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6. 김교헌(金敎憲, 1923~1980). 서울대 수의대 1회 졸업생, 국내 수의학사(DVM) 1호
1923년 8월 17일 평양시 교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큰 과수원을 경영했다. 5년제 경기중학교(1938. 4.~1943. 3.)를 거쳐 수원농림전문학교 수의축산학과(1943. 4.~1946. 7.)를 졸업하였다.
이방환 회고록은 “이 친구는 나와 같이 수의축산학과 출신인데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엉뚱하게 미 군정 산하의 관재청에 취직되어 4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린 운수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운수과장 시절에 대한 그의 회고를 살펴보면 “나는 이때 운수과장이었으며 약관 23세의 나이로는 꿈에도 바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당시 인사처장이 자동차 장사를 해 온 우리 집안을 잘 아는 분인 데다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서 자동차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하나뿐이었던 모양이다.”라고 자신이 운수과장이 된 배경을 밝히면서 “처장들에게도 배당되지 않던 자가용(관용차)까지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으니 정말로 꿈같은 황금방석이 아닐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운수과장을 하던 그는 다음 해인 1947년 9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방환, 이장락, 조춘근과 더불어 수의학부 3학년에 학사 편입하여 1949년 7월 15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당시는 수의학부) 제1회 졸업생 4명 중 1명이 되었다.
당시 졸업생 명부에 가나다순으로 이름이 등재되었기에 존 아널드(John Phillip Arnold) 교수는 그를 국내 수의학사(미국식 DVM) 1호라 칭하였다. 재학 중에는 수의장교 벤저민 블러드(Benjamin Donald Blood)를 도와 동물병원 리모델링을 했고, 수원농림전문학교 졸업 때 받은 면허증이 있어 다른 동기들과 진료를 하였다.
또한 블러드가 구해온 GMC 트럭을 이용해 경기중학교 친구 소유의 파주 산판에 있는 장작을 서울로 실어다주는 대가로 같은 분량의 장작을 갖기로 하여 운동장에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땔감으로 사용하면서 학교의 난방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대학 졸업 후 진주농과대학(1949. 9.~1950. 10.) 전임강사(당시는 대학 초창기라 농학과만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소속은 농과대학이었지만 농고 고학년에게 가축위생학과 가축질병학을 강의하였으며 동물병원을 설립해 개원함)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대학의 학생주임을 맡고 있었지만 가족이 없는 실향민 총각이라 부산으로 가서 자원입대하였다.
미 해병 제1사단 본부 헌병중대에 배속되어 수복 지역의 시내 순찰(patrol platoon) 활동을 도왔으며,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Oliver Prince Smith) 소장의 명령에 따라 미 해병 중위(연락장교)로 임관하기도 했다.
종전 후에는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1953. 9.~1955. 9.)에서 전임강사/조교수로 축산학을 강의하였으며, 직접 양돈을 하기도 하였다. 농림부 축산시험장(성환 소재) 연구관으로 근무하였는데(1956.3.~1959. 1.) 후반기 1년은 아칸소, 플로리다, 미네소타 3개 대학교 연수를 한 후 귀국해 미 8군 사령관에서 퇴역한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을 도와 제주도 국립(송당)목장을 설립하고(1959. 1.~1960. 1.) 기좌로 근무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는 다시 후학 양성을 위해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낙농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여(1960. 1.) 축산경영학과 가축위생학을 강의하면서 「가축의 경제적 관리 방법」(《건대학술지》), 「실리주의적 축산 교육」(《교육평론지》), 「영농의 다각화 문제」(《국회지》)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64년 8월 31일 정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970년 3월 5일 사직하고 학교를 떠나 미국행에 올랐으며, 미 국방부가 운영하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어학원에서 한국에 파견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1980년 4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San Jose)에 있는 아들 집 인근 병원에서 별세하였다.
1980년부터 9회에 걸쳐 《재미수의사회보》(10권 2호~13권 1호)에 서울대학교 수의학부의 태동부터 한국전쟁까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는데, 안타깝게도 집필 중 작고하여 회고록은 한국전쟁 기간을 기술하다가 중단되었고, 오연각 회장의 글로 매듭지어졌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