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5. 김수현(金水顯, 1914~). 부산이출우검역소 수의관보, 부산가축검역소 소장, 경상남도 보건후생부 수의과장, 경상남도 부건후생국 수의사
1914년 12월 14일에 출생했다. 1940년 3월 도쿄 아자부[麻布]수의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1940년 4월 경상남도 경찰국 수의무(獸醫務)로 부산 이출우검역소(移出牛檢疫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다.
1943년 7월 이출우검역소 관제 공포로 조선총독부 부산이출우검역소의 수의관보(獸醫官補)로 승진하여 시험계 주임이 됐다.
한편 동물검역소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대한제국 시절인 1909년 수출우검역소로 출발하였으나 한일병합(1910) 이후 대한제국과 일본은 같은 국가라는 개념으로 ‘이출우검역소’라 개칭하였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은 이를 부산가축검역소로 개칭하고 농림부 소속으로 두었다.
이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도 농림부 부산가축검역소로 유지되었으나 1962년에 국립동물검역소로 개칭되었고 1998년 8월 수의과학연구소와 통합되어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농림축산검역본부)이 되었다.
미 군정청은 1945년 10월 15일 자로 당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이출우검역소에 수의관보로 근무하던 김수현을 군정청 농림국 산하의 부산가축검역소 소장으로 발령하였다. 그는 같은 해 11월 20일 경상남도 보건후생부 수의과장(보건사회부 소속)으로 전보되었다.
1946년 2월 1일에는 다시 농림부 부산가축검역소 소장으로 전보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0일 개인 사정으로 소장직을 사임했다. 1947년 2월 1일 경상남도 보건후생국 수의사(임시과장)에 재임명되었다가 1949년 1월 30일에 사직했다.
『수의과학검역원 100년사』를 보면 “해방 후 가축검역소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하였다. 일본인 기술자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수출입 물량도 없었다. 혹시 외국에서 가축들이 들어온다고 해도 어떤 기준이나 규정도 없었기에 검역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축들을 계류해야 할 장소에는 귀국선을 타고 온 피란민들이 북적댔다. 해방 후 외국으로부터 원조 물품으로 가축들이 수입되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였다. 어떤 종류의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왔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혼란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949년 6월 6일에 대통령령 제127호로 농림부 산하에 부산가축검역소가 재출발하게 되었고 소장 밑에 서무과와 검역과를 두었으나, 고용원까지 포함한 전 직원이 7명에 불과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1949년 2월 이후의 그에 관한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