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고래의 날 ‘미소짓는 상괭이’ 연구하는 이성빈 수의사를 만나다

[인터뷰]서울대학교 수생생물의학실 이성빈 수의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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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 셋째 주 일요일은 ‘세계 고래의 날(World Whale Day)’입니다. 올해 고래의 날은 2월 18일이죠.

과거에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 타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고래의 보존의학이나 수의학적 연구가 활발하진 않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중적으로 고래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해양 야생동물이라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다양한 기관에서 보존의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2023년 8월에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주최로 ‘2023 해양포유류 보존의학 네트워크’가 열려, 보존의학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계 고래의 날을 맞이하여, 수의학적 연구를 통해 상괭이 보존에 노력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이성빈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이성빈 수의사 (@오라운드)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 수의대 수생생물의학실(지도교수 박세창)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성빈 수의사입니다. 야생 해양포유류에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 고래의 보존의학 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Q. 한국의 고래류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요.

우리나라 고래 중 가장 대표적으로는 상괭이(Narrow-ridged finless porpoise)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연안에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고, 웃고 있는 듯한 얼굴이 매력적인 고래입니다.

전세계에 사는 쇠돌고래과(Phocoenidae) 일곱 종 중의 하나인데요, 뭉툭한 얼굴 생김새가 우리가 흔히 아는 돌고래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것도 특징이에요.

남방큰돌고래(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는 제주도의 대표 고래라고 할 수 있어요. 제주 연안을 돌면서 생활하기 때문에 해안가에서도 쉽게 관찰이 가능하답니다. 남방큰돌고래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돌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상괭이와 다르게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뾰족한 등지느러미가 있는 게 특징입니다.

상괭이와 남방큰돌고래의 형태학적 차이
(글, 그림: 이성빈 수의사)

이 두 종 외에도 참돌고래(Common dolphin), 흑범고래(False killer whale), 향고래(Sperm whale) 같은 이빨고래뿐만 아니라 보리고래(Sei whale), 밍크고래(Common minke whale), 혹등고래(Humpback whale), 참고래(Fin whale) 등 정말 다양한 대형 수염고래들도 우리나라 바다에서 자주관찰되고 있습니다.

한국 바다의 대표 고래 19종
(그림: 이성빈 수의사)

Q. 상괭이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학부생일 때 상괭이라는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 때는 막연히 미소짓는 돌고래의 모습이 귀여워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매년 3,000마리가 넘게 그물에 혼획되어 희생되는 멸종위기종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상괭이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봤는데, 국내 상괭이의 수의학적 연구 자료가 정말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상괭이라는 종이 학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유명하지 않은 야생동물이라는 점이 정말 아쉽더라고요. 이것이 제가 상괭이를 포함한 우리나라 고래들을 연구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 계기였어요.

다른 고래들과 마찬가지로 상괭이는 우리 바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으로 알려져 있어요. 고래들이 건강하게 사는 바다 환경은 그만큼 건강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대단한 연구는 아닐지라도, 제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이 추후 상괭이들의 건강과 더불어 상괭이가 살아가는 우리 바다 환경에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Q. 상괭이 연구과제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상괭이는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 걸쳐 다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제주 해역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제주 추자도 해역에서 상괭이가 시각적으로 확인된 바 있어요.

따라서 저희 연구팀은 제주 해역에서도 상괭이가 서식하고 있는지 여부를 다양한 접근법으로 증명하고자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과제 “제주 연근해 상괭이의 서식 실태 확인 및 생물학적, 유전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DNA 시료(바닷물) 채취 중인 이성빈 수의사

Environmental DNA(eDNA)는 환경 내에 존재하는 미량의 생물 DNA를 검출하여 개체군의 서식 여부를 검토하는 비침습적 생물 모니터링 연구입니다. 국내에서는 접근이 어려운 DMZ 내 멸종위기종 DNA 탐지, 담수 또는 해수 내 어류 DNA 탐지 등의 분야에서 eDNA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고래 eDNA는 국내에서는 아직 시도한 연구가 드물고, 상괭이의 제주도 서식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eDNA가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제주도 주변 해역의 상괭이, 남방큰돌고래 eDNA 검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연구과제에서는 eDNA를 이용한 서식 실태 확인 외에도, 제주대와의 협업 하에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고래 사체의 질병 케이스 보고, 유전적 특성 비교, 상괭이 사체 부패 속도 검증 등 다양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어요.

