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C DAVIS 수의과대학에서 미국수의행동의학회(ACVB) 전문의과정을 수료한 김선아 수의사가 충북대 동물병원에서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김선아 교수는 행동의학이 환자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자, 보호자와 소통하는 토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두려움·공포 등 응급한 행동문제에 대해 일선 동물병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진료에 나서야 한다고도 당부했습니다.
지난달 충북대 동물병원 임상교수로 부임한 김선아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UC DAVIS 전문의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작년이었다
미국수의행동의학 전문의는 3년 과정이다. 대학마다 시작하는 시기는 다른데 UC DAVIS는 7월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당시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레지던트 마지막 시기에는 코로나19로 락다운된 환경에서 진료했다. 바깥 주차장에 펜스를 치고 야전병원처럼 진료했다. 5월 졸업식도 7월 수료식도 취소됐다. 수료증도 드라이브스루로 받았다(웃음).
Q. 세계 1위를 다투는 수의과대학에서의 레지던트 과정이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또다른 세상이 있더라. 정말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면서 팀의 일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다른 진료과의 최고 전문가들과 협진할 수 있는 기회도 너무 좋았다.
일은 쉽지 않았다. 세계최고의 동물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보는 보호자들의 기대치가 엄청났다. 다른 주에서도 오고, 캐나다에서도 온다. 멀리서 올수록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행동의학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아토피처럼 완치보단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부분을 어떻게 보호자와 소통할 것인지가 정말 중요하다.
행동의학 문제의 진단과 치료법은 대부분 레지던트 과정 초반에 배웠다. 정말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었다. 어떻게 소통하는지 트레이닝을 받은 셈이다.
보호자가 이야기하는 말의 행간까지 파악하고, 감정적으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질문을 던져 필요한 정보를 얻고, 보호자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부드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 수의사가 한국인 보호자를 만난다고 해도 누구나 상담을 잘하진 않는 것처럼, 원어민 수준의 언어와 눈치는 물론 스킬도 필요한 문제다.
전문의과정 3년간 좀더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것 같다. 진단·치료뿐만 아니라 보호자와의 소통과 후속조치, 학생 교육, 근거중심의학의 중요성 등을 몸으로 체득했다.
Q. 미국의 수의과대학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수의과대학 4년 내내 가르친다. 1학년 이론교육, 2학년 실습에 이어, 3학년에는 배우를 섭외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4학년 로테이션에서는 직접 보호자와 대면한다.
대학병원에 온 보호자들로부터 병력을 청취하는 것도 학생들이 한다. 진단결과나 치료계획을 전하는 업무도 맡는다. 물론 수의사 진료진의 감독 하에서다. 이를 CCTV로 녹화해 수의사들이 조언한다.
그 과정에서 안 좋은 소식은 어떻게 전하는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임을 보호자에게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는지 등을 배우게 된다.
Q. 전문의시험도 못 치르고 귀국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작년에는 애초에 시험이 취소됐다가 뒤늦게 재개됐는데, 그해 수료자들은 응시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백신도 없었을 때인데,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시험을 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응시할 생각이다.
Q. 귀국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떻게 지냈나
쉬었다. 수의사의 번아웃 문제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경험했다. 강의는 조금씩 했지만 충북대에 오기 전까지 직접 진료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관심있는 수의사 분들을 모아서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행동의학진료를 잘하실 수 있도록 가르쳐드리기 위해서다. 지금도 매주 케이스 스터디도 하고, 환자에 대한 조언도 드리고 있다.
Q. 충북대 동물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시작하니 어떤가
한국어로 진료할 수 있어서 좋다(웃음). 예전보다 행동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도 높아진 것 같다.
다만 행동문제가 ‘수의학적 문제’라는 점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은 안타깝다. 보호자뿐만 아니라 수의사들에게도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다. 행동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수의학적 치료가 필수적이다.
Q. 최근 강의에서 행동의학적 문제의 유병률이 70%가 넘는다는 해외연구를 소개해주신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은 더 높을 것 같다. 직접 조사연구를 해보고 싶어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행동의학 환자가 많을텐데도 진료가 많이 없는 것은 수의사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국내에서 저를 찾아올 정도면 적극적인 보호자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분들 모두 여러 동물병원을 거쳐서 저에게 온다. 그때마다 원장님들께 질문했지만 ‘그냥 겁이 많아서 그렇다, 방법이 없다’는 식의 대답을 들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호자는 진료를 원하고 있지만 수의사가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Q. 일선 동물병원에서 행동의학 진료가 늘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행동의학 진료 중에 상대적으로 쉽고 응급한 상황에는 어떤 동물병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병원에 가든 간단한 농피증 치료는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게 두려움과 공포에 관련된 문제다. 먹고 자고 싸는 생존활동을 저해하는 행동문제라면 응급이다. 너무 불안해해서 식욕이 떨어지거나, 실외배변을 갑자기 못하는 등의 상황이다.
