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먼저 경험해본 사람의 의견을 듣곤 합니다. 누군가가 걸어간 발자취는 다른 누군가의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1기는 데일리벳의 좋은 영향력을 살릴 수 있도록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벳스토리: OOO이 되기까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벳스토리 프로젝트에서 11기 학생기자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수의사로 활동하며 LA에서 리틀 도쿄 펫 클리닉을 운영 중인 정혜옥 수의사는 최근 건국대 수의대 해외임상실습에 참여한 후배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벳스토리의 9번째 주인공 정혜옥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리틀도쿄 펫 클리닉(Little Tokyo pet clinic)’을 운영하고 있는 수의사 정혜옥이라고 합니다.
Q. 미국에서 수의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치료하는 임상수의사가 꿈이었습니다.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대학을 거쳐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연구 분야에서 몇 년간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임상수의사를 하지 않으면 원래 꿈이었던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Q. 미국 수의사가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제 길을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수의대를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수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수의대를 졸업하던 1991년에는 미국뿐 아니라 외국에 여행으로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정도였으니, 미국 수의사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미국 수의사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1991년에 건국대 수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며 수의산과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일본 군마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내분비학과 분자생물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DNA 시퀀싱이나 PCR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잘 없어서, 박사 학위 논문이었던 PCR 기술을 통해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4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NIH에서 일을 하며 영주권도 받고, 다른 바이오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일하며 살다 보니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어렸을 때 꿈이었던 임상수의사를 평생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미국 수의사 면허 취득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리건 주립대학교에서 PAVE(Program for the Assessment of Veterinary Education Equivalence) 과정을 이수하고 이후 캘리포니아주 수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Q. 미국에서 수의사의 삶은 어떠한가요?
한국에서 임상 수의사를 해보지 않아서 한국 수의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미국 정부에서도 일해봤고, 미국 회사에서도 일해봤는데 그때의 삶과 비교하면 굉장히 멋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내 꿈을 이룬 점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수의사로 일하면서 내 인생 또한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미국 내 수의사가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 내 가장 높은 자살률을 가진 직업군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안락사를 매우 가깝게 다루고 있고, 보호자들과 감정적으로 가깝다는 부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습니다. 또 스스로를 잘 다스리지 않으면 번아웃을 쉽게 겪을 수 있는 직업이 수의사인 것 같아요.
Q. 이 일을 선택하기에 영향을 준 선배가 있다면?
제 근처에는 저와 같은 길을 걸어 미국 수의사가 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없다고 말할 것 같네요(웃음).
하지만 미국 수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미 미국에서 수의사로 일하고 있었던 김현일 수의사(현 재미한인수의사회 회장)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후배기는 했지만, 수의사 면허를 딴 후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미국 수의사 면허를 준비하는 동안 영어도 어렵고, 공부도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 미국 수의사를 준비하던 한국 및 일본 수의대 출신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Q. 이 일을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면?
병원을 운영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동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일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치료가 필요한데,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못 받는 동물들은 사비를 들여서 치료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 직원들도 노숙자의 동물을 데리고 와서 치료해서 보내기도 하면서, 병원 직원들과 함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긍지도 끌어올릴 수 있어요.
또한, 연구 분야에서 일할 때와 달리 워라벨이 좋다는 점도 있습니다. 또 결과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연구와 달리 치료 후 2~3일이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저에게는 장점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웃음).
Q.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두르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남들보다 빨리, 바쁘게 살아왔는데 그만큼 번아웃도 빨리 찾아왔었습니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다들 똑똑하고 계획한 대로 살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적당히 쉬고 적당히 조절하며 사는 사람이 더 길고 오래 갈 수 있어요. 내 속도에 맞게 천천히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 미국 수의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미국으로 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 수의사도 소동물 임상만이 정답이 아니니까 대동물, 공무원, 도축장 등 여러 분야에서 수의사로 일할 수 있으니, 이른 시기부터 특정 분야를 정하지 말고 졸업 후 1~2년 동안은 천천히 가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PASSION”
저는 공격적인 말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백주현 기자 backzoo2000@naver.com