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컬동물병원 유일 개심술 성공, 넬동물의료센터 엄태흠 원장

국내 여건에서 쉽지 않은 승모판막재건술에 도전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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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개원가에서 큰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습니다. 넬동물의료센터가 반려견 이첨판폐쇄부전증(MMVD)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체외순환 하 개심술(승모판막재건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반려견 심장질환 중 하나인 퇴행성 이첨판폐쇄부전증(MMVD)의 표준치료법은 개심술(승모판막재건술, mitral valve repair)입니다. 하지만 국내 여건에서 개심술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충남대 수의대 김대현 교수가 헬릭스동물심장수술센터에서 있던 지난 2020년 국내 최초 개심술에 성공했고, 김대현 교수가 충남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일하게 충남대학교동물병원에서만 개심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넬동물의료센터가 수술에 성공하면서, 현재 국내에서 개심술을 받을 수 있는 동물병원은 2곳으로 늘었습니다.

넬동물의료센터에서 승모판막재건술을 집도하고 있는 엄태흠 외과원장을 만나 왜 어려운 개심술에 도전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안양 평촌 넬동물의료센터 전경

3~4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시골에 살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살았던 곳이 화장실도 재래식이었고, 옆집도 500m~1km씩 떨어진 완전 시골이었습니다. 다니던 초등학교도 한 학년에 12명 정도만 있는 분교였어요.

시골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동물과 함께 자랐습니다.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는 것도 제 일상이었습니다. 마당에서 개를 여러 마리 키웠는데, 이름도 다 제가 붙여줬습니다. 그 당시 시골개는 이름도 없었거든요.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아끼던 개가 ‘실버’였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어른들이 하나도 없고, 개 짖는 소리도 하나도 안 나고 집도 조용했고요. 뒷마당으로 갔는데, 어떤 사람들이 기름통이랑 화염방사기를 들고 개들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저희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개들을 데려갈 수 없다 보니 개장수에게 넘긴 거죠. 충격을 받을까 봐 저를 의도적으로 안 깨우신 겁니다.

제가 뒷마당에 나타나니까 가족들이 못 보게 저를 막고, 특히 제가 제일 좋아하던 ‘실버’는 도망갔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에 탄 개들 중 실버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어린 나이임에도 ‘개들이 너무 불쌍하다. 지금은 어려서 뭘 할 수 없지만, 어른이 되면 꼭 동물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수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어릴 때 지켜주지 못한 마음 때문인지 수의사가 된 지금도 개를 못 키웁니다.

예과 때는 학생회장을 했었고, 수린제(축제)마다 사회를 보고 장기자랑에 나가서 1등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을 때 저는 축제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해서 상금을 탔죠(웃음). 한 3~4년 연속 1등을 한 것 같습니다.

학생 때부터 임상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초과목 학점이 C, D가 나올 때 관심 있었던 임상과목 성적은 잘 받았죠. 그때나 지금이나 관심 있는 것만 파는 외골수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잘 되는 동물병원이 왜 잘 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본과 1학년 때부터 방학 때마다 동물병원 실습을 나갔습니다. “나중에 다 배울 건데 뭘 벌써부터 실습을 하냐”, “임상 과목 안 배우면 실습을 가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서울에 큰 병원부터, 울산, 대구 등 지역의 대형병원, 유명한 1인 동물병원, 수술을 잘하는 동물병원, 경영을 잘하는 동물병원 등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실습을 했습니다. 실습하러 가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원장님들이 더 많이 가르쳐주시고 챙겨주셨습니다.

임상 과목 중에서는 외과가 너무 흥미로워서 학부생 때부터 외과 실험실에 계속 나갔습니다.

수의대 졸업 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수의사를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실제로 밴쿠버에 가서 동물병원도 가보고,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님 집에도 가보고 했답니다. 그런데 캐나다 이민을 가지 않게 됐고, 로컬동물병원에서 진료수의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에서 진료수의사를 했습니다. 그때 김대현 교수님(당시 김대현 박사님)을 만나게 됐고, 다른 여러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심장수술을 준비했죠. 새로운 걸 하다 보니 너무 설레고 재밌었습니다. ‘와..우리나라에서 체외순환을 한다고? 개심술을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임상이 너무 재밌다보니 아예 병원 건물 옥탑방에서 살았습니다. 야간근무가 아닐 때도 응급환자가 오면 내려가서 돕고 그랬죠. 출근이 30초밖에 안 걸리니 좋더라고요(웃음).