환자에게 바로 개입해야 하는 문제인데, 2차병원이나 전문가를 찾아 떠날수록 치료가 지체된다. 항상 동물을 보던 일선 동물병원의 주치의가 바로 치료에 나서야 한다.
반면 공격성은 일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려견이 다른 개나 사람을 다치게 했거나 상해를 입힐 것 같은 상황에서, 행동의학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분들이 쉽게 진료하기는 어렵다.
복합적인 케이스들은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수의사 분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극소수의 환자는 저 같은 전문의나 대학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다른 진료과목처럼 나름의 전달체계가 자리잡으려면 수의사들의 교육과 인식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행동의학은 임상의 해부·생리다. 그 자체로 돈을 벌기 보다는 토대가 된다. 수의사가 보는 환자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자, 보호자와의 소통에 기본이 된다.
행동의학이 임상의 기초학문이라는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그룹 멘토링도 하고, 웨비나도 진행하고 있다. 보호자보다 수의사들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일선 동물병원을 뒷받침할 전문가도 늘어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행동의학전문의 3명 이상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제가 미국에서 경험해보니 행동의학전문의는 그 나라에서 양성해야 하더라. 언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일할 행동의학전문의는 우리나라에서 키워야 한다.
Q. 외부 동물병원이 아닌 대학으로 오신 것도 그 때문인가
감사하게도 다른 병원에서 제안도 많았지만, 제 미션에 중립적인 공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귀국한 이후로도 DAVIS와 연구도 계속하고 있고 논문이나 행동의학 서적 집필작업도 계속했다. 대학이 가장 맞는 셈이다.
학교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수의사분들을 위한 교육 코스도 만들어보고 싶다. 계속교육(Continuing education)을 통해 일선 수의사 분들의 행동의학 문제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더 많은 수의사분들이 더 많이 알아야, 진단되고 치료받는 환자도 많아질 수 있다.
Q. 그래도 당장 충북대 동물병원으로 행동의학 리퍼를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다행인 것 같다
환자가 과하게 무언가를 무서워하거나, 공격성이 있거나, 강박증상을 보이거나, 인지장애증후군을 겪는 등의 문제가 있다면 저에게 진료 의뢰를 보내주실 수 있다. 충북대 동물병원(043-261-2602)으로 문의해주시면 된다.
Q. 진료를 의뢰하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전화로 진료를 예약하면 보호자 이메일로 검사지를 발송한다. 보호자가 직접 써야 한다. 분리불안증 등 영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자가 없을 때 보이는 증상을) 촬영해 보내주셔야 한다.
대면진료 과정에서 추가적인 상담을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보호자 동의하에 추가적인 검사가 진행된다.
추가검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단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대증을 시도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때도 예상했던 예후가 도출되지 않으면 추가검사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대부분의 행동문제가 완치보다는 지속적인 관리를 요한다. 치료해서 안 좋아지는 경우는 없다. 다만 조금 좋아지고, 많이 좋아지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는 결국 평소 다니던 일선 동물병원에서 담당해야 한다. 어떤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약물치료 등으로 환자 증상이 일정 수준 이상 개선되면 로컬로 돌아가는 형태다.
어떤 약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호자가 치료플랜에 잘 따라왔다는 가정 하에 2~6개월 정도면 판가름이 나는 편이다.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약물과 함께 행동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로컬로 돌아갈 수 있다. 이후에는 주치의와의 협진으로 관리하게 된다. 미국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행동의학은 임상의 기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다. 어떤 동물병원에서도 응급한 행동문제 환자에 대해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병원에 오기 전에 환자들이 두려움을 덜 느끼도록 항불안제를 처방해주는 것도 예전보다 늘어났는데,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청주에 있지만 9월부터는 새롭게 문을 여는 충북대 동물병원 세종분원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국내 행동의학 환자의 유병률 조사나 고양이 스트레스 관련 연구 등 연구활동도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