조교에게 4대보험, 퇴직금, 연차수당을 미지급한 것은 노동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동국대 측은 “올해 1학기부터 행정조교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조교의 근무시간과 업무범위 준수, 인권침해 행위 금지 등 근로여건 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도 대학원생 조교의 근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술연구-임상수련 분리해야..적법 근로환경 확보는 대명제
한 수의과대학 교수는 “병원에서의 근무에 제대로 된 급여를 주지 못하는 점도, 학위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급여’를 지불한다는 점도 문제가 있다”며 “수의과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학술연구(Academic course)와 임상수련 과정(Clinical training course)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내과, 외과, 영상진단과 등 임상과목의 대학원에 ‘임상대학원’이라는 특수성을 부여하지 말고, 대학원과 동물병원 진료수의사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지던트 과정과 학위 과정을 분리한 미국식 모델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임상의학 학위과정과 전공의과정이 분리되어 있는 국내 의료계도 사실상 얽혀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의학교육백서에 따르면, 2012년 임상의학 석사과정생 3,272명 중 절반이 넘는 1,950명이 전공의였다.
전문의 자격이 ‘제1저자 논문’ 등 연구역량을 요구하는 등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는 고충도 있다. 전공의 주임교수가 연구참여와 학위과정 합류를 권유하면 거절하기 어려운 환경도 한 몫 한다.
의학교육계 일각에서는 “전공의 과정과 학위과정을 병행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4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주최한 ‘임상의학 학위제도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임상의학학위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거나 ‘전공의 수련를 제대로 마치면 학위가 별 필요 없다’는 과감한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병원에서의 진료행위에 대한 급여를 전공의에게 지급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학술연구와 임상수련 과정을 분리하는 과제와 별개로, 현행 법을 준수하는 근로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대학 동물병원에게 주어진 대명제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