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실시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완화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연구용역을 담당한 한국수의임상포럼 연구진(수석연구원 이화영)은 질병·진료행위 표준화를 선결조건으로 제시하며 개별병원의 진료비 공시나 사전고지제 도입을 정책대안으로 꼽았다.
반면 표준수가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검토결과를 내놨다.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데다가 유럽에서도 자유경쟁제한을 이유로 폐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 대비 비싸지 않지만..병원 간 편차·소비자 인식 간극 보여
한국과 독일, 미국의 동물병원 진료비를 비교한 연구진은 “각 국가의 소득수준에 기반한 지불능력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동물병원 비용이 (독일, 미국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예방접종, 피부질환 진단, 임상병리검사, 영상진단검사, 주사처치 등 22개 항목을 두고 국내 19개 동물병원의 평균가격과 미국동물병원협회 진료비 통계자료(Veterinary Fee Reference), 독일 수가제도(GOT)의 상대가격수준(comparative price level)을 비교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형성된 이유로는 “일부 진료항목에서 병원 간 비용 편차가 크고, 지불비용만큼의 기대수준에 병원 서비스 질이 미치지 못해 소비자들이 간극을 느낀다”는 점을 꼽았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소비자에게 진료비용의 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진료비 편차를 감소시키는 것을 정책의 초점으로 제안했다.
질병별·진료행위별 표준코드화 선행돼야
연구진은 “신뢰성 있는 정책개발의 근거가 될 진료비 통계자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진료코드체계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표준상병코드, 진료행위별코드가 사용되는 의료계와 달리, 동물병원은 질병이나 진료행위의 명칭이나 기록방법을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A수술이라 할지라도 수술 행위와 전후 검사, 마취, 처방약, 후처치 등을 별도 행위로 기록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이를 묶어서 ‘A수술’이라고만 기록하는 병원도 있다. 수술법의 세부내용마저 다를 수 있지만 기록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연구진은 “(이 같은 상황에서) 신뢰도 있는 진료비 통계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진료비용 공시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정확한 비교가 어려운 이유다.
연구진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장기적인 계획 하에 질병분류체계, 진료코드 개발을 선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빈도 진료나 병원 간 차이가 크지 않은 항목부터 선행조사한 후 범위를 넓혀가는 방법도 있다.
진료비 사전고지제, 개별병원 진료비 공시제 제안..수가제는 `부정적`
연구진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동물 진료비 자체를 통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과도한 금액을 청구하거나 낮은 가격으로만 소비자를 유인하는 양 극단이 적절한 경쟁시장으로 편입되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동물병원 간 진료비 편차 감소 정책 방향은 ‘정보공개’에 초점을 맞췄다.
‘진료비용 사전고지제’는 진료서비스를 시행하기 전에 예측되는 진료비 정보를 소비자(보호자)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다.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데다가, 이미 많은 동물병원에서 치료 전 동의를 구하고 있는 만큼 수의사들 사이의 거부감도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공시제 형태 중에서는 ‘개별병원 진료비 공시제’에 무게를 뒀다. 경쟁시장인 동물병원 시장의 성격과 소비자 선택권, 수의사들의 정책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모든 진료항목을 공시하기가 불가능한 만큼, 진료범위에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어 고시가격을 벗어날 우려가 적은 다빈도 진료항목이나 소비자 관심 항목 등을 우선 도입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을 권장했다.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수가제는 ‘글쎄’
논란이 됐던 표준수가제에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정부의 일률적 규제는 정당성이 부족한데다, 자주 시행되기 어려운 수가조정이 수의학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수가제가) 자유경쟁을 제한한다’는 EU의 지적에 따라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수가제가 폐지됐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진은 “한국과 다른 배경과 맥락을 무시하고 외국 정책을 그대로 이식하면 많은 부작용과 비순응성이 뒤따를 것”이라며 “그에 비해 수가제의 혜택이나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공시제의 경우)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동물의료서비스의 질 하향화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