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타트 프로젝트는 임상, 기업, 공직,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1년차에 도전하고 있는 수의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유학, 결혼, 입사, 개원, 창업, 은퇴 1년차인 수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네 번째 주인공 ‘포닥 1년차’ 김상화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실의 석승혁 교수님 연구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상화 수의사입니다.
서울대 수의대 수생생물의학 실험실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2022년 3월부터 곧바로 현재 의학연구원에서 박사후 연구원(포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강원대 수의대에서 수생동물질병학 강의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연구하고 있는 주제를 소개해주신다면
제가 속해 있는 석승혁 교수님의 실험실은 마크로파지를 연구하는 랩입니다. 마크로파지와 관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를 깊이 있게 수행하고 있는 연구실이죠.
그 안에서도 저는 사람의 암에 대해 연구하는 ‘캔서 팀’에 속하여 종양 마크로파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10개월여간 근무하면서 제가 수행해 온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 종양 면역학 연구이고, 나머지 하나는 상어의 종양 억제 메커니즘 연구입니다.
후자는 제가 석사-박사 기간동안 전공했던 어류생물학과 현재 실험실의 주 연구 내용인 종양면역학을 접목해서 추진하게 된 연구인데요, 제게는 보물과도 같은 주제입니다.
진화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에서 야생동물들이 진화하며 수만 년 동안 쌓아온 생물학적 전략을 사람에게 접목시킬 때 우리가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에 대한 돌파구(breakthrough)를 찾는 경우가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사람에서 중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암인데, 이에 대한 돌파구를 상어에서도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학위 기간동안 수백마리 상어를 필드에서 직접 부검하면서, 상어가 종양 억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상어에서 이와 관련한 생물학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이를 사람에도 적용해서 이로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생각만 가득했지 실제로 실험을 하며 연구를 추진할 여건이 되지 않았죠. 석승혁 교수님께 처음 메일을 드릴 때만 해도 ‘과연 이 연구를 내가 진짜로 해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이 아이디어를 온전히 이해해 주시고, 기회를 흔쾌히 내어 주신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사수 역할을 해 주며 연구 방법론들을 가르쳐 주신 정혜원 박사님과, 새로운 필드를 접하며 다시 적응해 나갈 기회와 시간을 주신 석승혁 교수님의 이해와 아량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행복하게, 전력을 다해서 연구를 하고 있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Q.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의과대학에서 포닥을 하고 있으세요
상어의 종양 억제 메커니즘에 대한 뿌리깊은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들 중에는 제가 다룰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어요.
상어에서 종양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환경과 최신의 연구 방법론을 모두 다룰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지금의 연구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느 분야나 사람의 질병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팀들이 학술적으로 각 필드의 최전선의 방법론을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연구팀에서 사람에서의 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방법론을 배우고, 이를 상어 연구에 접목하는 형태로 연구를 수행해가고 있습니다.
Q. 수생동물 분야를 전공으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학창시절부터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고민의 과정에서 얻게 된 흥미로운 포인트가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번식’이고, 또 하나가 ‘진화’였습니다.
존재라는 게 본질적으로 유한할 수밖에 없는데, 영속하고 싶다는 집착으로 생긴 것이 ‘번식’이라는 컨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떠한 종(species)이 번식을 통해 수만, 수억 년간 그 존재를 유지를 해가는 게 너무 신기했어죠.
동시에 ‘진화’라는 것은 번식이 지속되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세대가 바뀌기 때문에 진화라는 적응을 할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사람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들의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올라가다 보면 결국 수생동물이 나오더군요. 처음으로 육상으로 기어올라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틱타알릭” 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지금은 멸종하고 없어진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뭔지 감을 잡고 싶고, 진화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바다, 즉 수생동물을 봐야겠더라고요.
Q. 그 중에서도 왜 상어였나요?
학부 기간동안 개인적으로 계통수를 따라 쭉 내려가면서 다양한 동물들을 한 번씩 들춰봤습니다. ‘그 중 상어가 제 학술적 흥미를 가장 많이 끌었다’고 하면 주관적이면서도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될 것 같아요.
상어는 척추동물이자 유악어류이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과는 계통수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군입니다.
