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 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타트 프로젝트는 임상, 기업, 공직,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1년차에 도전하고 있는 수의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유학, 결혼, 입사, 개원, 창업, 은퇴 1년차인 수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국내 말수의사의 요람은 한국마사회입니다. 마사회에서 수의사는 경주마의 건강관리, 방역, 생산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수(獣)타트 프로젝트] 18번째 주인공, 마사회 입사 1년차 박수진 수의사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박수진입니다. 경상국립대 수의대를 2018년에 졸업했고요, 마사회에는 지난해 10월 입사해 현재 진료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졸업 후 한동안 다른 일을 하셨는데, 마사회에 지원한 계기가 있나요?
동물병원에서 1년간 인턴으로 있다가, 제약회사에서 동물약품 및 사료를 출품·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일했습니다. 동물병원에서의 인턴 경험은 제약회사에서도, 지금도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마사회는 졸업 직후 지원했는데, 당시에는 아쉽게도 최종에서 떨어졌어요. 다른 분들처럼 저 역시 학부시절 다양한 실습을 했지만, 제 진로에 대해 확신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기회로 동물병원과 회사 모두 경험할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제게는 수의사로서 직무 능력을 살리는 것도, 체계적인 구조 속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소속감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마사회에 다시 지원하게 됐습니다.
Q. 재도전까지 하신 걸 보면 말수의사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사실 ‘말수의사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했던 건 아닙니다. 학부 때 진로탐색차 많은 곳에서 실습하던 중 한국마사회에서도 실습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산통 수술 후 모니터링이 필요한 말이 있어 실습기간 동안 거의 매일 보게 됐는데요, 그렇게 말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말이라는 동물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게 됐죠.
또 말수의사는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노력한다면 이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마사회 입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특별히 중요한 역량이 있나요?
학부시절 방학을 이용해 참여했던 한국마사회 실습프로그램에서 진료, 수술 등을 참관하며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 근무 현장이 어떤 지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교내 선택과목으로 말의학을 추가로 이수했어요. 정규 교육과정에서 얻기엔 한계가 있는 말의학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을 습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NCS 문제집을 한두 권 정도 풀어보면서 필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한국마사회는 공기업이니 채용과정을 미리 알고 준비하면 좋아요. PT 면접, 임원 면접 등의 과정도 있으니 주어진 자료를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한국마사회 소속 수의사는 진료뿐 아니라 경마 운영, 방역, 검역 등도 담당하기 때문에 직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업무든 그렇겠지만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축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또 현재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도 충분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말은 반려동물과 유사하지만 경제동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민감한 사항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원활한 진료를 위해서 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안내가 필요합니다. 외부기관과 교류하는 대외 업무도 있고요. 소통능력은 기본적으로 필요하죠.
Q. 현재 주로 하시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는 현재 진료부에서 경주마와 승용마의 진료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말은 기승 및 훈련을 하는 동물이라 근골격계 질환이 많은 편이죠. 훈련이나 경주 후 파행 등의 문제로 내원한 환축을 정밀 검사하고 그에 따른 진단과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산통 등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처음 1~2개월은 회사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느라 매일이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마음처럼 되지 않아 좌절할 때도 있었죠.
지금도 새로운 케이스와 업무들로 당황할 때가 있지만, 새내기때보다는 더 편하게 동료분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Q. 마사회가 다른 직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사회 소속 수의사가 하나의 업무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마사회는 말산업 발전과 국민 여가 선용 기여를 통해 공익을 추구하는 공기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의사는 진료뿐 아니라 방역, 말복지, 경마 운영 등 행정업무들도 담당합니다.
또한 진료에 있어서도 경마장, 목장에 따라 근골격계, 교배·번식 등 주로 다루는 케이스가 달라져요.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직무 능력을 높이는데 교육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도 좋은 것 같아요. 2주마다 부서 세미나를 통해 케이스 공유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부서원 모두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개발에 대한 의지가 높아 자극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원하는 경우, 외부 교육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대동물 임상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 어린 시선들도 많았어요. 주의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저는 체구가 작은 편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을 실제로 해보면 신체적인 한계로 문제가 될 사항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힘보다는 기술, 흔히 말하는 요령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말이 있는 모든 상황에서는 긴장과 주의가 필요하지만요.
Q. 입사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 응급 산통 수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 전에도 다른 수술에서 마취를 했지만 응급 산통 수술은 환축 바이탈 관리에서 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고, 생각보다 긴박하게 진행되어 정신없이 수술을 마쳤어요.
밤중에 마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회복실에서 말이 잘 일어 날때까지 기다리면서 피곤함보다는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컸어요.
마사회 동물병원이 2차 동물병원이라는 것을 체감하며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Q. 프로젝트 공통질문입니다. 1년 후와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아직은 적응중인 것 같아요. 1년 뒤에는 지금 하는 일들을 조금 긴장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좋겠어요.
10년 후는 너무 먼 미래지만 기회가 된다면 말의학에서 안과나 영상의학 등 더 관심을 갖게 되는 특정 분야에 집중해서 능력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Q. ‘1년차가 0년차에게’ 마사회 수의사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꼭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을 보내시면 좋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등 간단한 질문들이지만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짧은 기간 동안 이직이 많았던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본인의 성향을 알아보는 것에 더불어 한국마사회 수의사 업무가 어떠한 지 충분히 고려하고 준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안세정 기자 dkstpwjd4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