상괭이 유착성 장폐색 케이스 리포트의 내용 일부.
Lee, S.B., Yuen, A.H.L., Lee, Y.M., Kim, S.W., Kim, S., Poon, C.T.C., Jung, W.J., Giri, S.S., Kim, S.G., Jo, S.J. and Park, J.H., 2023. Adhesive Bowel Obstruction (ABO) in a Stranded Narrow-Ridged Finless Porpoise (Neophocaena asiaeorientalis sunameri). Animals, 13(24), p.3767.

상괭이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다양한 고래들은 아쉽게도 질병 케이스 리포트조차 많지 않아요. 잠수병, 해양쓰레기, 식도폐색, 급성 유착성 장폐색, 각종 바이러스 감염 등 특이한 임상 증상을 보이는 고래 개체들을 해외 학술지에 최대한 많이 보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고래 질병 케이스들이 사후CT(PMCT) 검사나 부검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어서 추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외 학술지에 투고할 예정입니다.

또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주관하고 있는 해양포유류 보존의학 네트워크, 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강원대 수의대 수생생물의학실, 해양동물 사후CT 연구팀 MAIL 등 국내외 해양포유류 전문가 분들과 함께 공동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는 부검을 통해 죽은 고래 사체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추후 기회가 된다면 수생동물 수의사로서 우리나라 해양포유류 구조, 치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해양 야생동물 보존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바이러스성 질병 데이터 또한 꾸준히 모아서 우리 바다의 해양포유류 질병 전파 양상을 연구해보고 싶어요. 아직 갈 길이 먼 얘기인 것 같지만요.

해외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엄청난 수의 물개, 바다사자들이 떼죽음당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다양한 수생동물들의 체계적인 모니터링 검사 등을 실시하고, 국내 바이러스 질병 케이스들을 사전에 파악해서 미리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 연구해나갈 생각입니다.

상괭이 사후 CT 촬영 현장

Q. 수생동물을 소재로 하여 그림작가로도 활동하신다고요

가까운 우리 바다와 강, 호수에도 정말 다양한 수생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수중 환경에 사는 동물들이라 이런 종들이 우리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지 않죠.

그래서 저는 화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특기인 그림, 디자인 능력을 살려서 우리 근처에 살고 있는 멋진 수생동물들을 다양한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취미 활동이기도 해서 ‘닥터수달’이라는 작가명을 사용하여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제 그림을 통해 ‘상괭이라는 고래를 알게 됐어요’, ‘이렇게 다양한 상어가 우리 바다에도 살고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등의 반응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로 디지털 아트를 작업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캔버스 작업도 도전해보고자 합니다.

 

Q. 매 여름마다 수의대생을 대상으로 ‘제주도 부검교육’을 주최하고 있는데, 이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수의대생일 때 국내에서는 마땅한 수생동물의학 실습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어요. 2019년에 미국 코넬대 수의대에서 주최하는 AQUAVET®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다양한 실습 경험을 쌓았는데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생동물의학 실습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도 AQUAVET과 비슷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수의대 후배들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함께 AQUAVET에 참가했던 강원대 김상화 교수님과 합심하여 제주도 해양동물 부검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2023년까지 2회째 개최했습니다.

아직 AQUAVET 만큼 전문적인 커리큘럼은 제공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시아 최대 수생동물의학 교육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여한 학생들이 매년 부검교육에 대해 좋은 평가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해하고 있어요.

교육 과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생동물에 관심있는 전국 수의대생들이 함께 모여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부검교육의 주 목적 중 하나입니다.

참여한 학생들이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며 서로 친해지고, 저희 준비위원들도 열정 가득한 후배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제주도 해양동물 부검교육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좋아하는 고래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수생생물의학 박사 과정까지 오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텐데, 2023년에도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좋은 연구 많이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고, 흑범고래 두개골 살을 발라내고, 부패된 대형 참고래 뱃속에서 장기를 꺼내는 일은 매번 할 때마다 정말 힘들다고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고래들을 위한 일이기에, 힘들고 외로운 길임을 알면서도 선택한 이 길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전공으로 하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것이라고 주변 분들께 응원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있고, 실제로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도 고래에 대한 이 열정을 잃지 않고, 국내 해양포유류 보존을 위해 성실히 연구하는 학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정 기자 tnwjdpark@naver.com

세계 고래의 날 ‘미소짓는 상괭이’ 연구하는 이성빈 수의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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