헬릭스에서 김대현 박사님을 도와서 심장 수술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14마리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개심술 시도였다 보니 보호자 설득부터 수술 준비, 수술, 수술 후 관리까지 쉬운 게 없었습니다. (현재 넬동물의료센터에 함께 있는) 손동주 수의사와 함께 해외 논문도 찾아보고 토론도 하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외골수적인 기질이 있는데 그때는 심장수술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서 하루 종일 심장수술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시간이 현재 수술 성공의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헬릭스에서 나온 이후 손동주 수의사와 함께 개원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넬동물의료센터에 놀러 갔었는데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었고, 원장님들이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제가 “우리 이거 한 번 해보자!”라고 하면, “같이 해보자!”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손 수의사와 개원을 하지 않고 넬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심장수술이 시간 소모, 비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정말 힘든 수술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전 동물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던 환자 중 일부가 주치의였던 저와 손동주 수의사에게 진료받으러 왔습니다. 수년 전에 수술받은 환자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걸 보면서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술을 안 했으면 죽었을 확률이 매우 큰 환자들이 13~14살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대학동물병원 한 곳뿐만 아니라 로컬에서도 개심술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수술받으러 일본으로 가는 보호자분들도 많았거든요. 한국 수의학 발전을 위해서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중심장액성 맥락망막병증에 걸려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가 됐었습니다. 실명의 위험을 겪다 보니 ‘뭔가 하고 싶은 거에 꼭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쉬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게 제 성향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수술을 받았던 하쿠의 사연과 수술 과정은 영상으로 남아있다(@가족이라면서요)

작년 12월 31일에 첫 수술을 했습니다. 그 뒤로 현재까지 총 15마리를 수술했습니다. stage B2단계 환자가 2마리, stage C단계 환자가 8마리, stage D단계 환자가 5마리였습니다. 수술한 뒤 7~10일 정도 입원한 뒤에 퇴원하는데, 그 뒤 그 환자에 대한 리뷰를 하고 다음 환자 수술에 들어갑니다. 지금도 부족한 점을 계속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1달에 2마리만 수술을 해왔습니다.

수술을 받은 환자 중 1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잘 퇴원했습니다. 한 마리는 stage D단계 환자였는데, AKI로 소변 생성이 전혀 되지 않아 수술 후 30시간 뒤 사망했습니다. 퇴원한 케이스 중에는 수술 후에 한 달 정도 지나 IMHA 관리 중 사망한 환자가 2마리 있습니다.

일본 JASMINE의 수술 후 생존퇴원율이 97%라고 합니다. 그런데, stage B2 단계 환자의 수술 성공률이 가장 높고, stage C, stage D로 갈수록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암 수술처럼 심장수술도 수술을 빨리하면 할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수술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stage B2 단계 환자도 수술을 많이 받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도 7살 stage B2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는데, 확실히 단계가 낮을수록 수술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사람도 심장수술을 폐수종까지 온 다음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편집자 주 :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 가이드라인은 구조적 심장질환이 확인된 개를 stage B로 정의하며, 심장 리모델링이 없는 무증상 MMVD를 stage B1, 심장 리모델링을 유발할 만큼 심각한 MR이 있는 무증상 MMVD를 stage B2로 구분한다).

인터뷰 날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수술한 환자(14번째)를 보고 있는 엄태흠 원장. 해당 환자는 2.4kg MMVD stage D환자였다. 이 환자는 현재 퇴원했고, 15번째 환자가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올해 12월까지 수술이 전부 예약되어 있습니다. 한 달에 2마리씩 수술을 하다가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한 달에 3~4마리 정도씩 수술할 수 있는 단계가 됐습니다. 수술 시간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심장병 환자 보호자들에게 4~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반려견 심장병 환자에게 4~5개월은 영겁의 시간입니다. 당장 한 달 후에 죽을 수도 있는데,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더 많은 환자가 수술받을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V-Clamp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장 등 다른 장기에 문제가 있어서 심폐체외순환을 못 견뎌서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에게는 분명히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도 비슷한 중재 시술(mitral valve clip)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현재 승모판막재건술과 V-Clamp가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처럼 대결 구도로 비춰지는 양상도 있어 보이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개심술(승모판막재건술)이 MMVD의 표준치료 방법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두 가지 방법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올바른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힘든 점도 많습니다. 수술 후 직접 밤새워서 환자를 관리합니다. 손동주 수의사를 포함해서 3교대로 입원환자 관리를 직접하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제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지만, 현재는 환자를 잘 돌보고 환자를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제외하고 활발하게 승모판막재건술을 하면서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중인 곳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저희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의 생존퇴원율은 93%입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일본 JASMINE의 생존퇴원율(97%)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입니다. 그래서 논문으로 케이스들을 보고함으로써 한국의 높은 수의학 수준을 알리고 싶습니다. 현재 준비 중입니다.

또한, 별도의 심장센터(가칭 넬동물심장혈관센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 수술실 기준에 맞춰서 설계하고 있기 때문에 센터가 완성되면 더 많은 환자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수술받을 수 있을 겁니다.

반려동물 심장 수술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수술입니다. 많은 걱정이 들겠지만, 여러 가지 걱정 중에서 최소한 ‘낮은 성공률 때문에 위험해서 수술을 못 받겠다’는 걱정은 하지 않도록 믿고 수술을 맡기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 로컬동물병원 유일 개심술 성공, 넬동물의료센터 엄태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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