사실 척추동물 이하로 내려가면 생물학적으로 사람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상어는 여러 측면에서 적당히 우리와는 다르고, 동시에 적당히 유사점들은 공유하는 것 같더라고요.
상어 연구가 뭔가 재밌는 포인트가 많이 발굴될 것 같다는, 전적으로 제 감에 의지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상어가 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을 알게 됐죠. 원래 알면 알수록 좋아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아마 아주 오랜 기간, 어쩌면 평생 상어 연구를 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그렇게 시작한 상어 연구가 포닥으로도 이어졌네요
포닥까지 하게 된 과정은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매 순간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할 때 가장 흥미를 느끼고 행복할지가 고민이었지, 연구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수의대에 진학한 것도 다양한 동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알고 싶었던 의지에서 비롯됐죠. 그래서 석사, 박사뿐 아니라 포닥까지 오는 과정 또한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박사 졸업 시점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는 확실했으니, ‘그 연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 어디일까’가 가장 중요한 진로 고민 기준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현재 제가 근무하고 있는 포닥 자리였어요. 만약 정부 출연 연구소 중 하나에서 재직을 하는 형태가 그 연구를 하기 가장 적합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면 그 곳에 지원을 도전해봤을 거예요.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포닥을 하게 됐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0개월 정도 근무한 지금, 석승혁 교수님 연구실에 도전해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포닥 1년차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저는 수의사이고 석·박사 기간 동안 모든 연구를 수의대에서 했어요. 그 기간동안 제가 수행해 온 연구들은 세포생물학이나 분자생물학 보다는 더 macro한 수준의 논의가 주를 이뤘죠.
그러다가 이 곳으로 포닥을 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필드의 연구를 접했어요. 배울 게 정말 많아졌습니다. 사실 학위 기간에는 애초에 세포를 키우는 형태의 실험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초반 반년 넘게는 너무 힘들었어요. 아는 게 거의 없었고, 다시 석사 1년차가 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 10월쯤에 미국의 AACR(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이라는 학회에 참석을 했어요. 그 학회에 참석해서 발표했던 시간이 연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면서 쌓아온 나름의 연구 결과물을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도 정말 신기했고, 해외 연구진들이 어떤 맥락에서 내 연구를 이해하고 인지하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이 연구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도 파악을 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인상 깊었어요. 바닥만 보고 쟁기를 끌며 끝없이 걷던 저에게 누군가 갑자기 지도를 던져준 느낌이랄까요.
Q. 포닥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포닥은 이미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자리죠. 박사까지 하고서 또 포닥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뜻일 것 같아요.
포닥을 선택하는 시점에서는 누구든 연구의 어려움을 이미 겪을 만큼 겪었을 것 같은데(웃음), 그걸 또 선택한다는 게 쉽진 않을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준비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포닥이 되고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면 중요했던 부분 중 하나가 타인과 합력을 이루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포닥은 석·박사 때보다 더 전문성을 지녀야 함이 당연한데, 자신의 전문 분야가 좁아질수록 동시에 타 분야에서 전문성을 일구어 낸 분들과의 협업을 잘 이루어야 재미있는 연구들을 해 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Q. 1년 후와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1년 뒤나 10년 뒤나 계속 연구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1년 뒤에는 지금 하고 있는 상어 연구를 계속하면서 지금 랩에 있을 것 같은데, 10년 뒤에는 상어에 대한 연구일지 아니면 다른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일지는 모르겠어요.
학창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화생물학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을 가지고 있어요. 그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그러니 상어가 아니라 다른 생물일 순 있어도, 연구의 큰 맥락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아요.
세월이 흘러 연구의 맥락이 좀 잡히고 나면, 야생동물에서 얻은 생물학적 힌트를 사람에까지 적용해서 기존에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해결 시도해보는 형태의 연구도 해볼 수 있다면 재밌을 것 같아요.
Q. ‘1년차가 0년차에게’ 포닥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포닥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연구’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라고 생각돼요.
그런 꿈을 위해서라면 포닥은 굉장히 좋은 직업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에 대한 그 열정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내서 각자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수정 기자 tnwjd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